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한 여성 오늘]② 틀이 금가다

워싱턴-천소람 cheons@rfa.org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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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북한 여성 오늘]② 틀이 금가다 북한 여성이 평양의 대동강변을 걸어가고 있다.
/AP

앵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이 아직도 강요되고 있는 북한에서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결혼, 출산의 의무보다는 직업을 갖길 원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등 변화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평양에서 특권층 여성들과 교류했던 영국 외교관 배우자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탈북 여성을 통해 북한 내부에서 싹트고 있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를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여성의날 특집기획 3부작, ‘북한 여성 오늘,’ 두 번째 시간으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는 북한 여성들의 생각과 의식 변화를 천소람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시집을 왜 빨리 가야 하죠”

[박가은] 제가 오기 전까지 조금씩 바뀐 것이 “시집을 왜 가냐. 왜 이리 빨리 가냐고.” 그런 것이 이전보다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2019년에 탈북한 20대 여성 박가은(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씨는 북한에서 결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나이가 30살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면 노처녀라 불리고 결혼에 대한 압박감이 컸지만, 요즘은 “시집을 왜 빨리 가냐”며 말리는 분위기라고 박 씨는 전했습니다.

여성은 무조건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야 한다는 전통적 사고가 강했던 북한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박가은] 정말 결혼은 생각 안 해봤고요. 국가에서 배치해주는 직장에도 안 갔을 것 같아요. 직장을 가라고 하지만 저 말고도 (직장을) 안 가는 사람들은 너무 많으니까. 경찰들도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거죠. 제가 북한에 있었으면 장사를 했거나 월급을 주는 회사에서 일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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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그래픽


“날씬해지고 싶어요”

옷과 머리 모양 등 외모를 가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여성들의 욕구도 더 적극적입니다.

개인 행동이 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옷과 머리 모양은 단속 대상입니다.

이때문에 외모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조차 없었지만, 변화를 꿈꾸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2019년까지 2년 동안 평양에서 지냈던 린지 밀러 씨는 획일화된 북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고 말합니다.

[린지 밀러] 한번은 (북한 여성과) 장신구 등으로 자신을 (패션으로) 표현하는 데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는 정말 이걸 당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고 머리 스타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we can choose how to present ourselves). 하지만 북한의 평양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옷과 외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요? 아주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 역시 본능적으로 그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었습니다.

신발과 악세서리를 비롯해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틀에 박힌 이미지를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했습니다.

[린지 밀러] 하지만 아주 사소한 걸로 자신을 치장하거나 표현 할 수는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발로 말이죠. 평양 여성들은 가끔 아주 높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곤 했습니다. 신발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죠.

평양의 여성들은 몸매에 신경을 쓰고 다이어트, 즉 살을 빼는 데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밀러 씨는 북한에서 여행 도중 만났던 한 여성이 “몸매가 신경쓰이고, 날씬해지고 싶다”고 말한 것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린지 밀러]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일을 꼭 해야만 하잖아요.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고민을 하고 어떻게 살아나갈지 고민하는 반면 평양의 (특권층) 젊은 여성이 “몸매가 신경 쓰인다” “날씬해지고 싶다” 고 말하는 것이 정말 대비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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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그래픽


프리랜서 전문직에 대한 호기심

이뿐만이 아닙니다. 북한 여성들도 자신만의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 즉 전문직 여성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했다고 린지 씨는 말합니다.

직업이 선택이 아니라 국가에서 정해준 대로 직장에 배치돼 일해야 하는 북한에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젊은 여성들 마음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린지 밀러] 저는 자영업(self-employed)에 대해서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전 프리랜서 음악가거든요. 하는 일이 계속 바뀌고 장소도 자주 바뀌죠. 한 기관, 한 명의 상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노동조건이 북한 여성들에게는 매우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은 흥미로움으로 다가간 거죠.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평양 여성들이 북한에서는 생소한 ‘프리랜서 음악가’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질문 공세를 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며칠이나 일을 하느냐’, ‘지금 위치에 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느냐’ 등을 묻고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비교하곤 했습니다.

무역일꾼 출신의 50대 탈북 여성 김혜영(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씨는 외부 정보를 접할 기회 가 많은 평양의 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컸을 걸로 짐작합니다.

[김혜영]그런데 평양에서 외국인들도 만나보고, 외부 정보를 접해 본 젊은 여성들은 직업관이나 가치관이 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더 잘 살고 싶다'라는 욕구를 억누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육아와 자신의 삶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

출산 후 육아와 자신의 삶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 역시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겐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린지 씨가 만난 한 평양 여성은 매일 달리기와 수영, 테니스 등 운동을 즐겼는데, 출산 후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고 푸념했습니다.

[린지 밀러]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그녀가 누리고 살았던,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말이죠. 이건 엄마로서 흔한 일이잖아요? 아이를 낳고 난 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박가은 씨도 요즘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출산 기피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박가은(가명)]확실히 이전보다 달라진 것은 여자들이 아이 낳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아요.

결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받아온 북한 여성들의 마음 속에도 자신만의 삶을 즐기고 전문직업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는 이런 의식의 변화 앞에 견고하기만 했던 북한식 남성중심 가부장 사회의 틀 역시 조금씩 금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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