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위기의 북한 경제] ① 간부 · 평양시민도 생활고

워싱턴-노정민, 한덕인 nohj@rfa.org
2020.07.01
202006A-11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6월 24일) 밀반입한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해 준 현재 북부 지방의 경제 상황.
/아시아프레스

앵커: 대북제재와 ‘코로나 19’에 따른 북 중 국경의 봉쇄로 북한의 민생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시장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고, 일부 대도시에선 꽃제비가 늘어나는가 하면, 취약 계층 가운데에는 도시 생활을 접고 산이나 농촌으로 떠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북한 주민 스스로 시장 활동을 통해 먹고사는 기본 경제구조와 환경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여전히 자력갱생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북 중 국경이 봉쇄된 지 5개월이 넘은 현재,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북한 내 민생경제는 어떤 상황인지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현금 감소에 따른 민생경제 악화... “요즘은 쌀 외상이 많다”

“요즘 북부 지방 대도시마다 어린이나 노년층 꽃제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취약계층 가운데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농촌이나 산에 들어가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는 과거 고난의 행군 때 많이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시장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다. 돈이 돌지 않는다”

“간부들도 먹고살기 힘들다. 6월에는 보안원들도 본인 배급만 받았고 가족들 몫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 사는 주민이 최근(6월 24일) 밀반입한 휴대폰의 문자를 통해 전해 준 현재 북부 지방의 경제 상황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일본 ‘아시아프레스’에 의뢰해 북한 내 현지 소식통에게 ‘현재 북한 주민의 경제생활은 어떤지’,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평양시민들과 당 간부들의 경제 상황은 어떤지’ 등을 물었습니다.

이들이 문자를 통해 전한 북한의 민생경제는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먼저 일부 북부 지방에서는 하루에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절량세대’가 늘었습니다. 시장에 쌀과 옥수수 등 식량은 충분한데, 정작 주민들은 이를 사 먹을 돈이 없는 겁니다. 예전에는 공업품 외상이 많았다면, 요즘은 쌀 외상이 많아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양강도 혜산과 함경북도 무산, 청진 등 대도시의 시장이나 역전에는 10대의 어린 꽃제비가 눈에 띄게 많아졌고, 도시의 취약 계층 가운데에는 궁핍한 생활을 더는 견디지 못해 산이나 농촌으로 떠나는 주민도 생겨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지난 1월 말부터 5개월 넘게 ‘코로나 19’에 따른 북 중 국경의 봉쇄로 수출입이 막히다 보니 장사가 안되고, 당장 현금 수입이 줄어들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북 중 국경의 봉쇄로 무역이 거의 차단되면서 물건 거래가 잘 안 되고, 북한 내에서는 ‘코로나 19’ 방역을 이유로 사람과 물건의 이동까지 엄격하게 제한했기 때문에 경제가 침체된 것인데요. 현금 수입이 많이 감소하면서 이처럼 눈에 띄는 어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북한 내부 협조자의 전언이었습니다.

신의주에 사는 가족과 자주 연락한다는 중국 단둥의 한 무역업자도 최근 (6월 2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북부지방의 경제 상황에 대해 “과거 ‘고난의 행군’ 못지않다”고까지 평가했습니다.

이 무역업자는 북 중 무역의 중단으로 생필품 부족이 심해지면서 북한 내 물가가 ‘코로나 19’ 이전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가운데 현금 수입이 없는 경기침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며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지금은 시장에 식량이 공급돼도 정작 주민들은 돈이 없어 못 사 먹는 실정이고 북 중 국경이라도 좀 열렸으면 좋겠는데, ‘코로나 19’의 재확산 소식에 현재로서는 언제가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일본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문성희 박사는 최근(6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며, 특히 중국으로부터 수입 급감에 따른 민생 부분 타격이 클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문성희 박사] 어디까지나 추측으로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는데, 지금까지 대북제재 때문에 어려웠던 북한의 경제 상황이 ‘코로나 19’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과 거래가 막혔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수입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2016년에 31억 9천200만 달러이던 수입 규모가 2017~19년에는 22억 1천710만 달러~33억 2천800만 달러로, 수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괜찮았는데, 올해 4월에는 수입 역시 2천180만 달러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물건이 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보는데요. 특히 민생 부문이 심각하겠지요.

최근 조사된 북한 시장의 옥수수값 상승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지난 6월 말(24일), ‘아시아프레스’가 공개한 북한 시장 물가에 따르면 쌀값은 1kg에 약 4천800원으로 꾸준히 안정세를 유지한 반면, 옥수수값은 1kg에 2천400원으로 2주 전보다 600원이나 급상승했습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의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 경제의 암울한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고 최근(6월 2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현금 수입의 감소에 따라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쌀 대신 옥수수 구매에 집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는 겁니다.

