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공급체계 부활(?)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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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it_smoking_b 평양 호텔에 붙어 있던 금연을 호소하는 포스터. (2011년 8월)
/문성희 박사 제공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문성희 박사님,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주변국 확산이 심각합니다. 마침 설 연휴와 겹쳐서 한국이나 일본에 여행오는 중국인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북한에서도 꽤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합니다.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노동신문에는 보건성 박명수 국가위생검열원 원장 필명의 기사가 실렸어요. 박 원장은 국경, 항만, 비행장(공항)들에서 위생검역사업을 강화하여 이 병이 북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역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미 이 병이 발생한 지역으로 여행을 금지한다든가, 외국 출장간 사람들에 대한 의학적 감시를 책임적으로 해야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폐렴환자나 의심이 있는 환자가 있으면 철저히 격리할 것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으로서는 대규모 환자가 발생하면 치료약도 치료기관도 다 모자라기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겠지요?

문성희: 네 그런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철저히 환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여행 금지를 하거나 관광객들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런 방도를 택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제가 2003년에 북한에 장기 체류하고 있을 때 5월이던가 마침 사스(SARS)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유행하기 전에 북한에 들어갔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당시 5월에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우선 2주일 정도 안주에서 격리됐다가 증상이 없으면 평양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장기간 체류하는 사람이라면 2주일 격리를 당해도 할 수 없지만, 단기 방문단 같으면 2주일이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평양에도 못 들어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해서 그 당시 방문객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숙박하던 평양여관(호텔)도 숙박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서 호텔 안이 매우 조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현지 사람만이었기 때문에 쓸쓸했어요.

<기자> 당시 사스 예방을 위해서 북한 당국이 취했던 조치들을 직접 겪으셨을 텐데요, 어떻던가요?

문성희: 제가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 일본에서는 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백신이 없던 때라 혹시 북한에서라도 감염되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아직 북한에서 환자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히 예방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저 자신은 피해랄까 그런 걸 받은 기억은 없는데 정말 환자가 없는지, 그리고 북한에서 어떻게 사스를 예방하고 있는지 그런 걸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2003년 4월 20일과 5월2일, 6월20일에 기사를 조선신보에 송고했습니다. 당시 기사를 훑어보니까 가장 환자가 많았던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 환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철저히 취해지고 있었고 출장갔던 사람은 10일간 격리하고 고열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에 격리하고, 6월 20일자 기사를 보면 6월까지 그런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환자가 없었다고 보건소 사람들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병원도 취재했는데 병원 입구에서 찾아온 환자들을 검역하고 있었다거나 그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철저히 예방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병원에 마스크가 모자랐어요. 실은 제가 당시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며칠 동안 친선병원이라는 곳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쓰기 위해서 일본에서 가져간 마스크를 (병원 측에) 주니까 매우 좋아했어요. 혹 북한에서 사스가 유행하고 있으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다행히 저는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어서 병원 측에 건넸죠. 그 당시 경험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북한이 철저히 예방사업을 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2003년 사스가 유행할 당시 북한에서 심혈을 쏟던 예방노력을 알리는 평양발 기사들.
2003년 사스가 유행할 당시 북한에서 심혈을 쏟던 예방노력을 알리는 평양발 기사들.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그런데 지금 북한을 방문하려면 아무래도 중국을 거쳐야하지 않습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계한다고 해도 북한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은 외화를 벌게 해주는 중요한 자원이고 중국과의 통로가 끊기면 북한도 경제적으로 꽤 곤란할 듯한데요.

문성희: 네 동감입니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의료면에서의 준비 정도를 생각할 때 미리 예방을 하는 쪽에 아무래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이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 등의 해결책을 기다려야 하겠지요.

<기자> 네, 이 문제는 계속 북한에서도 주시할 듯합니다. 한편, 지난해 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그 동안 경제분야에서 시행돼온 개혁정책이 후퇴했다고 보이는 결정들이 눈에 띄는데요.

문성희: 네, 하나는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도를 김정은 위원장이 밝혔다는 측면입니다.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국가의 통제 아래  경제를 운영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건국 직전부터 소련식 계획경제를 도입해 왔습니다. 다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부터 조금씩 경제개혁을 허용하게 되었고, 김정은 위원장 시기에 와서는 기업의 자율성, 협동농장 농장원들의 자율성을 높이는 시책이 실시되어 왔고 그것이 매우 호평받았습니다. 개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 속에서 내각책임제를 강조한다는 것은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는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기자> ‘국가상업체계, 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는데요.

문성희: 김일성종합대학에서 2004년에 출판되던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사회주의상업’이란 인민들이 요구하는 소비품을 팔고 사는 방법으로 공급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쌀과 같은 곡식은 협동농장에서 국가가 사들이고 그것을 국정가격으로 공급소에서 공급합니다. 물론 공급한다고 해서 공짜는 아닙니다. 다만 시장가격에 비해 매우 싼 값으로 공급합니다. 이게 국정가격이죠. 그리고 일용품들은 국영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생산한 제품을 국정가격으로 국영상점에서 파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체계가 무너진 것이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시기였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언급돼 온 사실이니까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요. 다만 공급 체계 자체를 북한 정부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방에서는 식량공급 체계가 이제 무너진 지 오래지만, 평양에서는 제가 자주 다니던 2010년대 초반에는 쌀 공급이 부활되었다가 다시 중단되고 그런 것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평양시민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사회주의상업의 복원이란 공급체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계획경제의 핵을 이루는 것이 공급 체계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교과서에 따르면 사회주의상업의 본질에 맞는 상품공급제도는 주문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일반주민들이 주문하면 국가는 주문에 따라 생산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국영기업소나 공장에 생산하도록 지시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팔리지 않고 버려야 하는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평양양말공장의 실례가 가장 알기 쉽습니다. 여기서는 여성용 스타킹을 생산하는 새 설비를 2010년에 도입했는데, 2011년에 이 곳을 방문했을 때 기사장은 2012년에 2천만 켤레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008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평양의 여성 인구가 유아, 고령자도 포함해서 약 170만 5천 명입니다. 모든 여성에게 양말을 평등하게 공급한다고 추산한다면 1인당 연간 6켤레씩 공급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름과 겨울에 각각 3켤레씩 공급할 수 있는 것이 되지요. 여기서 주문제가 도입된다면 지금 시점에서 별로 양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공급할 필요가 없고 양말을 절실하게 필요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공급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그런데 공급체계 부활이 실제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과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원료 문제나 에너지 문제 등이 걸려 공장 가동이 침체되고 생산이 제대로 안 되면 아까 실례로 말씀드린 양말공장에서도 생산이 침체될 수 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공급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악순환으로 갈 가능성도 있지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공급체계에 지장이 있으면 주민들은 식료품이나 일용품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요?

문성희: 시장에는 물건이 가득차고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와는 다른 측면이지요. 그때는 국가의 공급이 갑자기 끊어져서 그것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교훈이 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도 여러 수단을 써서 해결할 방도를 찾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일본의 한 방송에서 북한 현장을 취재한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는데, 4천원 정도하는 반찬이 속속 팔리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한 달 임금이 3천원 정도라고 하는데 반찬 하나 사면 임금이 다 날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상점은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가게 여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런 상점이 평양 시내에는 꽤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수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자주 북한에 가고 있을 때는 이런 가게는 못 보았는데, 북한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봅니다. 또 이런 반찬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물건은 있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어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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