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한미일 탈북자 6인 솔직 토크 ① “희망을 찾아 왔어요”

도쿄-박정우 parkj@rfa.org
2018.04.02
defectors_job_training_b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직업교육센터가 4월 봄학기부터 탈북자들을 위한 특별반을 개설해 의류관련 기술을 가르칠 예정이다.
RFA PHOTO/유지승

앵커: 북한을 떠나 미국과 일본, 한국 등 각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 이들이 되짚어 보는, 북한에서의 삶과 현재 정착한 곳에서 느낀 차이점은 뭘까?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日本政府 拉致問題対策本部)는20대부터 30대, 그리고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탈북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북한 이야기와 좌충우돌 자유세계 정착기를 마련해 4회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 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미국∙일본∙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6인의 솔직 토크,’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희망을 찾아 왔어요’편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박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목숨 걸고 떠나온 길.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힘들었던 기억. 하지만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가족 생각,….’

북한을 떠나 미국, 일본, 한국에 각각 정착한 탈북자 6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3월5일 일본 도쿄의 내각부 본부 회의실에 모인 최초연, 마틴 리(이상 미국 정착), 김철민, 박경림(이상 일본), 김지민, 김수인(이상 한국) 씨 등 6명이 그 주인공입니다. 2000년대 중반에 북한을 떠나 낯선 땅에서 힘겨운 ‘둥지틀기’에 나선지 10년, 이들에게 새 세상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먼저 북한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동기를 물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김수인 씨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김수인: 그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을 경험했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사회주의 체제와 직장에 다니면서 사회에서 느끼는 현실이 너무나 달랐어요. 그 곳에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나오게 됐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탈북한 뒤 역시 남한에 정착한 김지민(가명) 씨도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고 털어놓습니다.

김지민: 아버지도 무역업을 하면서 북한의 불분명한 법적 잣대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이라는 사실에 ‘이 땅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아버지가 탈북하셨고,….

“북한서도 밥 굶은 적 없지만

왠지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움”

북한에 있을 때도 밥을 굶은 적이 없었다는, 일본에 정착한 김철민(가명) 씨는 왠지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었다고 말합니다.

김철민: 북한에서 생활할 때 밥을 굶는 건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삶은,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웠고, 생각하기가 힘들었고,….

희망을 좇아 북한을 떠난 ‘새내기’ 탈북자들이 ‘여긴 참 다르다’고 느낀 건 다양했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최초연(가명) 씨는 북한에서 나쁘다고 교육받은 자본주의가 오히려 장점이 많았다고 지적합니다.

최초연: 제일 (크게) 느낀 건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니까 사회주의만 좋고 자본주의는 나쁘다고 배웠거든요. 자본주의가 노력한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시간이 돈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자기가 시간을 투자하면 수입이 생기는데, 북한은 한 달을 일해도 하루 먹을 것을 구하기가 힘들거든요. 월급도 안주고 배급도 안 주면서도 출근 안 하면 노동교화소에 잡아가거든요. 그게 다른 것 같아요.

영국 사업가가 북한을 오가며 모은 북한 엽서, 포스터, 그림 등의 전시회 모습.
영국 사업가가 북한을 오가며 모은 북한 엽서, 포스터, 그림 등의 전시회 모습.
RFA PHOTO/박지현

김지민 씨는 정보의 양과 질이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고 말합니다. 처벌을 감수하고 외부 소식을 접했던 북한과 달리 남한은 말 그대로 ‘정보의 홍수’였다는 겁니다.

김지민: 북한에 있을 때에는 외부의 정보를 듣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할 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였는데요, 여기는 정보의 홍수죠.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서 뭘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정말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방송에 나오는 내용도 충격적이었어요.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의 소식이나 (그들이) 잘 했다는 내용만 있는데, 한국은 사건 사고 소식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을 비판하는 소식도 나오고,….

미국에 정착한 마틴 리(가명) 씨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점을 꼽습니다.

마틴 리: 제가 느낀 점은 자유라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자유는 김일성을 믿는 자유밖에 없는데 제가 (여기 와서) 아는 자유는 사람이 뭐든 다 누리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북한의 교육∙선전과 달리

자본주의 사회 복지 월등”

일본에 정착한 박경림(가명) 씨는 북한의 선전과 달리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복지제도가 월등했다고 말합니다.

