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쉬먼 NED 회장 “북한문제 군사적 해결책 없어”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8.03.01
Carl_Gershman_Interview_b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 칼 거쉬먼 회장.
RFA PHOTO/ 노정민

<앵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고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 칼 거쉬먼 회장이 지난 27일 밝혔습니다. 거쉬먼 회장은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한반도 긴장상황이 일정부분 누그러졌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선 궁극적으로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칼 거쉬먼 회장을 박정우 기자가 만났습니다.

“장마당, 상대적 열린 공간…시민사회 발전 기회 제공”

<기자> NED가 북한의 장마당 연구를 지원해왔고 장마당이 자유와 평등으로 대변되는, 북한판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전조라는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같은 생각이신지, 또 현재 북한사회에서 장마당의 역할은 뭐라고 보시는지요.

<칼 거쉬먼> 장마당은 현재 북한 경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NED가 지원해 한국의 ‘데일리 NK’가 진행한 장마당 연구는 북한 내 500여 곳의 장마당에서 60만개 이상의 매대를 관찰했습니다. 32명의 북한 여성들을 교육해 장마당을 관찰, 기록하게 한 뒤 이를 외부에 알리도록 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장마당이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장소 그 자체로 중요할 뿐 아니라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확인됐습니다. 장마당은 매우 폐쇄된 체제인 북한 내에서 상대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북한이 그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사회로의 발전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현상이 지금도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나진지역 장마당 모습.
북한 나진지역 장마당 모습.
사진제공:NED

“북한내 정보통제 허물어지고 북 인권 국제연대 강화

<기자> 장마당 외에 북한사회의 변화를 이끌 새로운 현상으론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칼 거쉬먼> 세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1990년대 기근 이후 북한의 국가경제, 국가배급체계가 사실상 붕괴되면서 주민들이 굶주리게 됐고 탈북자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현재 한국에만 3만 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정착했는데요 일종의 ‘망명 시민사회(civil society in exile)’를 형성하면서 일부는 비정부기구(NGO)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NED가 이 단체들 중 9곳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매우 효과적으로 활동중입니다. 중국에 숨어 있는 탈북자를 구해오기도 하고 북한으로 외부세계의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탈북자 사회의 성장이 첫 번째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보통제의 붕괴입니다. 북한정권은 항상 정보를 통제해 주민들을 외부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 시도해왔습니다. 주민들이 북한의 상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낫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정보통제체계가 허물어지면서 주민들이 북한의 상황이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나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진 겁니다. 세 번째는 NED가 지난 20년 동안 노력해온 건 데요, 북한인권 향상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지원이 늘고 있는 점입니다. 1999년 12월 NED가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함께 북한인권에 관한 첫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한 말이 ‘침묵을 끝내자’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인권에 관해 대부분 침묵하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으로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인식을 이끌어 낼 수 있었고 이후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 임명을 거쳐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구성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전세계 인권단체들 사이에서 북한인권 향상을 위한 지원이 늘어났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NED가 지원해온 탈북자 지성호씨.
NED가 지원해온 탈북자 지성호씨.
ASSOCIATED PRESS

지성호, 지난해 오히용기상수상 계기 워싱턴에 알려져

<기자> NED는 탈북자 지성호 씨에게 활동 자금을 지원해온 최초이자 유일한 국제단체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 지성호 씨가 초대받았는데요.

<칼 거쉬먼> 사실 지성호군이 국정연설에 최대받은 정확한 정황은 잘 모릅니다. 다만 짐작가는 바가 있는데요, 워싱턴의 그리스계 비정부기구인 ‘오히데이재단(Oxi Day Foundation)’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오히’는 그리스어로 ‘노(No)’ 즉 ‘안돼’ 인데요, 1940년 10월28일 나치가 항복을 요구했을 때 그리스가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역사를 기리는 겁니다. 이 단체가 힘은 약하지만 강한자에 굴복하지 않고 ‘노’라고 외치는 용기를 기리는 ‘오히용기상(Oxi Courage Award)’을 매년 수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오히데이재단’측이 저에게 ‘오히용기상’ 수상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지성호 군을 추천했고 제가 직접 상을 수여했습니다. 2017년 10월 26일 워싱턴의 미국평화연구소(USIP)에서 수상식과 함께 만찬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많은 참석자들이 지성호 군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근 탓에 영양실조 상태에서 기차에 올라 타 옥수수와 바꿀 석탄을 훔치다 기절해 떨어지면서 한쪽 팔다리를 잃은 청년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목발에 의지한 채 탈북해 한국으로 왔고 그 곳에서 비정부기구(NGO)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만찬장은 말 그대로 감동의 물결이었죠. 지성호 군이 워싱턴에 알려지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약 3개월 뒤에 이뤄졌는 데요 내 생각으론 당시 행사를 통해 지성호 군의 감동적인 인생역정이 직간접적으로 전해져 결국 국정연설에 초대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멋진 일이었죠.

NED가 주선해 워싱턴에서 강연한 태영호 전 공사.
NED가 주선해 워싱턴에서 강연한 태영호 전 공사.
ASSOCIATED PRESS

태영호, 최대 압박과 관여 제시펜스 부통령 그대로 반복

<기자> NED는 지난해 11월에는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워싱턴 방문과 미국 의회 증언, 백악관 방문도 주선했습니다. 어떤 결실이 있었습니까?

<칼 거쉬먼> 지난해 8월 서울에서 태영호 전 공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분석력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 느낌엔 당시 그가 북한 주민들은 물론 한국, 미국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어떻게 메시지를 다듬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중이었습니다. 태 전 공사가 우여곡절 끝에 워싱턴을 방문하게 됐는데요 엄청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메시지가 매우 중요했는데요 당시 북한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태 전 공사가 대안으로 제시한 건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비 폭력적 방안(non-violent way)으로 ‘최대의 압박과 최대의 관여(maximum pressure and maximum engagement)’였습니다. 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최대의 압박과 관여’ 표현을 정확히 그대로 사용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태 전 공사의 미국 방문이 영향을 미쳤을 걸로 봅니다. 나는 그의 미국 방문과 증언이 군사적 대결 외 다른 방식으로 북한 문제의 해법을 고민하도록 유도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북 올림픽 참가 긍정적한반도 전쟁 피해야

<기자>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뒤이은 남북 간 해빙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앞으로 미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칼 거쉬먼> 개인적으로 한반도 긴장상태와 군사적 분쟁의 위험성을 감안하면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실제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긴장상황을 약간 누그러뜨렸습니다. 다만 올림픽 참가가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합니다. 전체주의 정권과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돼야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전쟁 역시 피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북한 내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런 점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긍정적이지만 그 자체로 해결책은 될 수 없습니다.

북한 문제 군사적 해결책 없어전세계 파괴

<기자> 군사적 방안에는 반대하신다는 말씀이죠?

<칼 거쉬먼> (북한 문제와 관련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습니다. 한반도뿐 아니라 전세계를 파괴할 것입니다. 매우 매우 위험합니다.

<앵커>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 칼 거쉬먼 회장과 인터뷰에 박정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