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평양∙지방 격차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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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_b 북한의 묘지 전경. (2010년 9월)
/문성희 박사 제공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문성희 박사님, 북한에서는 평양의 발전된 모습은 관영매체의 보도를 통해 많이 소개되곤 하는 데 지방도시의 상황이 어떤지는 보도가 잘 안 됩니다. 지방도시의 실상에 대해서 최근에 들으신 이야기가 있는지요?

문성희: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조선신보 평양특파원이 보내온 글이 2월 초 조선신보에 실렸는데 기사의 표제는 ‘경제부흥 모델 강원도’입니다. 강원도 원산에 지난해 12월에 꾸려진 ‘강원도자력갱생전시관’ 방문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글이에요.

<기자> 어떤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까?

문성희: 글에 의하면 강원도에서는 전력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경제 발전의 최우선과제로 내세우고, 발전소 건설에 모든 힘을 기울이고 왔다고 합니다. 전시관에는 강원도 내 수력발전소 배치도가 있다고 하는데, 배치도에는 이미 완공된 안변청년발전소, 원산청년발전소, 원산군민발전소와 건설중인 6개 군의 군민발전소가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에는 원래 발전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하는데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중소 규모는 물론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에 힘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지금 안변청년발전소로 불리는 금강산발전소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여러 차례 현지지도를 한 것이 보도됐습니다. 당시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건설이 진행되었는데 기록영화 등을 보니까 그야말로 가혹한 건설현장이었습니다.

<기자> 그만큼 힘들게 발전소를 건설했다는 말이네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저는 영상을 본 것 만인데 매우 위험한 공사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건설 노동자들이 물 속에 직접 잠수를 해서 발파작업까지 감행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런 희생 끝에 건설된 발전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북한 사람들로부터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전시관에도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부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그것도 모두 북한 사람들이 자체의 힘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자력갱생인 것이지요.

<기자> 그러니까 전시관을 ‘자력갱생전시관’이라고 이름 지운 것 같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이렇게 강원도에서는 우선 전력문제를 해결한 뒤에 여러 종류의 공장들이 개건된 것 같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수산사업소, 김치공장, 구두공장, 종합식료공장의 제품들이 전시돼있다고 합니다. 원산구두공장에 관해서는 저도 2010년대 초 북한에 자주 갔던 시기 TV 등에서 원산구두공장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북한에서는 매우 자랑스러운 공장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보통 노동자들은 가죽구두가 아니라 현지 사람들이 ‘편리화’라고 부르는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데 혹 그 분들이 자기 나라에서 생산된 가죽구두를 신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기자> 네 그렇지요.

문성희: 그렇지만 당시 현지 사람들이 말하기에 TV를 보면서 “그 구두는 어디로 가나?”라고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고 해요. 자기들한테 차례지지 않으니까. 2010년대 초에는 아직 그런 상태였어요. 물론 지금이야 좀 더 상황은 좋아졌겠지요.

<기자> 가죽구두가 전혀 보급되지 않았다는 건가요?

문성희: 그건 아니지요. 간부들이나 저와 접하던 안내원이나 운전기사들은 가죽구두나 합성가죽구두 등을 신고 있었어요. 지방에 가면 편리화를 신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좀 더 많아지지만. 그리고 평양에서는 고급상점에 가면 이탈리아나 외국에서 수입된 고급스러운 구두들도 팔고 있었던 것을 목격했어요. 이탈리아식당 2층이었던가? 물론 값도 비싸지요.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못 산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런 구두를 구할 수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이미 2010년대 초반에도 이탈리아제 고급 구두가 평양에서도 팔리고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어떤 사람들이 고객이었나요?

문성희: 아무래도 지방에서 ‘돈주’로 불리는 신흥 부자들이 이런 비싼 구두를 사지 않았을까 싶어요.

희천제2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전경.(2011년8월)
희천제2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전경.(2011년8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북한 당국이 강원도 개발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무슨 배경인가요?

