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공허한 구호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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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경제, 어제와 오늘]공허한 구호 평안남도 강서군 석흥협동농장에서 북한군인들이 농민들을 도와 모내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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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 박사


<기자> 이번에 개최된 북한 노동당 8차 대회에서는 “인민생활 향상”이 많이 강조됐습니다. 문 박사님, 역시 인민생활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방증으로 봐도 될까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북한은 지난 5년간 5개년경제전략을 세우고 어떻게나 인민생활을 향상시키려고 했지만 주∙객관적 조건이 걸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언젠가는 생활이 좋아지는 것인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적지 않게 불만도 가지고 있겠지요. 과거에 제가 북한에 자주 가고 있을 때도 “생활이 어려우니까 평양에 와서 이렇게 길가에서 물건을 팔 수 밖에 없다”고 하면서 저에게 달피(마른 명태)를 판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생활이 어렵다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소리는 적지 않게 지도부에 들려온다고 생각합니다.

<기자>그러니까 북한 지도부로서도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인민생활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그런 말씀이시군요.

문성희: 그럼요. 그러니까 이번 대회에서도 여러번 인민생활 향상이 강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총비서의 폐회사에는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말도 나왔어요. 그리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기자>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말은 낯선 말인데요?

문성희: 그렇죠. 그러나 대충 상상은 가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라고 봅니다. 과거에 북한에서 혁명적경제전략이라는 것을 내놓은 적이 있었던데 그 때의 슬로건, 즉 표어는 “농업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였어요. “인민대중제일주의”도 이처럼 자신들이 힘을 놓아야 할 문제를 슬로건으로 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런데 구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어떤 측면에서 가장 어려움에 처했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무엇보다 먹는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크지요. 김정은 총비서가 장시간에 걸쳐 읽어낸 사업총화보고에서도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책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김 총비서는 폐회사에서 수매량을 늘여 식량공급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자> 식량이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물론 지방에서는 벌써 2000년대 초반에 식량 공급에 대해 질문하면 “그런 말은 이제 잊어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지요. 국가에서 식량을 공급해준다는 건 아예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평양에서는 식량 공급이 중단되었다가 회복하기도 하고 했지만, 정상화는 안 되고 있었지요. 그리고 공급되었다고 한들 양이 적거나 쌀이 아니라 강냉이(옥수수)로 대신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김 총비서가 식량공급의 정상화에 대해 언급을 한 것을 보면 아직 문제 해결은 멀다고 할 수 있어요.

<기자> 말씀을 들어보니 지방은 아예 국가로부터 식량공급이 끊긴 지 꽤 된 듯한데요,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니까 공급 정상화를 언급하긴 했지만 과연 특별한 복안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문성희: 알곡 생산 향상을 위해 국가가 투자를 한다고 하지만 특별히 새로운 복안이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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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 한 켠에 걸려 있었던 농장원 ‘노력일공시’ 표. 각 농장원들이 얼마만큼 일했느냐를 평가하는 표로 분조 인원수가 21-23명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8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포전담당제같은 조치도 더 확대된다는 소식은 아직 없는 듯합니다. 어떻습니까?

문성희: 그러고 보니 최근 포전담당제라는 말을 듣는 기회가 적어졌는데요. 혹시나 그렇게 잘 추진이 안 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김 총비서도 농촌의 생활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니까.

<기자> 그렇다면 식량 공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되야 할지, 뭐 그런 언급은 있었나요?

문성희: 김 총비서는 앞으로 2년부터 3년사이에 해마다 국가의 수매계획을 2019년도 수준으로 정하고 그것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고 했어요. 2019년도 수준을 보았더니 유엔식량농업기구가 발표한 숫자를 보면 알곡 총생산량이 약 560만 톤을 기록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다 식량이 공급되자면 700만 톤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시기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560만 톤 정도 생산된다면 많이 좋은 셈이지요.

<기자> 다른 연도와 비교해서 2019년도는 식량생산이 높은 수준인가요?

문성희: 2016년이 약 496만톤, 2017년이 483만 톤, 그리고 2018년에는 감소해서 약 420만톤이었어요. 2016년부터 2018년 사이는 400만 톤 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2019년에 500만 톤 대에 올라갔다는 것은 높은 수준인 것이지요. 김 총비서가 이 수준을 유지하라고 한 배경이지요.

<기자> 이런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당대회에서는 어떤 정책이 제시되었나요?

