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오토 웜비어 사망 3주기] ③ “고향 사람들 마음 속 영원히 기억”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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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비어 씨가 사망한지  꼭 일년 되는 날인 2018년 6월 19일.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놓고 있다.
웜비어 씨가 사망한지 꼭 일년 되는 날인 2018년 6월 19일.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의 무덤 앞에 꽃을 놓고 있다.
RFA PHOTO/ 노정민

앵커: 오토 웜비어 씨의 고향인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는 그가 사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웜비어 씨 관련 소식이나 북한을 상대로 한 유족의 법적 투쟁에 현지 주민들의 응원과 격려가 이어지고 있고,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웜비어 사망 3주기를 맞아 당시 상황을 살펴보고 그의 죽음이 남긴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웜비어 씨의 억류부터 사망까지 전 과정을 취재했던 지역 유력매체인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의 앤 세이커 기자로부터 현지 분위기를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웜비어 씨와 북한 사이에 강한 연관성 부여”

⦁ 앤 세이커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1주기 때 신시내티에서 뵙고, 2년 만인데요. 어느새 웜비어 씨의 사망 3주기가 됐습니다. 요즘 신시내티 현지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앤 세이커 기자] 이미 잘 아시겠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이곳에서도 ‘코로나 19’의 확산과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흑인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시위와 소요 사태가 발생한 것이 모든 사안을 덮어버렸습니다. 지금 시기에 이곳 주민들이 오토 웜비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웜비어 씨에 관한 기사를 쓸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높은 관심을 나타냅니다. 웜비어 씨에 관한 어떤 기사라도 항상 많은 독자들이 읽고 있고, 웜비어 씨 사건을 통해 이전보다 한반도 현안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미 정보당국의 관리가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을 맞아 웜비어 씨의 어머니에게 전화해 축하하기도 했고요. 지난해에는 웜비어 씨 부모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할 만큼 웜비어 씨는 정치적으로도 미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상징적인 인물이 됐습니다.

또 웜비어 씨가 북한 여행을 할 때 이용했던 미국의 영 파이오니아 여행사 대표가 지난 3월, 33살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졌는데, 우리 회사에서도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웜비어 씨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죠. 또 제가 썼던 기사 중에 뉴욕의 정치인이 북한 유엔대표부 앞 도로의 이름을 오토 웜비어로 다시 지으려 했던 소식도 있었는데요. 그만큼 웜비어 씨가 사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그의 죽음은 북한과 관련해 강한 연관성을 안겨줬습니다.

“당시 부검 기록에는 치아 손상 없어... 사망 원인 여전히 미궁”

⦁ 아직도 신시내티에서는 웜비어 씨에 대한 관심이 크고, 자연스럽게 웜비어 씨를 통해 북한을 연상케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세이커 기자께서는 웜비어 씨의 억류부터 사망까지 직접 취재하신 것으로 압니다. 3년 전을 다시 한번 회고해 주신다면요?

[앤 세이커 기자] 오토 웜비어 씨가 미국으로 돌아와 이곳에 있는 공항에 도착했고, 최고의 의료진이 있는 신시내티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의료진의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웜비어 씨가 매우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웜비어 씨가 사망하고 몇 달 뒤, 웜비어 씨 부모가 미국 폭스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웜비어 씨의 치아가 고문에 의해 손상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에 그런 주장을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해밀턴 카운티 검시관에게 부검 리포트를 의뢰했습니다. 당시 부검 결과에는 치아의 변형에 관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검의에게 물어봤더니 부검 당시에도 웜비어 씨의 치아에는 별다른 손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검시관이 다시 웜비어 씨의 치아 사진을 신시내티의 법의학 치과의사(forensic dentist)에게 보내서 어떤 손상이 있느냐고 물었답니다. 당시 치과의사는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치아에 별다른 손상이 없고, 이전과 똑같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검시관이나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은 웜비어의 몸이 매우 깨끗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북한에서) 치료를 잘 받았다는 뜻이겠지요. 북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치료와 관리를 했을 겁니다.

