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④ 한국전을 넘어 전 세계에 끼친 영향력

캔자스-박수영, 김구슬 parkg@rfa.org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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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④ 한국전을 넘어 전 세계에 끼친 영향력 캔자스주 성 미카엘 성당 앞 현수막과 십자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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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에밀 카폰 신부의 고향에는 매년 한국전 참전용사를 비롯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또 카폰 신부가 포로수용소에서도 보여준 헌신과 사랑은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계속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요.

RFA 특집, [‘한국전 예수’ 고향에 잠들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카폰 신부의 위대한 업적을 알리고 그의 시성을 위해 일하고 있는 존 호즈 신부님을 통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교훈을 들어봤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 신부님. 반갑습니다. 에밀 카폰 신부님의 유해가 70년 만에 발견돼 고향인 캔자스로 돌아왔는데요. 당시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카폰 신부님이 유해가 거의 온전한 상태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존 호즈] 윌리엄 핸슨(William Hanson)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카폰 신부의 포로수용소 동료 중 한 명이었어요. 보통 누군가가 죽으면 경비원들이 세 사람을 시켜 그 사람을 묻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간수들 중 한 명이 함께 따라가죠. 그런데 카폰 신부를 묻으러 갈 때에는 간수가 포로들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핸슨 씨는 카폰 신부가 공동 무덤에 묻히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를 다른 지역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핸슨 씨는 카폰 신부가 어디에 묻혔는지 증언했고 결국, 미국 국방부는 카폰 신부의 유해가 하와이 국립묘지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에 신원 미상 군인으로 묻혔다는 것을 발견하자 우리는 모두 흥분했습니다. 카폰 신부의 조카인 레이 카폰이 제게 전화를 걸어 삼촌의 유해를 확인했다고 했을 때, 저는 그럴 리 없다며 믿지 못했습니다. 카폰 신부의 유해 송환은 우리가 항상 바라던 일이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죠. 사람들은 그의 유해가 고향에 돌아온 것을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 카폰 신부님을 알고 싶은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같습니다. 캔자스 위치타에서는 카폰 신부님을 어떻게 기리고 있는지요?

[존 호즈] 카폰 신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항상 놀랍니다. 우리는 실제로 전 세계로부터 카폰 신부에 대한 정보를 요청받았습니다. 한국, 인도네시아, 남태평양 국가들, 아프리카에 있는 몇몇 나라들, 북유럽의 두 나라, 그리고 인도로부터 카폰 신부에 대한 정보 요청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카폰 신부에 대한 정보 요청을 받은 거죠. 우리는 카폰 신부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필슨에서 카폰 신부에 대한 기념행사를 매년 두 번 개최합니다. 우리는 이를 필슨 순례라고 부르는데요. 약 13~14년 전에, 위치타 교구의 한 신부와 몇몇 다른 신부가 위치타에서 필슨까지 걸어가는 순례 도보를 시작했습니다. 3일 동안 100 km를 걸었는데, 지금은 4일에 걸쳐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 순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6월 첫째 주 일요일을 ‘카폰 신부님의 날’이라고 부르고, 그 일요일까지 순례 행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요일에는 필슨에서 카폰 신부를 기리는 특별한 미사를 집전하죠. 그때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오는데요.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뜻으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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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전쟁 포로들이 카폰 신부 십자가상을 들고 있다/위치타 교구 제공



· 한국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카폰 신부님의 숭고함을 기리는 십자가상이 제작됐는데, 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고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건지요?

[존 호즈] 카폰 신부가 세상을 떠나고 약 6개월 뒤 포로수용소에 제럴드 핀크 (Gerald Fink)라는 사람이 수감됐습니다. 그는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그는 취미로 조각을 했는데요. 포크나 스푼 같은 것들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솜씨가 좋았습니다. 다른 전쟁포로들은 그가 조각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사람도 조각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그는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카폰 신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십자가상을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물었답니다. 핀크 씨는 해보겠다고 했고, 십자가상에 있는 카폰 신부 모습을 조각해낸 거죠. 이 십자가상은 현재 위치타에 있는 카폰 카멜 천주 고등학교의 예배당에 걸려 있습니다. 포로들이 귀향할 때 포로수용소에서 몰래 가져와 이곳 위치타에 있는 주교에게 건네준 겁니다. 핀크 씨는 “모든 사람이 (십자가상에 조각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카폰 신부에 대한 묘사를 듣고 조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카폰 신부가 한 일을 보면,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을 위해) 그의 삶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 당시 전쟁 포로들과 많은 인터뷰를 해오셨는데, 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을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존 호즈] 제가 얘기했던 남자 중 한 명은 의사였는데, 50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일로 악몽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들이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말하더군요. 그가 말하길 북한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질병 중 하나인 이질 (전염병의 일종) 치료법을 실험했다고 했습니다.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질에 걸렸고, 그들이 생각한 이질 치료법 중 하나는 몸에 닭의 간을 넣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지금도 어느 순간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그곳에서의 기억이 매우 끔찍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귀향 전쟁포로 중 누구도 적군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게 되면 미워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하지만 전쟁포로들이 말하길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들 역시 그 상황에 내몰렸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까 말한 그분도 "전쟁을 계속 일으키는 사람들은 싫어하지만, 일반 군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귀향 전쟁 포로분들이 겪은 일과 그들의 태도를 매우 높이 사고 싶습니다.

· 아직도 남북이 분단돼 있고, 휴전 상태인데요. 카폰 신부님이 한국전 당시 아군과 적군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존 호즈] 카폰 신부는 한국을 위한 수호성인인 것 같습니다. 카폰 신부는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면 그 해친 사람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축복을 기린다”고 말했습니다. 카폰 신부는 하느님께 포로수용소의 간수들이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고, 그들의 축복을 기렸습니다. 카폰 신부는 적군에게 아무런 적대감도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카폰 신부의 죽음을 초래했을지라도 말이죠. 어쩌면 카폰 신부님은 우리와 한국인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좋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폰 신부님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대로 전쟁이 끝나고,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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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미카엘 성당 소속 교구장 대리인 존 호즈 신부 /RFA PHOTO



· 신부님에게 카폰 신부님은 어떤 의미인가요?

[존 호즈] 아버지 카폰은 제가 얼마나 부족한 신부인지 보여주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종종 제가 신부로서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저는 종종 카폰 신부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곤 합니다. 카폰 신부의 가장 큰 유산은 우리 모두가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카폰 신부님은 캔자스의 시골 한가운데에서 태어난 분이셨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캔자스의 농부들은 특히 더 가난했습니다. 카폰 신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어요. 돈이나 권력, 명예도 없이 자란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보살피고 섬기려 했기 때문입니다. 카폰 신부는 우리도 그렇게 행동하고 봉사한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 카폰 신부님의 업적과 교훈은 세상에 어떤 의미로 남으리라 보시나요?

[존 호즈] 카폰 신부의 헌신 그 자체가 세상에 남긴 교훈은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전쟁 포로들에게 ‘희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폰 신부는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어요. 다만 카폰 신부는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다른 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또 세상이 좀 더 평화로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사려 깊게 대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카폰 신부가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종종 우리가 힘 없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 카폰 신부의 일생이 수많은 사람에게 평화를 안겨준 것을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네, 존 호즈 신부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성 미카엘 성당 소속 교구장 대리인 존 호즈 신부님으로부터 카폰 신부님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노정민, 웹팀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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