문성희: 특별히 획기적인 농업정책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국가적인 투자를 늘릴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아마도 식량문제를 풀기 위한 분야에 투자를 어느 정도 집중시킬 것이 아닌가 그런 예측도 가능합니다. 이번에 김 총비서는 “현실에 최대한 접근시켜 실현가능한 새로운 투쟁목표를 제시”했다고 하고 있고 “마구잡이식 투자를 할 것이 아니라 투자할 분야도 집중시켜야 한다”고 하고 있으니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농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기자>먹는 문제와 함께 중요한 주택 문제는 어떻습니까? 뭔가 새로운 방침이 나왔나요?

문성희:일단 평양시 5만세대 살림집 건설에 집중하며 올해부터 해마다 1만 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기 위한 연차계획을 세우고 평양시민들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요.

<기자> 평양시의 주택 문제 해결은 벌써 몇년 전 부터 제기되어 온 듯한데요?

문성희:그렇습니다.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 평양시에서 10만 세대의 주택을 건설하는 목표가 세워졌지요. 그 당시 한창 건설되고 있었던 것이 만수대지구의 창전거리 뉴타운 건설이었습니다.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세워졌는데 그래도 10만 세대를 건설하기까지는 한참 멀었지요. 그 뒤에 미래과학자거리 등 고급 고층아파트들이 많이 건설되고 일정하게 주택 문제 해결에 기여했을 지는 몰라도 아직 수도의 주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기자> 어떤 측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요?

문성희:그러니까 이제 10년 전에 10만 세대 주택 건설을 목표로 하면서도 그것을 실현했다는 보도는 없고, 이번 당대회에서 5만 세대 건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니까.

<기자> 아직 평양시민들의 주택 사정도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문성희: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2011년에 들은 바에 의해서도 주택이 모자라서 자기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도 있고 신혼부부라도 개인적으로 집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있어요. 신혼부부가 좀 불쌍하지요.

<기자> 지방은 더 한심한 상황 아닌가요?

문성희: 물론 그렇습니다. 다만 이번 대회에서는 함경남도 검덕지구에 2만 5천 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어요. 아시다시피 여기는 북한 굴지의 유색금속, 즉 비철금속 생산기지이지요. 여기에 살림집을 새로 건설한다는 것은 유색금속 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고, 이런 장소에는 사람들이 가기 싫으니까 그나마 주택이라도 세워서 사람들을 이주시키자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어요. 여기는 지난해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었던 지역이지요. 당시 예로부터 살던 주민들을 위해 새로 주택을 세웠는데 그 때부터 검덕지구에 새로운 주택을 더 많이 세우게 되었다는 보도는 있었어요.

<기자> 그렇다면 평양뿐 아니라 앞으로는 지방의 주택문제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인가요?

문성희: 그건 잘 몰라요. 검덕 지구는 유색금속 생산을 늘인다는 북한 지도부의 정책에 따라서 거기에 새로 주택들을 세우고 있을 지도 몰라요. 지금은 제재로 불가능하지만 원래 북한의 유색금속은 수출용으로 많이 이용되여온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기자> 검덕지구를 제외하면 지방에서 주택 건설이 추진된다고 보긴 어렵다는 말이군요.

문성희: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김 총비서는 대회 결론에서 “농촌을 비롯한 시, 군 인민들의 생활이 매우 어렵고 뒤떨어지고 있”다고 말했어요. 이런 말을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당대회라는 최고 지도기관에서 말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지방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을 최고 지도자가 갖고 있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언젠가는 평양처럼 지방도 잘 꾸려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니까요.

<기자> 빠른 시일내에 해결될까요?

문성희:그건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여러 지방의 집들도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아직 많이 뒤떨어지고 있어요. 전기나 가스가 안 들어오니까 연탄으로 밥을 짓는 집까지 있었어요. 그런 집들을 모두 현대적인 집들도 바꾸자면 아직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지방과 평양의 생활격차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닌 듯한데요, 이번에 지방의 어려운 생활상이 언급됐다는 건 어떤 의미로 봐야 할까요?

문성희:하나는 지방사람들에게 “우리는 잊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듯한데요. 북한은 평양과 지방의 생활격차가 심하다나니까 모두 지방에 가기 싫어하지요. 그렇게 되면 더더욱 격차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지방이 아니더라도 큰 도시를 비롯해서 평양 못지 않는 지방들이 나오면 별로 평양아니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긴다고 봅니다. 그리고 역시 가장 큰 것은 지방 사람들 안에서 “평양만이 좋아진다”는 불만이 있다고 봐요. 그런 불만을 덜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최고지도자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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