[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아래로부터 시장화 ②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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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평양으로 가던 열차가 함경남도 인흥역에서 24시간 가까이 멈췄을 때 열차에 함께 타고 있던 상인에게서 개당 2천원(일반 노동자 한 달 임금, 당시 시장환율로 1.3 달러)씩에 산 자연산 송이(사진 왼쪽)와 열차 승무원이 즉석에서 끓여 준 송이탕.
2011년 평양으로 가던 열차가 함경남도 인흥역에서 24시간 가까이 멈췄을 때 열차에 함께 타고 있던 상인에게서 개당 2천원(일반 노동자 한 달 임금, 당시 시장환율로 1.3 달러)씩에 산 자연산 송이(사진 왼쪽)와 열차 승무원이 즉석에서 끓여 준 송이탕.
사진 제공: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북한 내부의 시장과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 움직임에 대해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2000년대 후반 쌀 시장가격, 국정가격 수십배

<기자> 문성희 박사님,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서요? 어느 정도나 가격 차가 있고 왜 이런 현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건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국정가격에 관해서는 쌀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계속 조사했는데요, 쌀의 국정가격이 (1Kg당) 2008년 8월에 북한 돈으로 49원(시장환율로 0.015 달러, 당시 1달러당  3천100-3천200원, 공식 환율은 1달러 100원), 2010년 8월에는 24원(시장환율로 0.016달러, 당시 1달러당 1천500원, 공식 환율은 1 달러 100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당시 2008년에 쌀의 시장가격이 (1Kg당) 평양에서는 2천200원, 함주라는 시골, 함경남도 함주에서는 2천50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국정가격이 24원이었는데 (시장가격은) 1천원부터 1천500원 정도 했거든요, 함주도 그 정도 가격이었거든요. 2010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이걸 보면 가격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 이렇게 수 십배 이상 가격이 차이나는 배경은 뭐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북한 당국으로서는 이 때 (유명무실해진) 식량 공급제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양곡전매제’라는 것을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이게 2005년 10월 1일부터 시작됐는데, 이 제도에 따라 국가가 식량 전매권을 장악하고 각 구역마다 식량을 도매하는 상점을 설치했습니다. 거기에 곡물을 국정 가격으로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그 쌀을 다 결국은 국가가 다 사고 (파는) 뭐 그런 식으로 하자,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부터 (시장에서) 쌀 값은 많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양곡에 대한 국가 전매제가 실시됐지만 결국은 쌀의 시장 가격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농민들이 거기(시장)에 (양곡을) 파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국영상점이 아니라) 시장에 다 식량이 흘러가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쌀의) 시장가격이 올라갔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농민들, 양곡전매제 외면… 시장에 쌀 내다팔아

<기자> 북한 정부가 주도하는 양곡전매제를 말씀하셨는데, 정부가 주도하는 쌀 공급, 식량 공급 통로가 아니라 시장을 통해서 농민들이 쌀을 출하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네요 그죠?

문성희: 그렇죠.  그것이 농민들을 위해서는 돈이 많이 생기는 거잖아요, 결국은 거기(시장)서 파는 게. 그러니깐 그런 현상이 아무래도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근데 이건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추측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시장에 많은 식량이 공급되고 있었다는 현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일반 북한 주민들도 결국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장으로 가야 한다, 그런 현상의 한 반영이었겠군요.

문성희: 그렇죠. 그래서 평양에서는 아직 그 당시 공급(배급)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그런 상태였고, 그리고 공급이 있을 때는 소량이나마 그래도 쌀, 강냉이를 포함시킨 곡물 같은 게 배급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방에서는 거의 공급이라는 게 없어지고 있었고, 그런 측면에서는 시장에서 뭔가를 구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시장에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거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생각한다면요, 그렇게 해서 시장가격이 막 오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제가 생각한 것은 그런 겁니다.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재 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현장과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재 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현장과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Photo: RFA

<기자> 한편 이처럼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북한에서 신흥자본주인 돈주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실제 어떻던가요?

문성희: 저는 솔직히 돈주라는 말은 현지에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돈주라는 말보다 장사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그러니깐 개인 장사나 지난번에 이야기드린 가방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거나, 그리고 또 지방에 가면 휘발유 같은 걸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도 계셨고, 근데 그런 사람들을 장사꾼이라고 하고 있었는데, 돈주라는 말은 듣지는 못 했는데, 그 사람들을 돈주라고 말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신흥자본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미용실∙식당 등 운영해 돈 번 사례 주변에 많아

<기자> 네 실제로 어떻던가요?

문성희: 결국은 장사라 할까, 식당, 가게를 하고 성공을 했거나, 그런 분들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측면이 있고, 돈주라는 것은 결국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받으면서 결국은 돈벌이를 많이 하게 되는 사람들도 많은 게 아니냐, 하는 그런 부분도 있고. 제가 안내원에게 식사를 하자고 제안할 때, 뭐 그럴 때는 그 쪽이 사주는 게 아니라 내가 사주는 게 기본인데, 한 번은 안내원이 제게 식사를 대접해 준 적이 있었어요. 그 안내원의 여동생이 미용실을 경영했거든요. 그래서 저한테 밥을 사줄 여유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하나의 장사꾼이라 할까, 혹시 이게 모든 분들이 말하시는 돈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도 들고. 또 장사꾼으로 말한다면 (저를 안내해준) 운전수 딸이 토끼 요리점을 경영하고 있었고, (장사가) 굉장히 잘 되고 있는 거 같았는데, 한 번은 야외에 소풍을 갔을 때 딸이 만들었다는 토끼탕을 가져왔는데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장사는 잘 됩니까?’라고 물어보니 ‘아, 잘 된다’고 그러고. 그런 식으로 2011년 이야기인데, 그렇게 해서 별의별 장사를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분들이 적지 않게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2011년 8월 평양 대동강 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음료 매대.
2011년 8월 평양 대동강 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음료 매대. 사진 제공: 문성희

장사꾼들 없으면 결국 북한 경제 안 돌아가

<기자> 실제 북한에서 이런 돈주, 장사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땠습니까?