문성희: 북한 당국은 강원도를 관광지로 꾸리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마식령 스키장도 그렇지만 요즘은 갈마지구에 리조트 건설이 한창이지요. 지난해 북한에 가서 강원도 원산을 방문한 일본 기자에 따르면 갈마지구 리조트 건설이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강원도에는 원래 금강산도 있고, 관광지로 꾸리기에는 적당한 곳이라고 봅니다. 그런 것도 있어 지방 안에서도 강원도의 개발이 촉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러나 제재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문성희: 물론 제재 문제는 고려해야하지만 관광객들이 오는 것 자체야 제재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자기들의 힘으로 건설만 하면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외화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이 북한을 방문했던 당시 지방에도 가보셨나요?

문성희: 네, 평양특파원을 할 때, 그리고 대학원 시기 연구사업을 할 때에도 지방에 가보았어요. 평양특파원 시기에는 황해도의 농장이나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나 지방에 가봤어요.

<기자> 지방과 평양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나요?

문성희: 그거야 평양은 북한으로 보면 ‘쇼윈도’나 같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양과 지방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요. 다만 그건 어느 나라도 다름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일본도 오사카나 나고야, 고베 뭐 그런 대도시는 달라도 지방도시는 아무래도 도쿄와는 차이가 나지요.

<기자> 지방의 발전 정도는 어떠했나요?

문성희: 물론 북한 국가적으로는 평양을 우선 정비하고 그 다음에 지방이라는 생각이니까 지방의 발전 정도는 평양에 비하면 아무래도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요. 제가 2011년에 동해안의 어느 지방도시에 갔을 때 놀란 일이 있어요. 그 지방도시에 가기 위해 평양에서 함흥까지 열차로 갔는데 도중에 열차가 멈출 것을 예상해서 평양에서 샌드위치를 가져갔어요. 예상보다 일찍이 함흥에 도착했기 때문에 샌드위치가 남았어요. 그래서 지방도시에 도착했을 때 한 가정주부에게 샌드위치를 준 거에요. 그러니 그가 샌드위치를 손에 들고 계속 보는 것이에요. 마지막에는 냄새를 맡아보기까지 했지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기자> 그래요?

문성희: 저는 좀 화가 났지요. “아직은 썩지 않았으니 먹어도 괜찮다”고 했어요. 내가 썩은 음식을 주고 그게 걱정이 되어 냄새를 맡아보았다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처음 본 음식물이라, 어떤 맛이고 냄새인지 궁금했어요.” 평양에 사는 사람이라면 샌드위치 같은 건 흔히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지방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샌드위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자> 역시 평양과 지방에 생활수준의 차이가 컸나 보네요?

문성희: 그러나 지방이 오히려 잘 산다는 이야기도 한편에서는 들었어요. 함흥 같은 경우 평양보다 부자가 있다고. 평양은 아무래도 정부가 있고 하니까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 활개를 띨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아요. 그렇지만 지방에서는 그런 건 상관없으니까. 라선같은 곳은 시 전반적으로 평양보다 잘 산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여기는 아시다시피 경제특구이고 중국 러시아의 국경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활도 전반적으로 풍요롭다고 들었습니다.

<기자> 따로 지방에서 들은 이야기는 있어요?

문성희: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지방의 어느 큰 공장 노동자가 있는데, 거기는 새로운 설비가 투입되어 가동이 잘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그 노동자한테 물어보았더니, “물론 새로운 설비는 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설비가 새롭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나중에 가동이 잘 안 되게 되었지요”라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지방에서 공장 가동은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2010년 경 이야기었기때문에 이제는 좀 더 해결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기자> 그러니까 설비가 완전히 갱신되야 공장 가동도 잘 된다는 것이겠지요. 공장이 잘 가동 안 되면 생산도 침체된다는 것이겠지요?

문성희: 네, 그렇지요. 당시 그게 걸리고 있었던 문제 중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갱신됐을 지도 모릅니다.

<기자> 오늘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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