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토 웜비어 사망 3주기] ② 밥 킹 “열악한 북 인권 극적 사례”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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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6월 13일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를 태운 미군 군용기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런컨 공항에 도착해 웜비어 씨로 보이는 남성을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지난 2017년 6월 13일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를 태운 미군 군용기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런컨 공항에 도착해 웜비어 씨로 보이는 남성을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REUTERS/Bryan Woolston/File Photo

앵커: 북한에 억류된 오토 웜비어 씨의 석방을 위한 미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당시 이 문제를 전담했던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끝내 웜비어 씨를 무사히 고국으로 데려오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킹 전 특사는 미북 간의 경색된 외교 관계 만큼 문화적 차이도 분명히 존재하고, 미국인 억류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역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웜비어 씨의 사망은 북한이 인권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웜비어 사망 3주기를 맞아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그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웜비어 씨의 억류 당시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로버트 킹 전 북한인권특사와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웜비어 씨 억류, 정치적 동기는 아니었을 것”

오토 웜비어 씨가 북한에 억류된 직후부터 미 국무부는 웜비어 씨 부모와 수시로 연락하고 만나면서 그의 석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미북 간에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한계는 있었고, 당시 진전이 없는 답답함 속에 웜비어 씨 부모와 국무부 간에 작은 마찰도 있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웜비어 씨 석방에 관한 국무부의 노력과 미북 간 외교 관계 등을 되짚어보기 위해 조셉 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 로버트 킹 전 북한인권특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북한에서 혼수상태였던 그를 직접 데려왔던 윤 전 대표는 더는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사양했고, 킹 전 특사는 최근(5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회견에서 웜비어 씨의 억류부터 사망까지 모든 과정과 함께 그의 사망이 남긴 상징적 의미를 되돌아봤습니다.

⦁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사께서는 당시 북한이 왜 웜비어 씨를 억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북한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억류된 미국인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웜비어 씨 경우는 왜 그랬다고 보시나요?

[로버트 킹 전 특사] 북한이 특정 미국인을 억류한 이유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로는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미국을 자극하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하기도 하죠. 한편, 북한에 억류된 대부분 미국인은 북한의 기준에서 볼 때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북한 주민에게는 매우 중요한 데, 미국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들이죠. 북한 주민과 미국인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웜비어 씨의 경우 호텔 벽에 붙어 있는 선전물을 떼어 바닥에 내려놓는 영상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기준에서 말로는 지적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큰 의미는 없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매우 큰 사건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선전물이었기 때문이죠. 북한 주민은 물론 지도부도 큰 존경의 뜻을 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들이 북한에서는 매우 큰 문제였던 겁니다.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 있죠.

웜비어 씨의 경우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억류한 것은 아니었고, 특히 미북 관계를 고려한 결정이었다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북한에도 존중받아야 하는 법이 있고, 그 법에 따라 자국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대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봅니다.

⦁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는 됩니다만, 단지 선전물을 떼려 했다는 것만으로 15년 노동교화형은 너무 가혹한 처벌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그 점에서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개입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 당국은 우리가 법을 위반하면 안 되고, 오히려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웜비어 씨에게 가혹한 처벌을 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북한이 미국인을 억류한 사례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몇 주 만에 풀려났고, 케네스 배 씨는 2년 넘게 억류돼 있었습니다. 이는 처벌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준비됐을 때 사면하는 것인데, 이는 미북 관계의 광범위한 맥락 가운데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과거 경험 바탕으로 조용히 해결 노력”

⦁ 물론 당시 국무부에서도 웜비어 씨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웜비어 씨의 부모는 오히려 국무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특히 그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도 국무부가 함구해줄 것을 요청한 것에 대해 실망스러워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과 관련해 협상할 때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미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제기해 큰 문제로 만든다면,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을 되돌려주는 것을 볼모로 큰 대가를 바랄 겁니다. 예를 들어 주한 미군의 철수나 막대한 벌금을 내게 한다든지 말이죠. 과거에도 억류된 미국 시민에 대한 협상에 임할 때 조용히 뒤에서 협상하면서 이들의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다고 해서, 웜비어 씨의 석방이 빨라졌을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또 북한과 어떻게 협상에 임하느냐가 문제인데, 국무부와 웜비어 씨 가족은 충분히 북한을 존중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웜비어 씨 가족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웜비어 씨 부모는 사랑하는 아들이 석방돼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끝내 그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 개인적인 바람과 외교적인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또 북한과 협상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웜비어 씨 부모는 모든 사람이 북한에 굽실대는 것(kowtowing)처럼 느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웜비어 씨 부모가 한 말에 대해서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 성공적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북한에 억류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과 외교적 지렛대가 거의 없습니다. 외교 관계도 없고, 70년간 경색된 관계가 유지되고 있고요. 또 우리가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을 요구한다고 해서 풀려나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이 미국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어떤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법과 규정, 관행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도 하죠. 비록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누구라도 북한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미국 정부가 도울 수 있는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저는 웜비어 씨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매우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습니다.

