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대유행] 북한도 '비상' <3> 국제사회가 내민 손 잡아야

워싱턴-노정민, 손예진 인턴기자 nohj@rfa.org
2020.03.20
red_cross_corona_b.jpg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북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의료 장비 및 진단 키트를 지원하기 위해 유엔이 대북 제재를 면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북한 적십자 활동 모습.
/연합뉴스

앵커: ‘코로나 19’ 세계적 대유행 사태를 맞은 북한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입니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 의료 체계와 사회보장제도를 고려하면 의료용품뿐 아니라 식량, 생필품 지원도 시급해 보입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가 북한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여전히 대북지원을 선뜻 수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그만큼 북한 주민들의 건강과 생존 환경은 악화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의 ‘코로나 19’ 사태를 진단하고 북한의 의료∙보건 체계를 점검해보는 집중 기획을 마련했는데요.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현주소와 이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노정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생활고 직면 북 주민 “쌀 지원해 주면 좋겠다”

“장사를 못 하니까 그게 제일 힘들죠.”

“여기 사람들이 지금은 코로나비루스(바이러스)보다 굶어 죽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고 다 그래요.”

“코로나에 대해서는 만성적으로 대하고 있어 크게 관심 없어요. 다만 국경이 봉쇄됐으니까, 먹고사는 것에 지장 있을까 봐 그 걱정이 더 많아요.”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3월 초 일본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북한 북부지방에 사는 한 주민에게 ‘코로나 19’ 사태 속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가장 필요한 도움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최근 (3월 12일), 휴대폰 문자를 통해 답한 이 북한 주민은 북 중 국경의 봉쇄와 격리와 통제 등으로 장사를 나가지 못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공산품은 평소보다 20%나 가격이 올랐고, 장마당에 나가 봐도 물건 파는 사람이 없는 데다 당국도 아무런 공급을 못 하다 보니 곳곳에서 못 살겠다는 말만 들린다는 겁니다.

이 주민은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하냐”는 질문에 “아직 (코로나 19) 병이 없다고 하니 쌀 같은 것을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19’와 관련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문에 북한 북부 지방에 사는 한 주민이 3월 12일,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해 준 답변 내용. 이 주민은 “현재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크기 때문에 식량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움직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아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19’와 관련한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문에 북한 북부 지방에 사는 한 주민이 3월 12일,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해 준 답변 내용. 이 주민은 “현재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크기 때문에 식량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움직임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아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취재협조–아시아프레스

북한 당국이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북 중 국경봉쇄와 격리 조치, 대외 활동 통제 등을 강행하다 보니 북한 주민들에게는 감염 그 자체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큰 어려움입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북한 내부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최근(3월 1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설명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일반 주민은 전염병이 돌고 죽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이에 대한 공포감은 크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사실 당국이 아직 (환자, 사망자)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잖아요. 반면, 시장에는 중국 물품이 다 떨어져 장사가 잘 안되고, 거의 모든 시장에 물건이 없으니까 판매하는 물건도 없고, 그래도 먹고살아야 해서 공업품 장사를 했던 사람도 식료품을 파는 ‘식료품 전문시장’처럼 됐다고 합니다.

북한 보건 의료 실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센터의 코틀랜드 로빈슨(Courtland Robinson) 교수는 최근 (3월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코로나 19’ 사태로 북한 주민이 단기간 소득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공중보건 차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처럼 저소득층이 많은 나라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본적인 식량과 생필품 등을 공급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그런 여력이 없는 경우에는 국제사회와 민간단체, 기업 등이 그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고 로빈슨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코틀랜드 로빈슨 교수] 식량은 물론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충분치 못한 북한 주민에게는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소득을 얻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식량과 현금 등을 지원받아야 하는데, 국제사회가 충분히 도울 여력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북한에서 청진 의과대학을 졸업한 최정훈 한국 고려대학교 공공정책 연구교수도 현재 북한 주민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최정훈 교수] 격리된 주민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가 있습니다. 전염병에 걸리느냐, 격리돼 굶어 죽느냐.

전염병에 걸렸다 해도 살아남을 확률이 있어요. 그런데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집에서 격리되면 굶어 죽는 것은 확실하죠.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참다 못해 박차고 나가죠. 북한의 격리는 항상 그렇게 돼 왔습니다. 전염병보다는 기본적인 주민의 생존권이 가장 위협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 ‘코로나 19’에 대해 빨랐던 국제사회의 대응

북한의 보건 의료 체계와 사회보장제도 등을 고려하면 의료장비, 물품 등에 대한 긴급 지원뿐 아니라 식량과 같은 경제적 지원도 시급해 보입니다.

실제 국제사회의 대응은 비교적 재빨랐습니다.