박경림: 제가 일본에 와서 감사하게 느낀 것은 교육∙의료 분야에서 북한보다 복지가 잘 돼 있다, (그래서) 저소득층도 능히 잘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없으면 치료도 받을 수 없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교육받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생활총화’로 알려진 자기반성과 상호비판에서 해방됐다는 게 가장 크게 다가왔다고 김수인 씨는 털어놓습니다.

김수인: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북한에서는 생활총화를 많이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무조건 생활총화를 하는데 엄청난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다음 주에는 어떤 것을 비판하지?’ 라는 부담에서 해방됐다는 해방감이 있었고,….

반면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는 북한도 최근에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고 김지민 씨는 지적합니다.

김지민: 북한은 한국보다 이르게 결혼하는 편인데, 이유는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보니까 일찍 결혼해서 집안 살림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새로운 탈북자 말을 들어보니까 북한에서도 결혼하는 나이가 엄청 늦어졌더라고요.

“남한 드라마, 북 여성 결혼관도 바꿔

수동적 아닌 능동적 비판 능력 키워”

그런데 뜻밖에도 남한 드라마가 북한 여성들의 결혼관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김 씨는 말합니다.

김지민: 가장 큰 이유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남한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이 가장 크다고. 남한 드라마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정말 잘해주니까 내 주변에는 그런 드라마 속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탈북자들을 만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탈북자들을 만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참가자들 대부분이 북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만큼 교육문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합니다. 탈북 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마틴 리 씨는 미국은 다양성을 가르쳐 준다고 지적합니다.

마틴 리: 북한 교육은 김 씨 가족에 대해 기록된 것만 가르쳐주는 과목이 다 들어가있어요.  역사라도 김씨 가족이 다 포함됐거든요. 제가 미국에서 대학교 다녀보니까 역사나 모든 것을 보면 세계의 공통점을 다 합해서 보는 것이 역사구나, ….

김수인 씨는 수동적인 존재로 길러지는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비판할 줄 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김수인: 저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어요. 과목 중에 ‘정책 평가론’이란 과목이 있어요. 정부 정책에 대해 일반 학생이 맞다, 틀리다 라고 비판한다는 것이 북한에서는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많이 달랐고,…. 그러데 북한에서는 당과 수령이라고 하죠. 그 분들의 위대성만 무조건 주입식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한가지 사상에만 집중시키기 때문에 사람이 수동적인 존재로 느껴졌어요.

박경림 씨는 집안 배경에 상관없이 맘껏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 많이 달랐다고 털어놓습니다.

박경림: 정말 마음만 먹으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사회구나! 내가 열심히 공부한다면 그 어떤 것도 도전할 수 있겠구나 그런 힘이 생겨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러지 못해요. 대학을 간다고 해도 토대가 좋아야 해요. 그리고 조직 단체에서 추천을 해줘야 이 사람이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것이 없어요. 자기가 선택해서 자기가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차별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에선 학생도 각종 작업에 동원돼

북한 교육열도 일본∙남한 못지 않아”

최초연 씨는 북한에서 학생들이 각종 작업에 동원됐던 기억이 생생해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최초연: 학생들이 노동자보다 더 일을 많이 할 정도에요. 대청소, 동상 대청소, 농장, 벽돌나르기 퇴비나르기, 공사도 다 다니고, 중요한 것은 학교에 내는 과제를 못하면 또 다른 벌칙이 따라와요. 동을 얼마씩 가져오라, 어느 날까지 토끼가죽을 가져오라고 하면 갖다 바쳐야 해요.

김수인 씨도 비슷한 경험을 직접 했다고 거듭니다.

김수인: 제가 올 때까지도 그랬어요. 학생들은 가져오라는 것 안 가져오면 사상투쟁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말도 안되게 내라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서 사람이 못 가져오잖아요.

한편 높은 교육열은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김지민 씨는 말합니다.

김지민: 북한도 90년대 저희가 학교 다닐 때 어느 정도 집안이 받쳐주면 남자들은 공부시키고, 여자들은 예술을 시켰거든요. 괴외를 시켰다는 말이에요. 학교 공부 외에 과외를 따로 받았거든요. 지금은 북한이 더 심해서 과외를 달러로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저희 때 90년대에는 밀가루, 쌀 등을 주면서 과외를 했어요. 부모들이 자식을 뒷받침해주기 어려워서 그렇지 정말 교육열이 남한∙일본에 못지 않거든요.

앵커: 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 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미국∙일본∙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6인의 솔직 토크’ 1편 ‘희망을 찾아 왔어요’ 편이었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는 2편 ‘내 삶은 내가 결정해요’ 편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