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토 웜비어 사망 3주기] ① 커지는 ‘분노’, 계속되는 ‘싸움’

워싱턴-노정민, 한덕인 nohj@rfa.org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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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오크 힐 묘지(Oak Hill Cemetery)에 잠들어 있는 오토 웜비어 씨. 그의 묘비에는 ‘OTTO F. WARMBIER’란 이름과 함께 ‘아들, 형제, 친구’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오크 힐 묘지(Oak Hill Cemetery)에 잠들어 있는 오토 웜비어 씨. 그의 묘비에는 ‘OTTO F. WARMBIER’란 이름과 함께 ‘아들, 형제, 친구’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RFA PHOTO/ 노정민

앵커: 오는 6월 19일은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가 사망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무고한 대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북한 당국을 향한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아들을 잃은 웜비어 씨 부모는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자산압류까지 강행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웜비어 사망 3주기를 맞아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그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웜비어 씨의 억류부터 사망까지의 상황과 북한을 상대로 한 유족들의 끝나지 않은 싸움을 전해드립니다. 보도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억류로 시작된 한 가족의 비극

2016년 1월 2일. 4박 5일 일정으로 북한을 여행했던 오토 웜비어 씨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 이륙을 기다리던 비행기 안에서 북한 군인에 의해 체포됩니다. 평양의 한 호텔에서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날 비행기는 여행사 대표와 웜비어 씨만을 남겨둔 채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웜비어 씨 본인과 가족의 고통은 시작됐고, 그가 미국에 혼수상태로 돌아오기까지 1년 5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입수한 136페이지 분량의 워싱턴 DC 연방법원 증거청문심리(Evidentiary Hearing, 2018년 12월 19일) 속기록에는 그의 가족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은 물론 아들을 대신해 북한 정권에 맞서기로 한 웜비어 씨 부모의 약속과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웜비어 씨의 체포 당일부터 사망할 때까지 피 끊는 부모의 심정이 생생하게 묻어납니다.

당시 첫 증인으로 나선, 웜비어 씨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 씨는 중국에 도착해 전화하겠다고 약속한 아들의 체포 소식을 듣는 순간 불안하고 걱정됐지만, 그때는 여행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웜비어 씨가 북한에 홀로 남겨지고 여행사도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했을 때는 “두려웠다”고(Terrified) 아버지는 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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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웜비어 씨의 석방을 위해 미 국무부가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로버트 킹 당시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긴박했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킹 전 특사는 최근(5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웜비어 씨의 억류 상황을 전해 들은 뒤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과 미북 간 뉴욕 채널 등 여러 경로를 통해 그의 억류 사실과 배경 등을 확인하고 신병 확보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오토 웜비어 씨가 북한에 억류됐을 때가 1월 2일이었는데, 당시 설 연휴 기간이라 국무부도 휴무였죠. 웜비어 씨와 함께 있었던 학생들이 중국으로 돌아온 뒤 미국 관리와 연락을 취했고, 웜비어 씨가 비행기에 탑승해 이륙을 기다리는 사이 북한 군인이 와서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우리는 뉴욕 채널과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웜비어 씨에 관한 정보와 북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국무부는 웜비어 씨의 부모에게 “북한이 아들의 억류를 내세워 무언가를 요구할 텐데, 이 사실을 언론이나 대중에게 알리면 북한의 판돈만 올라갈 테니 북한이 하려는 대로 놔두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북한이 아들을 해치지 않고,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을 보장했다”는 말도 일단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프레드 웜비어 씨는 밝혔습니다.

웜비어 씨 가족은 그렇게 고통 속에 20일을 기다렸지만, 2016년 1월 22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웜비어 씨의 체포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가 관광객으로 입국해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감행하다 적발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상황은 더 악화했습니다. 2016년 2월 29일에는 웜비어 씨가 기자회견에서 혐의를 자백하는 영상이 공개됐고, 곧이어 3월 16일에는 북한의 최고재판소가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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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무소식…북한이 우릴 편집증에 걸리게 해”

갑상선 암을 이겨내고 어렵게 웜비어 씨를 낳은 그의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에게 아들은 늘 의욕에 넘치고, 여행을 좋아하며 세상을 다르게 봤던 멋진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북한에 억류된 순간부터 아들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그녀는 국무부의 조언처럼 웜비어 씨가 자백한 뒤 곧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 시험을 감행하고 미북 관계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북한 당국이 아들을 죽일 것만 같아 두려웠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겨울철에 따뜻한 옷은 입고 있는지, 양치질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등 북한에서 아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느껴보려는 시도만으로도 어머니는 충분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웜비어 씨가 15년 노동교화형을 받은 것도 그랬지만, 아들과 전혀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는 현실이 더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7월 11일에는 미북 간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뉴욕 채널마저 끊기게 됩니다.

/그래픽-김태이

이런 가운데 국무부는 매주 웜비어 씨 부모와 전화 통화를 하고 당시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직접 면담하는 등 웜비어 씨의 송환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국무부 측은 “북한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뿐, 아들에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계속 부모를 안심시켰습니다. 킹 전 특사도 웜비어 씨 부모와 만나 아들의 송환에 대해 논의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웜비어 씨 부모가 워싱턴에 왔을 때 2~3차례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웜비어 씨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웜비어 씨 부모의 걱정에 대해서도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다뤄왔던 다른 억류 사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의했었습니다.

웜비어 씨의 고향인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도 그의 억류 사실은 큰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웜비어 씨의 부모에게는 모든 걱정과 위로, 호기심 등이 부담이었습니다. 혹 북한에 있는 아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입을 다물고 다른 지역에 가서 생필품을 살 만큼 이웃의 관심을 피해 다니다 보니 편집증(Paranoid)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신디 웜비어 씨는 털어놨습니다.