국제구호단체인 ‘국제적십자연맹’(IFRC), 프랑스의 국제 의료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가 지난 2월 20일, ‘코로나 19’에 관한 장비와 지원품을 신속히 보낼 수 있도록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재 면제를 요청했고, 이례적으로 빨리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이는 유엔과 국제구호단체가 ‘코로나 19’와 관련해 매우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대북지원에도 긴밀히 협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국제구호단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리처드 블루위트 국제적십자연맹 유엔 상주대표도 ‘코로나 19’와 관련한 지원을 최대한 빨리 북한에 전달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최근(2월 26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힌 바 있습니다.

[리처드 블루위트 대표] 확실한 점은 실행 계획을 담당하는 저희 측 관계자들이 지원을 현실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물품을 구하고, 둘째로 구한 물품을 북한으로 전달할 경로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쉬운 사안은 아니지만,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도 ‘코로나 19’에 관한 대북지원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선 로버트 데스트로 국무부 민주주의 인권 노동 담당 차관보가 최근 (3월 11일) “미국은 ‘코로나 19’와 관련해 대북지원을 제공할 의사를 전해왔다”고 말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일주일 뒤 (3월 18일) 미국 폭스뉴스에 출연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미국 상원에서도 일찌감치 ‘코로나 19’에 대한 대북지원에 관심을 보인 바 있습니다.

미국 내 민간단체도 당장 북한 내 활동이 여의치 않지만, ‘코로나 19’ 상황을 주시하며 언제든 의료, 식량 지원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통일부도 3월 초 여건이 성숙되는 대로 북한과 보건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으로부터 지원 요청은 아직 받지 않은 상황입니다.

북, 국제사회가 내민 손 잡으려면?

이처럼 유엔과 국제구호기구, 민간단체와 미국∙한국 정부 등이 ‘코로나 19’와 관련한 대북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먼저 여러 가지 정황 속에서도 여전히 확진자와 사망자가 없다는 북한 당국의 태도는 적극적인 대북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로빈슨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코틀랜드 로빈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더 많은 진단 장비와 기술적 지원, 보건 인력에 대한 훈련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지원이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문제가 없고, 스스로 해결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 그것이 우려되는 점입니다.

투명한 정보 공유를 통해 북한 주민이 자발적인 예방 운동을 전개하고, 국제사회의 지원도 받아야 하는데, 북한 당국이 주민의 안전보다 체제의 이미지를 더 중시한다고 북한 의사 출신의 최정훈 교수도 꼬집었습니다.

[최정훈 교수] 북한 내부에서도 비공개니까 외부는 더 하겠죠. 전염병 대책의 개요를 보면 정보를 공개해서 계속 운동으로 만드는 것이 골자인데, 내부에서 공개를 안 하니까 외부에는 더 안 하죠. 그러다 보니 북한 주민이 전염병에 걸리는 피해가 발생하고, 건강에 위협을 받는데도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사회에 공개를 안 하니까 다른 지원도 못 받고 있잖아요. 북한 주민의 안전보다는 체재의 이미지에 더 치중한다고 볼 수 있죠.

/RFA 그래픽

분배의 투명성 문제도 걸림돌 중 하나입니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최근 (2월 26일) 의회 청문회에 나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앞서 정확한 상황 파악과 분배의 투명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드워드 마키 의원] 만약 북한이 필요하다면, 미국 정부와 유엔의 인도주의 지원을 제안하시겠습니까?

[로버트 킹 전 특사] 그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것이 고려돼야 하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제안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만약 대북지원을 준비한다면 북한이 어떤 상황인지, 지원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모니터링을 할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로빈슨 교수도 북한이 ‘코로나 19’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위해서는 모든 주민이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분배의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북한 당국이 먼저 군사 부문에 투입하는 자원을 의료 보건 분야에 재할당하고 대북지원으로 제공되는 물질적, 기술적 지원을 주민의 건강과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둘 때 국제사회가 갖는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코틀랜드 로빈슨 교수] 지금은 무엇이 우선순위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은 북한 주민의 건강과 공중 보건이 우선순위가 돼야 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지원이 쓰여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서 필요한 것이며, 그렇게 될 것이란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코로나 19’ 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가 직면한 최대 위기가 됐습니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투명성과 공조가 중요하고 좋은 정책과 의료용품은 서로 공유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종식을 위해 애쓸 때이지만, 북한만 여전히 고립을 자초하며 제자리걸음입니다.

또 지금은 북한이 국제사회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조언입니다.

북한 당국이 먼저 ‘현재 코로나 19의 상황은 어떤지’, ‘북한 주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알리고, 모든 주민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주어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북한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실현될 것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