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1주년 특집기획] <1> 짧은 만남 긴 교착
2019.05.31
앵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로 이뤄진 정상회담을 계기로 관계개선의 새 국면을 맞은 미국과 북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데 이어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던 지난 2월 베트남(윁남) 하노이에서의 2차 미북정상회담까지 미북 양국은 숨가쁘게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만남에서 협상 결렬이란 반전을 남기며 양국 관계는 향후 행보에 많은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기류 조성을 위한 미국과 북한 간 외교적 접촉에 물꼬를 틀긴했지만 여전히 양국관계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완의 만남’인 싱가포르회담.
한덕인 기자가 당시 상황과 양측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봤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처음 만난 미북 두 정상은 ‘함께’란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과 “함께 협력해 해결해나갈 것”이라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만나게 돼서 영광이며 함께 협력해서 반드시 성공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난제를 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협력하게 돼서 매우 영광입니다.
이에 김 위원장도 “도전과제가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우리의 발목을 지루하게 붙잡던 과오를 과감하게 이겨냄으로써 대외적인 시선과 이런 것들을 다 짓누르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마주 앉은 것은 평화의 전주곡이라 생각합니다.
두 정상의 이런 모습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 였습니다.
오히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미북 두 정상은 서로를 향한 노골적인 비난을 이어가며 적대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일정을 19일 앞둔 상황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겨냥한 북한 측의 비난에 대응하며 “극도의 분노와 적대심 때문에 회담을 취소한다”고 서한으로 통보했다가 이틀 후에 다시 취소 결정을 번복하는 등 유례없는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미북 두 정상은 단독회담에 이어 참모진이 배석한 확대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호텔 주위를 함께 산책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두 정상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 39분께 문을 열고 나란히 등장해 합의문에 공동 서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우리는 오늘 중요한 서류에 서명합니다. 굉장히 포괄적인 문서로, 양측의 좋은 관계를 반영하는 결과물입니다. 약 두 시간쯤 뒤에 기자회견을 할 예정입니다. 그 전에 관련한 내용을 배포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서명하게돼 매우 영광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덮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문건에 서명하게됩니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며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를 위해서 노력해주신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시 싱가포르회담에서 도출된 공동합의문은 4가지 조항을 담았습니다.
합의문은 첫번째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두 나라의 국민들의 평화와 번영에 부합되는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두번째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한반도에서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 협력하기로 했다,”
세번째 “2018년 4월27일 판문점선언을 재차 확인하고,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POW) 및 전쟁실종자(MIA)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비교적 큰 합의가 이뤄질 것을 기대했지만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미국이 북한과의 새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틀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당시 미북 두 정상의 역사적인 첫 만남과 관련한 입장문에서 “6월 12일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숱한 어려움이 있겠지만 다시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이 담대한 여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회담이 끝난지 1년이 지난 지금 미북 간 싱가포르에서의 합의가 어느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 세종연구소의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최근(5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금까지 나타난 싱가포르 합의에 대한 미북 양측의 이행 수준은 미미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싱가포르회담이 1년이 지났는데 사실 이행된 건 별로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어떻게 말하자면 싱가포르회담 합의 자체가 굉장히 낮은 수준의 합의라고 그럴까, 구체적인 내용이 별로 없었잖아요. 비핵화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마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싱가포르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좀 더 구체적인 이슈로 북한과의 협상을 기대했는데, 사실 기대와는 달리 후속 구체적인 실무협상이 안 됐단 말이죠. 그래서 하노이가서 까지 회담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그런게 돼 있는게 없고, 그래서 앞으로 제 생각은 북한과 미국 간에 실무적인 협상, 구체적인 이슈를 다루는 회담이 몇 번 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 수석연구위원은 진전의 핵심은 실무회담에 있다며, 세번째 미북정상회담이 성사가 된다면 실무회담에서 준비를 잘 마친 후 정상회담에서 합의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도록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까지는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며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기조를 계속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트럼프의 모든 관심은 지금 사실은 북한보다는 대선에 가있거든요. 그래서 대선을 만약 염두에 둔다면, 트럼프로서는 자기가 북한을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가 좋고, 자기가 북한을 성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홍보를 계속 해야하는거에요. 