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남북경협-개성공단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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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620.jpg 운동장에서 연습중인 북한의 한 초등학교 축구부원들. (2011년 8월)
사진: 문성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오늘은 남북 간 경제협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공단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 박사님, 개성공단이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2016년 2월 16일, 당시 박근혜 한국 정부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조업 중단을 선언했어요. 그 뒤로부터 문재인 정권으로 바뀐 뒤에도 아직 재개될 전망이 안 보입니다.

<기자> 북한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베를린구상’이라는 것을 발표했는데 이 구상에서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린다고 선언했어요. 거기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물론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당시 로동신문을 통해 베를린구상에 대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존중, 이행을 서약하는 등 전임자들과는 다른 입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다행이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부터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인데,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경협 추진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북한 입장으로 본다면 남북 경협은 유엔 제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이까요.

<기자> 그러니까 북한은 남북 간 경제협력이 유엔제재와 관련이 없다고 봤다는 건가요?

문성희: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경협이 중단된 것은 5.24조치로 인한 것이고 개성공단 중단도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지 않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경협 회복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게 전망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습니다’ 라고 언급했지 않습니까.

<기자> 그러나 금강산 관광이든 개성공단이든 유엔 제재와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남측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 박사님 실지로 개성공단에 가 보신 적이 있다면서요?

문성희: 네, 이제 16년 전 일이 됐지만, 2003년 6월 30일에 진행된 개성공단, 북한에서는 개성공업지구라고 하던데 거기 착공식을 취재한 바 있습니다. 그때 딱 한번 개성공단 부지에 갔어요.

<기자> 그러니까 개성공단을 조성할 당시에 가보셨다는 말씀이신데 당시 분위기가 어떠했습니까?

문성희: 착공식이 진행된 곳이 개성시 봉두리었는데, 당시는 아직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개성공단이 건설될 예정인 2천만 평의 넓은 부지가 정면에 안겨온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넓은 토지에 공단이 꾸려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사분계선에는 남북 모두 국기를 게양하고 있지 않아요? 태극기가 너무 가까운 데 있어서 놀란 기억이 있어요. ‘남측이 이렇게 가깝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개성은 오히려 평양보다 서울에서 오는 것이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해요. 착공식에는 서울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고인)을 비롯한 남측 일행이 오셨지만 1시간만에 착공식 현장에 도착했다는 것이었어요. 정말 가깝지요.

<기자> 개성공단이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문성희: 네, 정말 가까웠지요.  그러니까 나중에 여기에 한국의 중소 기업들이 주로 진출을 해서 여러 공장들이 생겼을 때 서울에서 굉장히 편리한 장소이니까 과연 그렇구나 생각했어요. 비무장지대가 바로 보이는 곳이니까요.

<기자> 네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는 측면이겠지요. 그런데 정몽헌 회장이 당시 착공식에 참가했다고 하셨는데 얘기를 나눠 보셨나요?

문성희: 개성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그 날 중으로 평양으로 가야 했으니 정몽헌 회장을 비롯한 남측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거든요. 북한의 강원도 원산에 ‘갈매기식당’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재일동포 귀국자 가족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있어요. 불고기와 생선을 내놓는데 정말 맛있어요. 원산에 ‘만경봉’ 호가 다닐 때는 저도 자주 갔었는데 2003년 6월 말께 이산가족 취재를 하느라 금강산에 가기 직전에 갈매기 식당에 들렸어요. 그러니 거기 가게 사람들이 ‘며칠 전 정몽헌 회장이 음식점에 들렸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해 8월 정몽헌 회장은 투신자살을 합니다. 마침 그 당시 대북비밀자 금문제로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던 시기 직전이었지요. (제 생각에 정 회장이) 뭔가 섭섭하다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당시는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별 관심없이 들은 얘기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지금도 그때 얘기가 떠오르긴 해요.

<기자> 정 회장이 당시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섭섭하다’고 했다는 거죠?

문성희: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잘 몰라서 그 때는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자살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평양 여관 앞 마당에서 사람들이 족구를 즐기고 있다. (2011년 9월)
평양 여관 앞 마당에서 사람들이 족구를 즐기고 있다. (2011년 9월)
사진: 문성희

<기자> 북한 입장에서 개성공단이 특히 매력적인 점은 뭘까요?

문성희: 물론 북한에 있어서 여기서 종업원들이 버는 돈들이 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북한에 들어가는 외화가 미사일, 핵 개발에 쓰이고 있다는 소리도 자주 나오는데, 물론 북한 당국에 들어가는 돈은 있겠지요. 그렇지만 모든 돈을 당국이 회수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근로자들이 받는 몫도 있고.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분배되는 간식이 초코파이였다는 것은 유명하지요. 그 초코파이가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뒤 초코파이 간식 분배가 없어졌는데 이것 하나만 봐도 근로자들이 그 간식을 시장에 파는 자유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그런 것보다 북한이 자본주의적인 경영 방식을 배우는 데서 개성공단이 큰 역할을 했다고 저는 봅니다. 과거에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할 때 우선 화교가 많이 진출한 것과 닮은 구조이지요. 북한이 1984년에 합영법을 제정해서 합영사업을 추진할 때는 재일동포기업이 많이 들어와서 자본주의 경영 방식을 가르쳐주었는데 개성공단에서는 그걸 남측 기업이 해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개성공단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꽤 좋은 일자리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북한 주민들의 평가는 어떻던가요?

문성희: 북한 근로자들은 참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자들도 많고. 왜냐하면 역시 외화를 벌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모든 수입을 자기들이 갖게 되는 건 아니지만 거기서 일하면 얼마만큼의 외화를 벌 수 있고 그게 북한 사람들에는 좋은 일이고. 그리고 개성공단의 공장 기술은 발달된 상태니까 그런 기술을 배우는 걸 좋아했던 게 아니냐, 그런 걸 저는 느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지난해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북한 관리들과 학자들을 많이 만나 북한 경제에 관해 논의하신 걸로 아는데요 그 분들은 개성공단을 어떻게 평가하던가요?

문성희: 학자나 관리들이 직접적으로는 개성공단이 좋다거나 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는데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본주의 경제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은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이 하나의 중요한 거점이라 할까, 그렇게 보고 있었다고 비록 직접적인 평가를 들어본 건 아니지만 제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기자> 당시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북 측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들도 많았을 텐데요 실제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습니까?

문성희: 물론 그렇지요. 도로, 통신, 전기, 운수 등 개발 시설을 가지고 입주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당시 남측 분들도 얘기를 하고 계셨어요, 그러니까 개성공단 창공식 며칠 전에는 철도 연결 의식이 동해선과 서해선에서 동시에 실현됐지요. 저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실시된 동해선 철도 연결식을 취재했어요. 근처에는 남북분단지점을 알리는 녹슨 간판도 있어 신기했어요. 그런데 저는 취재하기 전 ‘절대 남측 지역에 들어가면 안 된다’ 는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 북측 지역에서만 취재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거기에 별로 남 북을 가리는 물리적인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북의 기자들은 열심히 취재하느라 남북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거든요.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요.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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