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공장∙기업소 시장화②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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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를 통해 들여다 본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의 내부 전경. 독일에서 수입한 설비로 과일을 원료로 한 음료, 술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2011년)
유리를 통해 들여다 본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의 내부 전경. 독일에서 수입한 설비로 과일을 원료로 한 음료, 술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2011년)
사진-문성희 박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북한 내 공장과 기업소에서 일고 있는 시장화 움직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학교 갓 졸업한 젊은 직원들, 공장 CNC 장치 조작

<기자> 문성희 박사 모시고 북한의 공장, 기업소 시장화 현상에 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 집을 지을 때 꼭 필요한 건축자재인 타일, 그리고 가구를 만드는 공장도 둘러보셨지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대동강타일공장을 찾은 것은 2010년 8월 말입니다. 위치상으로는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전 강선제강소)의 앞을 지나서 남포를 향해 30분 정도 자동차로 달린 장소에 있었어요. 아마도 남포시에 가까운 평양 교외에 자리잡은 곳이었다고 추측됩니다. 그 당시 북한 공장은 기본적으로 CNC(컴퓨터수치제어)화를 실현한 것을 매우 긍지삼아 말하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입니다. 공장 심장부에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18세 정도의 어린 남성과 여성이 컴퓨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물었더니 의도적으로 젊은 노동자를 컴퓨터 전문가로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타일공장에서는 주로 기와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기와가 잇달아 나오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그 당시는 내수를 보장하는 것으로 10년이 걸린다며 수출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기와의 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동강타일공장에서 생산된 녹색 방수타일. (2010년 8월)
대동강타일공장에서 생산된 녹색 방수타일. (2010년 8월) 사진-문성희 박사

중국 길림성의 중산무역수출입공수와 합영으로 가구를 생산하는 영광가구공장에도 갔는데 여기는 영광가구합영회사가 운영하는 공장입니다. 1993년 조업 당시에는 종업원이 7명밖에 안 됐습니다. 당시에는 국영기업이었는데 2004년에 정식으로 합영계약을 맺은 뒤에는 빠르게 성장해 2007년에는 종업원 290명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제가 여기를 방문한 2008년에는 평양의 2곳에 전시장, 평양 교외에 대규모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공장의 사장실에는 생산된 가구의 견본이 진열돼 있어, ‘여기서 상담이 진행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분위기는 방문한 다른 공장에서는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장과 전시장을 다 돌아본 뒤에 휴게실에 들렸는데 거기서 캔 커피와 미네랄워터(광천수)를 내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여러 공장을 돌아보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었습니다. 팸플릿(안내책자)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과연 합영공장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안내를 해준 여성 종업원한테 물어보니 노임은 북한 돈으로 2천 원이지만 쌀은 회사에서 배급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종업원의 식량을 해결해주는 회사나 공장, 기업소가 최근에 많아지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합영공장에서 중간상인들이나 이런 사람들 한테 생산한 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전시도 잘 하고 음료도 내 주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북한의 기존 공장들과 많이 달랐다, 이런 말씀이죠?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장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놀랐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게실이 굉장히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많이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기자> 결국 외국자본, 중국자본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조금씩 북한으로 들어가면서 기업문화나 이런 부분이 바뀌고 있는 거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건걸 외국에서 들어오는 자본을 통해서 배우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그리고 방금전 말씀하신 대로 종업원들이 국가가 아니라 공장이나 기업소로부터 식량배급을 받는 경우가 최근에 많이 늘어났다는 말씀이시지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반대로 말한다면 공장이나 기업소가 종업원들의 식량을 해결해주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공장이나 기업소가 인기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기업은 생산도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기자> 생필품이나 식료품 공장도 둘러보셨다면서요? 어떤 특징이 있던가요?

문성희: 2011년에는 평양양말공장과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을 방문했습니다.

평양양말공장에 대해서는 유통의 시장화를 말할 때 실례로 언급했는데 여성용 스타킹 생산 설비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의 설비는 독일에서 수입했다고 현장에서 들었습니다. 2008년에 방문한 평양건재공장도 설비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이었습니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에서는 실제로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은 유리로 막혀 있어 안에는 직접 못 들어갑니다. 견학하는 사람은 유리를 통해서 밖에서 보는데 이것은 생산품의 위생문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어보니 그 당시 세운 식료품 공장들은 모두 이렇게 꾸려져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에서는 견학을 마친 뒤 상품 판매코너에 갔어요. 샴푸, 쥬스, 술, 사이다(탄산수), 향수 등을 팔고 있었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외화로 팔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술은 5달러, 향수는 6달러였어요. 사이다를 사서 5 달러를 지불하니 거스름 대신 식초를 1병 줬습니다. 사이다는 5달러보다 약간 싸다는 뜻이지요. 사이다라고 해도 약간의 알콜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사과맛 사이다(사진 위)와 ‘대동강 사과즙’ 상표가 붙은 사과주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사과맛 사이다(사진 위)와 ‘대동강 사과즙’ 상표가 붙은 사과주스. 대동강과일종합가공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 사과맛 사이다(사진 위)와 ‘대동강 사과즙’ 상표가 붙은 사과주스.

<기자> 현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직접 사 보셨다는 말씀인데 상품의 질은 어땠습니까?

문성희: 사이다를 사서 마셨는데 맛있었어요. 재료는 사과였는데 일본에서 마시는 애플(사과) 사이다처럼 맛있었어요. 그리고 사이다가 담긴 유리병도 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1980, 90년 대에는 병 자체가 비뚤어지거나 뚜껑이 잘 닫혀지지 않는 상품도 많이 보았지만 그런 불량 상품은 전혀 없었습니다. 뭐 그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북한으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기자> 그럼 처음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음료의 병이나 뚜껑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제품도 유통되고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맥주 같은 것도 완전히 거품도 없어진 그런 제품도 팔고 있거나 병이 마개가 제대로 닫혀지지 않은 그런 것도 자주 보았고, 병 자체도 상 위에 올려다 놓으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그런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걸 감안하면 일단은 마개가 잘 갖춰진 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자> 시장경제 아래서는 사실 그런 제품은 불량품으로 일단 시장에 내 놓지 말아야 하는 게 상식인데 북한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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