웜비어 씨의 부모는 끝까지 아들의 생사조차 알지 못했고, 심지어 국무부도 그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웜비어 씨의 억류부터 사망까지 모든 과정을 취재했던 신시내티의 유력 언론매체인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의 앤 세이커 기자도 최근 (6월 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그가 억류돼 있던 1년 5개월 동안 전혀 소식을 듣지 못하다 끝내 혼수상태에 빠진 채 돌아온 것은 매우 비극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앤 세이커 기자] 3년 전을 기억합니다. 웜비어 씨의 송환을 위한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있었지만, (기자회견과 판결 이후) 15개월 동안 그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은 물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스웨덴 대사관 측과의 대화도 거부했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웜비어를 꼭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문제는 그가 혼수상태, 즉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려 15개월 동안 말이죠.

/그래픽-김태이

동물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

웜비어 씨가 북한에 억류된 지 1년 5개월 만인 2017년 6월 초. 그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 씨는 늦은 밤에 당시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아들이 2016년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래픽-김태이

그리고 2017년 6월 13일, 억류 1년 5개월 만에 북한을 떠난 웜비어 씨가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공항에는 부모와 함께 의료진들이 대기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웜비어 씨를 데려온 윤 대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며 감격에 벅찼던 그의 부모는 웜비어 씨를 보는 순간 왜 윤 대표가 울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엄마가 바라본 아들의 눈은 마치 유대인 대학살 당시 정치범수용소에서 볼 수 있던 누군가의 눈과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들과 첫 대면의 순간은 ‘짐승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곳에는 눈이 붓고 머리를 삭발한 채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있는 웜비어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한다며 안아줬지만, 둘 사이에는 어떤 교감도 없었습니다.

프레드 웜비어 씨는 188cm의 키에 몸무게가 80 kg이 넘었던, 활기차고 사랑스럽고 착했던 아들이 동물로 전락해 있었다며 이는 매우 비극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앤 세이커 기자] 미국으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 씨가 이곳의 작은 공항에 도착했고,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신시내티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의료진의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웜비어 씨가 매우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검시관이나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은 웜비어 씨의 몸이 매우 깨끗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북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와 관리를 했을 겁니다.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180~190파운드(80~85kg) 몸무게의 환자를 돌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24시간 내내 많은 신경을 썼을 겁니다. 하지만 끝내 웜비어 씨는 처음이 아닌 상태로 집에 돌아온 것이죠.

혼수상태였던 웜비어 씨는 그를 살리려는 가족과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6일 만인 2017년 6월 19일, 22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북한 당국은 웜비어 씨가 식중독균인 보툴리누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을 뿐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유감의 뜻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미국 의료진이 보툴리누스균의 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여전히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웜비어 씨의 부모는 아들이 북한의 고문과 구타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맞서 정의 실현” 아들과 약속

웜비어 씨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부모는 아들의 생명을 빼앗은 사람들을 상대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연방법원 심리 당시에도 이들은 판사 앞에서 북한에 대해 ‘악마(evil)’라는 표현을 수차례나 사용했습니다.

이때부터 웜비어 씨의 부모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부터 법적 소송, 북한 자산 압류 등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래픽-김태이

이같은 노력 끝에 웜비어 씨가 사망한 지 5개월 만인 2017년 11월, 북한이 테러지원국에 재지정됐고, 대북제재의 내용을 담은 오토웜비어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그의 부모는 2018년 4월, 북한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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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를 맡았던 워싱턴 DC 연방법원의 베릴 하월 판사는 2018년 12월 24일, 웜비어 씨에게 가한 고문과 억류, 재판 외 살인과 유족에게 입힌 상처의 책임을 물어 북한이 유족에게 5억113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하월 판사가 심리를 마무리할 때 “미국 법정 앞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제시된 증거가 중요하고, 이번 재판 기록은 웜비어 씨 사건뿐 아니라 더 큰 의미와 목적을 위해서라도 가치가 있다”라고 발언한 배경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킹 전 특사도 웜비어 씨의 사망은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에 대한 법적 절차와 보호 의무를 저버린 북한 정권의 명백한 인권 유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웜비어 씨의 사망은 북한이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보장하는 인권과 법적 권리, 보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북한이 억류된 사람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른 접견조차 거부한 것을 보면, 북한이 자국민과 다른 나라 국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북한 인권 기록에 있어 명백한 폐단의 증거입니다.

세이커 기자도 신시내티 현지에서 북한의 배상 판결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앤 세이커 기자] 이곳 신시내티에서 배상 판결에 관한 기사를 읽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북한의 살인자나 과실치사 피의자를 직접 구속할 수 없는 대신 재정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상징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웜비어 씨 부모는 단순히 상징적인 차원을 넘어 미국 내 북한 자산을 추적해 이를 압류하고 은행 계좌에 동결돼 있던 북한 자금을 끝까지 찾아내고 있습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에서 제재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올리버 크리스칙 변호사는 최근(6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웜비어 씨 부모의 노력으로 북한의 불법 자금 통로가 공개되거나 대북제재의 회피망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올리버 크리스칙 변호사] (웜비어 씨 유족이) 배상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대북제재 위반 관련자들의 불법 네트워크가 공개될 수 있는 것도 북한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차단되거나 동결된 자금의 행방을 파악하는 노력을 통해 연루자들을 노출시키는 것도 기존의 대북제재 회피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인 대학생 웜비어 씨의 억류와 사망은 평범하고 화목했던 한 가정을 아픔과 절망에 빠뜨렸고, 그 분노는 북한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숨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사무치게 그립고 먼 훗날 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부모의 말에서 아들을 향한 애절한 마음은 더 깊어갑니다.

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결코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웜비어 씨 부모의 의지는 더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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