실패했다고 말 할 수는 없는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트럼프는 내년 대선까지는 지금처럼 북미 협상이 성공적이었다 이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일단 재선에 성공하고나면, 그 다음에 정치적 변화가 올 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내년 대선까지는 현 기조대로 북미 관계가 좋고 자기는 김정은을 굉장히 신임하고, 그리고 북한이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다 이런 기조로 계속 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미국과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첫 두 조항에서 평화를 위한 공조와 관계 증진을 약속했지만, 지난 하노이 2차 미북정상회담의 결렬을 통해 드러난 입장차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언론에 과시하며 추가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최대 대북 압박 전략을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 측도 트럼프 대통령의 차기 대선 상대인 조 바이든 전 미 부통령을 최근 비난하며 미북 두 정상의 관계를 부각시키면서도,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회담에 임하지 않겠다고 강수를 두며 기싸움을 이어갔습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대화 재개는 없을 것이고, 핵 문제 역시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대북제재를 유지하며 일괄적 비핵화를 주장해 온 미국에 맞대응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연구소 국방연구소장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 식의 ‘최대 압박’전략을 들고 나왔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카지아니스 소장은 “미국이 최소한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점점 더 많은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지금 시점에 북한이 추가로 도발해도 놀랍지 않을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매튜 하 연구원은 현 시점에 미국의 대북 정책을 하나로 규정하기엔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매튜 하 연구원] 아직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좋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실상 1년 전에 시작된 사안에 대한 대북 제재 조치를 북한의 두 번째 미사일 발사 시험 바로 직후 미 법무부가 발표한 점도 눈 여겨볼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현 시점의 미 행정부가 지닌 대북 기조가 압박과 대화 중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는지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대화를 이루기 위한 압박이 될 가능성도 있고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를 언급한 세번째 조항과 관련해 헨리 페론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미북 간 비핵화의 정의에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페론 선임연구원은 작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북한이 바라보는 비핵화 개념을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과 남의 영역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선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 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핵억지력이 사라지는 것 또한 북한이 원하는 비핵화에 포함된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위한 공조의 내용을 담은 네 번째 조항 역시 진전이 부진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간 미군유해 발굴을 위한 조율이 지난 하노이 2차회담 결렬 이후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은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 북한 측과의 연락이 두절돼 올해 9월 말 끝나는 2019회계연도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회담의 성패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의 한반도 전문기자인 문성희 박사는 싱가포르회담에서의 협상이 깨지지 않고 합의문이 발표된 점과 미북 두 정상이 처음으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성희 박사] 제가 보기에는 역시 어쨌던간에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가 만났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깨지지않고 합의문이 발표됐다. 그 두가지 아닙니까.
문 박사는 싱가포르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대화 기조를 유지하며 핵실험이 중지된 상황에서 미국은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 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문성희 박사] 저는 그렇겐(실패했다고) 안봅니다. 대화를 하고 있는 이상은, 북한이 지금 미사일을 쏘지만 작은 탄도미사일 하나 쐈다한들 그건 작은거죠. 핵실험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런식으로 가면 결국 미국의 목적을 달성을 하고 있는거죠. 물론 북한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진전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어쨌던간에 깨지지 않고 대화를 계속 유지하자, 그런쪽으로 가고 있는거 자체가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반면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한반도 담당 편집위원은 ‘톱다운’ 방식의 싱가포르회담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한 것은 ‘혼란의 시작’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네 역시 이런 너무 혼란스런, 진짜 북미 대화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너무 안이하게 북한에게 양보했다, 그러니까 북한이 원하는, 첫번째 평화체제를 만들고, 그 다음에 단계적으로 비핵화한다, 그런 뜻으로 싱가포르 합의 맺었다는게 잘못된 이야기의 원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가포르회담만 없으면 이렇게 혼란에 빠지지도 않았고, 한편으로 보면 김정은 위원장도 트럼프 외교의 하나의 피해자라 할 수 있을텐데, 혼란의 시작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대화를 한다는 것과 바로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구분지었습니다.
실무 차원에서의 불협화음에 대한 대처와는 달리 탑다운 방식의 외교에서는 논의 간 드러난 문제를 수정하는 데 조율이 어렵다는 겁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과 대화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역시 대화를 한다는 것은 바로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상회담이 실패한다고 하면, 이번에도 실패했지만, 상처가 너무 심각하거든요. 실무측 차원에서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음 단계가 있다거나, 조율이 가능할텐데, 그것이 하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마키노 위원은 “이미 한 번의 정상회담이 실패했기 때문에, 불과 일년전에 ‘코피작전’을 생각했던 나라인 미국은 언제든 되돌아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세기의 담판’으로 기대를 모았던 싱가포르회담에서 미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이행은 여전히 미미합니다.
현재로선 양국 정상이 다시 만날 가능성 역시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뚜렷한 입장차 속에서도 대화 기조를 이어가기로 의기투합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굴곡진’ 양국 관계를 본 궤도에 올려 놓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