⦁ 케네스 배 씨가 북한에 억류됐을 때의 경험도 있으신데요. 웜비어 씨의 사례와 어떤 점에서 달랐습니까?

[로버트 킹 전 특사] 제가 국무부에 있을 때 케네스 배 씨의 억류 문제로 북한 관리와 여러 번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제가 직접 평양에 가서 배 씨를 만나고 그의 석방을 요청했는데, 당시 전반적으로 북미 관계가 좋지 않은 때였기에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또 한국계 미국인인 에디 전 씨가 북한에 6개월간 억류된 적이 있는데, 2011년 초에 저는 북한 측과 미국의 인도주의 지원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고, 전 씨의 석방도 여러 번 요청했습니다. 이후 제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를 석방해달라고 했죠. 당시 평양을 방문하고 저와 대표단이 미국으로 되돌아가기 전날, 북한은 전 씨를 석방했고, 저희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사안을 놓고 북한과 논의하고 협상했지만, 어느 하나 쉽거나 간단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픽-김태이

북 외무성도 웜비어 상태 파악 못 한 듯

⦁ 북한은 여전히 웜비어 씨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사님께서도 웜비어 씨가 북한의 고문과 폭력에 의해 혼수상태에 빠졌고, 사망했다고 판단하십니까?

[로버트 킹 전 특사] 북한은 웜비어 씨가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져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웜비어 씨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안타깝지만, 이는 북한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 물론 북한이 이같은 상황을 원치 않았겠지만, 고문이나 폭력 가능성이 제기됐고요. 이는 과거 억류 사례와 다른 것 같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물론 그것이(고문이나 폭력) 사망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는데요. 아마도 재판 직후 웜비어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을 받은 날에 어떤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올 때까지 북한에서 1년 반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미국에 와서 사망한 것이죠. 아마도 이것이 북한으로서는 시간을 오래 끌 수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북한이 원하지 않은 어떤 일이 발생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어려움을 겪은 것 같습니다. 아마 북한 외무성에도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고, 권력층에도 어디까지 보고가 됐는지 모르지만,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이에 대해 충분히 보고를 받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 웜비어 씨의 부모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 북한에 맞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전에 억류됐던 사람들과 다른 행보인데요. 소송뿐 아니라 북한 내 자산을 찾아내고 정보 공개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매우 적극적인데요. 이같은 행보가 북한에는 이전과 다른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버트 킹 전 특사] 미국에서는 누구든지 법적 절차를 밟을 기회가 있고, 이는 웜비어 씨 부모의 선택이자 결정입니다. 하지만 미북 관계가 매우 제한적이고, 외교 관계도 없기 때문에 법원의 어떤 판결도 북한에 강제 집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국의 법체계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지만, 북한에 어떤 결과나 변화를 바라거나 벌금을 부과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웜비어 씨 부모가 미국의 법적 절차를 통해 계속 북한에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지만,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웜비어 씨의 사망은 열악한 북한 인권 문제의 상징적인 사건이 됐고, 그의 부모는 지금도 북한에 맞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특사님께서 국무부에 재직하실 때 웜비어 씨가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개인적으로 특사님께 웜비어 씨는 어떤 의미인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매우 슬픈 사건이고, 웜비어 씨 본인과 그의 부모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웜비어 씨 사건은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온 것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과 권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매우 적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네. 킹 전 특사님. 오늘 함께 오토 웜비어 씨를 회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오토 웜비어 씨가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함께 당시 미 국무부의 외교적 노력과 미북 관계, 상징적 의미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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