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시장화→국가통제 ‘역주행’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1.10
nk_made_beverage_b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여러 종류의 음료(2011년9월).
/문성희 박사 제공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제재해제 없으니 자력갱생으로 살 각오 다지라” 의미

<기자> 문성희 박사 모시고 올 해 북한의 경제정책 전망해보겠습니다. 문 박사님, 지난 해 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당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북한의 올 해 경제방침에서 경제제재와 관련해서는 어떤 언급이 있었던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한 마디로 제재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제재해제를 기다리며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 태도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자체의 위력을 강화하고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재부들을 더 많이 창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자> 제재가 계속된다는 것을 예견한 발언으로 보이는군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회의 보도를 보면 아무래도 북미 관계 해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그 동안에는 제재가 계속되므로 자력갱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자력갱생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군요.

문성희: 네, 현 시점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은 “우리에게 있어서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화려한 변신을 바라며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대화에서 타협을 하고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무역도 회복되고 해외노동자파견도 활발해질 것이고 남북 경협도 추진될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경제건설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될 것입니다.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김 위원장 자신이 인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환경을 얻기 위해서 지금까지 지켜온 국가의 존엄은 버릴 수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시장경제 중단’ 선언했지만 경제개혁은 계속될 듯

<기자> 그런데 ‘화려한 변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문성희: 변신이라고 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사회주의계획경제로부터 자본주의시장경제로 경제노선 자체를 변경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시장경제로는 가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지요. 실지로 김 위원장은 인민경제계획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개혁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자> 그건 어떤 측면에서죠?

문성희: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현실성있게 실시하는 사업을 잘 해나갈데 대한 해결방향을 제시했다고 보도돼 있습니다. 저는 여기 코너에서도 여러 번 말해왔는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북한식 경제개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목적은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추진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경제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직결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김 위원장 시기에 나온 경제정책이죠?

문성희: 그렇습니다. 다만 이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애요. 기업체들의 경영관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계속 밀고 나가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지난 시기보다는 좀 후퇴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협동농장판인 포전담당책임제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장원에게 현물로 곡식을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농장원들은 현물로 분배 받은 곡식을 시장에 내다 팔아도 좋았던데 그게 최근에 금지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인농같은 상황이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회의에서도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현상을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을 전개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모로 비사회주의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포전담당제 아래 농민 처분권 제한되는 듯

<기자> 포전담당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는 말인가요?

문성희: 그렇게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대풍작이었다고 자랑을 하는데 농민들의 인센티브가 높아졌기때문에 생산량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볼 때 포전담당제가 유명무실해지면 농업 생산량도 떨어진다는 판단은 있겠지요. 다만 처분권 문제와 관련해서 농민들이 그대로 시장에 가서 팔 수 있게 국가가 허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평양제1백화점의 학습장(공책) 판대코너(2011년9월).
평양제1백화점의 학습장(공책) 판대코너(2011년9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지난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남북 경협문제도 진전이 없었는데 올해는 진전이 있을 듯한가요?

문성희: 전원회의 보도를 보니까 한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첨단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라고 하는 것이 유일하게 한국에 대해 언급한 장소이지요. 지금 시점에서는 한국과 대화를 할 마음도 접촉을 할 마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미국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모든 문제에 진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2019년 신년사에서는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남북관계 완전히 깨졌다고 보긴 어려워

<기자> 그렇다면 남북문제는 전원회의에서 전혀 언급이 안 됐다고 봐야 할까요?

문성희: 그것은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북한이 회의에서 토의된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회의가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기간에 비하면 보도 자체가 너무도 짧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의에서 채택된 결정서에는 8가지 결정이 명시됐는데 거기에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항목이 없어요. 지금 시점에서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움직인다고는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다고 ‘남조선 당국’, ‘남조선 당국자’ 하는 식으로 찍어서 강하게 비판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완전히 남북관계가 깨졌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아마도 미국과의 관계에 진전이 있으면 자연히 남북관계도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기자> 그런데 경제사업 체계와 질서를 정돈해야 한다고 한 대목도 눈에 띄더군요.

문성희: 네, 북한이 “막강한 힘을 비축하고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까지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임시적인 사업방식을 계속 답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에요. ‘지난 시기의 과도적이며 임시적인 사업방식’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은데. 경제에서 비합리적인 체계와 질서는 없애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됩니다.

<기자> 과도적, 임시적 방식이 결국 일부 도입됐던 시장화를 의미한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문성희: 그 지적은 옳다고 봐요. 전반적으로 시장화 장려에서 후퇴하고 있지요. 다만 북한은 2000년대에도 2000년초부터 개혁정책을 추진했다가 2005년부터 개혁조치를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되돌아갔지 않습니까? 마지막에는 화페교환(데노미네이션)까지 실시했지요. 그게 결국 실패했다가 다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게 반복돼 있으니까 지금 비상시에서 시장경제정책 도입이 아니라 아무래도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한편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도들도 언급됐더군요.

문성희: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는 김정일 위원장 시기부터도 여러 번 강조해온 것이고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하필 다시 강조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좀 더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마도 내각 이외의 부서에서 경제를 하겠다고 해서 그 때문에 해로운 일이 있을 수 있지요. 예를 들면 군대라든가. 이 문제는 오래된 북한 역사에서 여러 번 언급돼 와서도 결국은 아직까지 해결을 못 보고 있다,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이 갑니다. 김 위원장은 그것을 정상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

<기자> 그런데 올 해는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 마지막 해인데 그에 관한 언급이 있었나요?

문성희: 보도를 읽는 한 없었어요. 김 위원장이 경제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여러 번 말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5개년전략을 성과적으로 마무리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다만 보도에서는 흥미로운 지적도 있었어요. 김 위원장이 “나라의 경제를 안정적으로 전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10대전망목표의 지표별계획들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타산하여 세우고” 라든가 “전망목표가 확정되면 국가적으로 경제조직사업과 지휘를 짜고들고 전인민적인 생산투쟁과 창조투쟁을 벌려 그것을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인데, 10대전망목표라는게 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느낌이 있었어요.

<기자>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요.

문성희: 10대전망목표란 1980년 10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6차당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것인데 전력, 석탄, 강철, 비철금속, 시멘트, 화학비료, 천, 수산물, 곡식, 간석지개척의 10종목별로 전망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10년 내에 달성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런식으로 구체적인 숫자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리고 10대전망목표라는 것이 아직 살아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지난해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마지막으로 올해 북한 경제 어떻게 전망하시겠습니까?

문성희: 그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면 저도 유능한 저널리스트로 자랑할 수 있는데. 계속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경제 문제가 해결될 결정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난해에 계속 언급했던 것처럼 북한 경제가 풀리자면 제재가 해제되어야 하는데, 이번 회의 보도를 보면 북한은 양보를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제재는 장기화되겠지요.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는 대북 제재를 좀 더 완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에 응할 가능성이 많지는 않지요. 그렇지만 올해는 한국에서 총선이 있고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고 있고 북한도 트럼프가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다시 처음부터 북미 관계를 구축해가야 하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다고 한들 북미가 대화에 오르는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됐을 때 모든 문제가 풀리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런 기대를 가져보게 됩니다.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