⦁ 하지만 웜비어 씨의 치아를 비교한 사진과 함께 그의 치아가 외부의 충격에 의해 변형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앤 세이커 기자] 이에 대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웜비어 씨의 부모가 미국에서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법원은 북한이 웜비어 씨 부모에게 5억 113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죠. 이같은 판결의 배경에는 웜비어 씨가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겁니다.

⦁ 결국, 북한에서 진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추정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앤 세이커 기자] 맞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식중독균인 보툴리누스 감염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했는데요. 그럴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언제든 북한이 웜비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진실을 알려주기를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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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주민, 북한에 맞서는 웜비어 씨 유족 응원”

⦁ 웜비어 씨의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해 배상 판결을 받았고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신시내티 현지에서는 어떤 반응인가요?

[앤 세이커 기자] 이곳 신시내티에서 관련 기사를 읽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라는 거죠. 물론 웜비어 씨 가족이 배상금을 온전히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이는 상징적인 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웜비어 씨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해 소개될 때마다, 힘내고 정의를 위해 끝까지 싸우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많습니다.

⦁ 신시내티가 작은 도시이기도 해서 웜비어 씨에 관한 기사나 소문 등이 금세 퍼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심도 크다면서요?

[앤 세이커 기자] 매 순간 ‘북한’이란 단어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나올 때마다 저의 93세 된 어머니도 웜비어 씨에 관해 묻습니다. 그만큼 이곳 신시내티에서는 북한과 웜비어 씨가 매우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했던 젊은 대학생에게 끔찍한 일이 생겼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북한에 불편한 현지 시선 여전”

⦁ 3년 전 웜비어 씨의 사망을 통해 신시내티 주민들이 북한에 대해 잘 알게 됐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앤 세이커 기자] 미 오하이오주 남서부 지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매우 높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6개월 뒤에 웜비어 씨가 사망했죠. 그리고 일 년 뒤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첫 미북 정상회담을 했고요. 이후 ‘아름다운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 사랑에 빠졌다’라고 하니까 이에 대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웜비어 씨의 죽음과 진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독재자 김정은 위원장과 우호적으로 협상하는 것에 대해 말이죠.

이곳 주민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관계, 그리고 웜비어 씨 사건의 진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직 웜비어 씨 사망의 진실이 명확지 않기 때문이죠. 웜비어 씨의 끔찍한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북한의 독재자와 어떻게 우호적으로 협상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물론 이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지만, 오하이오주 사람들은 흑과 백처럼 명확한 것을 좋아합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지도자가 명확하고 투명하게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모호하고 흐릿하게 처리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 세이커 기자께서는 웜비어 씨의 모든 과정을 취재하시고, 기사도 쓰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웜비어 씨에 대한 개인적인 추모 메시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앤 세이커 기자] 저 개인적으로 웜비어 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에게는 젊은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웜비어 씨와 같은 와이오밍 고등학교에 다녔고요. 지금은 이 지역의 언론인이죠. 웜비어 씨가 숨진 뒤 그 친구가 웜비어 씨에 대한 멋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멋진 친구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사랑하고 좋아했는지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웜비어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용감하고 멋지고,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이후 3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친구는 직장을 바꾸고, 결혼해서 집도 장만하고, 첫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웜비어 씨는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합니다. 숨질 당시 웜비어 씨가 22살이었으니까 지금쯤이면 법대나 의대에 진학했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당신의 친구가 웜비어 씨와 시간을 보내면서 북한에서 겪었던 경험에 대해 들을 수도 있겠죠. 웜비어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기억하는 만큼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텐데, 정작 현실은 그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 네. 세이커 기자님. 오늘 함께 오토 웜비어 씨를 회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오토 웜비어 씨가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부터 사망까지 취재했던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의 앤 세이커 기자로부터 웜비어 씨 사망 3주기를 맞은 신시내티 현지 분위기를 들어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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