문성희: 그것이 어떻게 실물경제에 영향을 끼쳤는지, 북한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지 여부는 제가 모르거든요. 모르지만, 하여튼 간에 결국은 장사꾼들로부터 다 물건을 사거나 하는 걸 보니깐, 그 사람들이 없으면 결국은 북한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뭐 그런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행 열차 인흥역서 멈추자 간이시장 형성돼

<기자>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각 지역을 현지 조사하면서 느끼신 점 간략히 정리해주시죠.

문성희: 하나 좀 예를 들고 얘기를 한다면 제가 지방에서 평양으로 올라올 때, 일부러 의식적으로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한 측면이 있었거든요, 그것이 역시 평양 사람들을 포함한 북한 사람들의 진짜 생활을 좀 알 수 있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 목적도 있고 해서요, 그 열차 안에서 여러 가지 목격한 것이 있는데, 역시 하나는 열차가 자주 멈추는 측면이 있었고, 그 때마다 (승객들이) 역에 계속 머물고 하는 그런 현상이 있었는데, 역에서 갑자기 시장이 형성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인흥(함경남도)이라는 역에서 열차가 몇 시간째 멈추고 있을 때, 북한 사람들이 다 기본적으로 그런 현상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서, 개개인마다 예를 들면 함경도에서 송이버섯을 평양으로 팔러 오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제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송이버섯이 다 썩어버릴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기서 파는 게 좋다고 하면서 거기서, 인흥역에서 파는 그런 현상이 있었고요. 그리고 또 어린 아이들이, 소학교에 다닐만한 얘들이 세수를 하는 물 같은 것을 (열차 승객들에게) 팔거나, 여러 가지 장사를 하는 것을 보니까, 아 이 사람들이 굉장히 머리를 쓰면서 여러 가지로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고요. 또 하나는 시장화가 촉진돼 있다고 할까, 술도 많이 팔고 있었는데, 그 술 같은 것도 다 시장가격으로 팔고 있고, 국정가격이 아니라 시장 가격이었거든요. 그런 걸 보니깐 결국은 시장화가 촉진되고 있는 거 아니냐 하는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안내원을 통해서 (그 젊은 장사꾼한테서) 송이버섯을 샀는데, 생각해보면 일본에서의 시세로 생각하면 싼데, 북한 물가를 고려하면 좀 비싼 값으로 송이버섯을 팔고 있었거든요. 네 그런 걸 보니깐 역시 ‘장사’를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송이버섯 하나 가격이 노동자 한 달 임금

<기자> 그러니깐 함경북도에서 평양으로 가다가 열차가 멈췄고, 송이가 잘 상하니까 여기서 그냥 팔자면서 청년들이 그 송이버섯을 꺼내서 열차역에서 팔기 시작했다, 뭐 이런 말씀이시죠?

문성희: 그렇죠. 그 당시 송이버섯 하나에 2천 원이었거든요. 2천 원이라 하면 북한 주민들의 한 달 임금이잖아요, 노동자들. 그러니깐 그게 송이 하나가 그 값이라는 거에요. 보통 같으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기자> 그렇죠. 그러니깐 거기에 수요가 있으니까 그 가격으로 팔았다는 거죠?

문성희: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기자> 그것 외에 다른 거 파는 물건들은 뭐가 있었습니까?

문성희: 나머지는 도시락 같은 걸 팔거나, 술도, 소주 같은 걸 팔거나 그리고 과일 같은 것도 팔고 있었고, 배나 그런 거 있죠, 사과 같은 거. 저는 사지 않았지만 생선이나 그런 것도 팔고 있었고 별의별 게 다 있었습니다.

<기자>네. 그러니깐 열차가 역에서 몇 시간 정도 머물렀습니까?

문성희: 인흥역에서 머문 것은 하루, 약 24시간 정도 아닌가 싶은 데요.

<기자> 네. 그러니깐 그 머무는 동안에 다른 열차들도 와서 또 머물고 그러니깐, 역사 주변이 시장으로 바뀐다는 말씀이시죠?

문성희: 그렇죠. 그러니깐 머무는 걸 알면서 현지에 사는 사람들도 무슨 물건을 팔러 오고 그래서 하나의 시장이 생기는 측면도 있고, 그리고 또 열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자기가 갖고 온 상품을 팔거나, 앞서 얘기드렸듯이 송이를 파는 청년들도 있었고요, 갑자기 시장이 생겼다고 할까요,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기자> 지방을 포함한 북한 전역에서 시장화 현상이 두루 목격됐다, 이런 말씀이셨습니다. 문 박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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