[윌리엄 브라운 교수] 고난의 행군 시절에 사람들이 항상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더 많은 칼로리를 원했고, 그래서 많은 쌀을 옥수수와 바꾸기도 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굶주릴 때는 쌀 가격 대비 옥수수 가격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최근 옥수수 가격이 급상승한 것은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는 암울한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도한 해석을 제기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분명 주목한 만한 사안이긴 합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기 때문에 쌀 대신 옥수수 구매를 선호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도 지난달(9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에 경제난이 닥쳐 꽃제비가 증가했고, 옥수수만 먹거나 아예 굶주리는 가정이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6월 24일) 밀반입한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해 준 현재 북부 지방의 경제 상황.
북한 양강도와 함경북도에 사는 현지 소식통이 ‘자유아시아방송’의 질문을 받고 최근(6월 24일) 밀반입한 휴대폰 문자를 통해 전해 준 현재 북부 지방의 경제 상황.
/아시아프레스

간부들과 평양 시민도 경기침체 영향

민생경제의 악화는 북한 간부들과 평양 시민도 피해 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 양강도 주민에 따르면 매달 배급을 받는 보안원들이 지난달에는 본인 외 가족 몫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단속 과정에서 뇌물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 이시마루 대표의 설명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지금은 장교들과 보안원들도 배급이 본인만 나오고 가족 몫은 주다 말다 하는 정도여서 정부 기관 사람도 배급에만 의존하며 살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주민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단속 과정에서 현금을 착취해 생활해 왔는데, 지금은 일반 주민의 생활고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간부들의 수입원도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최근 평양시에서 옥수수를 배급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미 평양 시민들 가운데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 세대가 생겼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평양 시민에 대한 생활 문제의 해결을 지시할 만큼 이미 민생경제에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문성희 박사] 지난 6월 7일에 진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13차 정치국 회의에 관한 보도를 보면 당시 회의에서는 ‘나라의 자립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 생활 향상을 위해 당면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서 토의를 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수도 시민들의 생활 보장에 나서는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전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 시민들의 생활 보장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고 하는데요. 북한이 당의 중요한 회의에서 평양 시민들의 생활 문제를 토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지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평양 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예측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북한 내에서도 평양은 특별히 배려를 많이 받는 지역인데, 그곳 생활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그만큼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인지 말이죠.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도 실패로 끝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올해가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로 이제 6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윌리엄 브라운 교수] 올해는 북한이 앞서 밝힌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데요. 통상 이 정도 시기가 되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속도를 부추기는 모습이 일반적인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계획이 사실상 실패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성희 박사] 사실 ‘5개년 경제전략’은 올해가 마무리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지요. 다만 북한에서는 과거에도 계획경제를 실시하면서 ‘완충기’라는 명칭 아래 조절 기간을 만들어서 경제계획 자체를 연장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제3차 7개년 계획은 “완수하지 못했다”라고 인정했고, 이후에 무역, 농업, 경공업 해결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경제전략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라의 경제 전반을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전략으로 전환했을 수도 있지요. 물론 언급이 없다는 것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나마 김 위원장이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한 원산갈마 관광지구와 평양종합병원 건설 등도 계획대로 완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RFA 그래픽

북한의 시장경제 여건과 환경 흔들려

이같은 경제 상황에서도 북한은 여전히 ‘정면돌파’와 ‘자력갱생’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6월 27일 자 1면에서 ‘북한 인민은 부강 조국 건설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자력갱생의 제일 강자들’이라며 ‘과감한 정면돌파전으로 사회주의 승리의 길을 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내에서도 경제 대책을 논하는 회의나 방침, 강연 등이 많아졌지만 ‘자력갱생’을 통해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는 말뿐, 구체적인 해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내부협조자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대책 회의나 방침, 강연 등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자력갱생’으로 적들의 압박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회의는 많아지고 기업소 내에서도 토의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기업소 등에서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력갱생’이라는 말만 내려오고, 구체적인 대책과 방법은 안 주니까 ‘알아서 열심히 해 결과를 내라’는 압박으로밖에 안 들린다는 거죠. 너무 이념적이고 무조건이라는 압박과 강요가 많아서 ‘김정은 정권이 대책이 없으니까 구체적인 말을 못 하는구나’라고 느낄 정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자력갱생 노선을 분명히 한 북한 당국으로선 현 경제 위기를 타개할 뾰족한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문성희 박사] 지난해 당중앙위원회 12월 전원 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을 때부터 북한이 자력갱생 노선을 선택했다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북한 입장으로서는 유례없는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자력갱생으로 갈 길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과거에는 남북경협과 중국과의 무역 관계 강화를 번갈아 하는 방법으로 경제를 유지해왔지만, 지금은 남북 경협도 잘 안 되고, ‘코로나 19’ 때문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감소했기 때문에 해결 방도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미 오래전 배급체계가 무너진 가운데 북한 주민 스스로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지금은 시장경제라는 경제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20년 전과 비교해 기본 경제구조가 달라졌고, 북한 주민은 배급이 없는 조건에서 경제활동을 해왔습니다. 정부나 당국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서 먹고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현금이 필요한 세상이죠. 그 조건과 환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국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의 카일 페리어 정책국장도 최근(6월 2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코로나 19’가 북한 경제에 미친 영향을 볼 때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보다 시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며 앞으로도 김정은 정권이 민생경제에 관여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적임을 인정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시장 활동을 통해 장사를 하거나 노동력을 제공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다시 식량이나 생필품을 구매해 살아가는 것이 기본이 된 북한에서 ‘코로나 19’ 가 가져온 경제활동의 위축이 민생경제에 큰 타격을 준 가운데 북한 당국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의 생활고와 민심 악화는 더욱 심해질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