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손전화②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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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국제통신센터 안에 위치한 고려링크의 손전화 판매소 간판.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손전화 판매소가 있었다.(2011년 8월)
평양 국제통신센터 안에 위치한 고려링크의 손전화 판매소 간판.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손전화 판매소가 있었다.(2011년 8월)
사진: 문성희 박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인민생활 향상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문성희 박사 모시고 북한의 인민생활 향상 부문, 그 중에서도 손전화 보급에 관해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 스마트폰이라고 하죠, 컴퓨터 지원 기능을 추가한 손전화도 북한에 보급돼 있나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지금 보도되는 영상을 보면 대체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제가 2011, 2012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그렇게까지 보급은 안 돼 있었어요. 일부 IT(정보통신기술)에 능숙한 사람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 무역 등에 종사하는 사람만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거의 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니 그 보급 속도가 놀랄 뿐이지요.

<기자>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국제 인터넷 망에는 접속할 수 없지 않나요?

문성희: 네, 북한 주민들이 자기 스마트폰으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으로 바깥 사정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북한은 컴퓨터 이메일도 그렇지만 다 인트라넷이에요. 바깥 정보는 철저히 단속하고 있지요. 그런데 인트라넷이기는 하지만 2011년에 북한 갔을 때 흥미로운 얘기를 들어봤어요. 어떤 남성의 이야기인데 그 남성의 아들이 PC방에서 친구들과 채팅하는데 미쳐서 채팅을 위한 돈을 구하기 위해 집에 있는 물건을 무턱대고 장마당에 팔아 넘기고 있었다는거에요.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여성이 “우리 집 아들도 친구와 채팅만 해서 공부를 안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컴퓨터를 못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처음에 북한에서 핸드폰 보급이 허가된 2003년부터 2004년 사이에 PC방이 많이 붐비고 있었답니다. 게시판에 투고하는 젋은 사람도 많았고 홈페이지도 여러개 나오고 있었다는데 인트라넷에 미쳐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이 너무도 많아졌기에 당국에서 인트라넷이나 홈페이지를 규제해 버렸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북한에서 들을 줄이야 몰랐어요. 많이 놀란 기억이 있어요.

<기자> 그러니까 북한에서도 특히 젊은 층에서 손전화를 무분별하게 많이 사용하면서 각종 부작용이나 사회적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말이죠?

문성희: 이미 7-8년 전에도 네 중학생 또래의 10대들 속에서 채팅이 유행한 바람에 공부를 안 하거나 채팅을 위한 돈을 구하기 위해 부모 몰래 집에 있는 물건을 장마당에 내다 파는 현상이 있었는데. 뭐 그런 정도의 부작용, 사회문제는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13살 경부터 핸드폰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런 애들 중 부모가 핸드폰을 사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핸드폰을 구하기 위한 사회적 문제가 생길수도 있지요. 제가 직접 확인한 바는 없지만 그런 것도 추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손전화를 구입할 때 작성해야 하는 가입신청서. (2011년 8월)
북한에서 손전화를 구입할 때 작성해야 하는 가입신청서. (2011년 8월) 사진: 문성희 박사

<기자> 북한 체신성과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이 합작으로 운영하는 고려링크가 북한의 대표적인 이동통신망인데요, 북한에 계실 때 고려링크 휴대전화 판매소를 방문하신 적이 있다면서요?

문성희: 2011년에 북한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핸드폰을 구하려고한다고 안내원한테 말하니까 데려가 주었어요. 이제 오래 돼서 기억이 잘 안 나고 구역은 잘 모르는데 국제통신센터 안에 고려링크의 휴대전화 판매소가 있었어요, 1층에 고려링크의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계단에 고려링크의 간판이 있었습니다. 가게 자체는 2층에 있었습니다. 매우 좁은 방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핸드폰은 외국인에게도 판매합니다. 그 당시 휴대전화 단말기가 215달러부터 320달러까지 종류에 따라 금액도 달랐어요. 통화요금은 1분에 2달러(북한돈은 210원)로, 사용하고 싶은 시간을 말하면 처음부터 단말기 안에 카드를 놓어주는 시스템이었어요. 핸드폰를 새로 계약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고 너무 바빠서인지 접대하는 여성직원의 태도는 최악이었지요, 휴대전화 단말기는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해서 북한 안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었지요.

<기자> 당시 그 곳에서 직접 휴대전화를 구입해 사용해 보셨나요, 통화 품질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실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구입해 봤자 북한 주민들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 전화기를 가지고 국제전화밖에 못해요. 그런데 한 번 현지 사람의 전화를 빌려서 통화해 본  일이 있는데 품질은 나쁘지 않았어요.

<기자> 2011년, 2012년에 방북했을 당시 북한 내 손전화 보급 열풍을 직접 느끼셨다는 말씀이시죠?

문성희: 그럼요. 평양에서는 손전화를 가지지 않고 있는 어른을 못 볼 정도로 모두가 갖고 있었어요. 2011년에 제가 북한 체신성과 오라스콤의 합작회사 ‘체오’ 취재를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이유는 사무소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오라스콤에서 나와 있는 사람과 함께 보통강호텔을 거점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에 특별히 참관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고 안내원을 통해서 가입자 수를 질문하니까 70만 명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2011년 8월의 숫자에요. “수익은 말 못한다, 사업은 잘 되고 있다”는 답이 안내원을 통해서 돌아왔어요. 취재를 거절당해서 좀 아쉬웠어요.

<기자> 최근에는 북한 중학생까지 손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더군요, 기기 가격이나 요금이 꽤 비쌀 듯한데요?

평양 거리에서 손전화를 사용하며 걷고 있는 북한 여성. (2011년9월)
평양 거리에서 손전화를 사용하며 걷고 있는 북한 여성. (2011년9월) 사진-문성희 박사

문성희: 아이들도 13살 정도가 되면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다고 했지요. 남자보다 여자가 빨리 흥미를 가지게 된다고도 들었어요. 아이들한테 “생일 선물로 뭐가 좋니?”라고 물으면 “손전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북한 현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어요.

<기자> 손전화를 이용해 통화뿐 아니라 영화를 보거나 채팅이라고 하죠, 여러 사람이 화면을 통해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을 듯한데요, 북한에서는 어떻던가요?

문성희: 게임이나 영화의 화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2011년이나 2012년 당시는 아직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화면으로 보기에는 좀 피곤하니까 영화를 보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봅니다. 다만 문자 교환은 이미 활발했어요. 호텔 종업원 같은 것은 심심해서인지 문자를 계속 하고 있었고 내가 가까이에 가도 모를 정도로 문자교환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친한 안내원이 휴대폰을 통해 음악을 제게 들려준 일도 있었어요.

<기자> 한국이나 미국 등에서는 손전화가 사실상 삶의 일부라고 할 정도로 일상 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는데요 북한은 어떻습니까?

문성희: 북한도 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핸드폰이 없었던 시기에는 못돌아가겠지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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