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남녀차별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7.13
field_food_b 북한 주민이 야외에서 토끼탕을 끓이고 있다.(2011년9월)
/문성희 박사 제공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최근들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지위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원래 여성들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문 박사님 어떻게 보시나요?

문성희: 네, 우선 김여정 제1부부장을 단순히 여성 정치가로 보는 것은 어렵지요.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딸이니까요. 김 제1부부장이 ‘백두산 혈통’이라는 것이 중요하지요. 북한의 보통 여성이 김 위원장 다음가는 정도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매우 드물다고 봅니다. 다만 그렇다고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그리 낮은 것도 아닙니다.

<기자> 무슨 말씀인가요?

문성희: 과거에 김복신 부총리라는 분이 계셨던데 이 분은 여성이었습니다. 황순희라는, 김일성 주석과 함께 유격대에 속하면서 반일 투쟁을 한 분은 조선혁명박물관 관장을 하셨고. 북한의 초등학교, 북한에서는 소학교라고 합니다만, 교장이나 유치원 원장, 탁아소 소장들은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비율은 좀 잊어버렸지만 북한의 국회인 최고인민회의에는 여성 대의원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조선신보 평양특파원을 하면서 여러 농장 취재를 했었던데 거기서 관리위원장으로 나오시는 분들은 100%가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고 봅니다. 다만 고위급간부에 극한하면 아쉽게도 여성 비율이 많지는 못하지요. 저는 아무리 백두산 혈통이라도 여성인 김여정 제1부부장 지위가 오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말씀 중에 북한의 초등학교 교장, 유치원 원장, 탁아소 소장 등 유아나 초등교육의 관리자급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지적이 꽤 흥미롭습니다. 실제 북한에서 경험했던 교육 분야에서의 여성들의 활약,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문성희: 네 제가 평양특파원으로서 초등학교 등을 취재가면 마중 나와주는 교장 선생님은 여성이었어요. 김정숙탁아소라고 있는데 거기도 한 번 취재갔어요. 소장은 여성이었습니다. 거기서 보육사로 일하는 여성들도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이렇듯 북한에서는 대학교 교수나 부교수 등은 남성이 많지만 초등학교, 유치원, 탁아소 등 비교적 나이가 어린 학생들을 키우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인데, 나이 어린 학생들을 어머니처럼 돌본다는 뜻에서 여성들이 많지 않으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북한에서는 학생소년궁전이라고 수업이 끝난 뒤 악기나 무용, 미술, 체육을 따로 습득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여성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여성이 모성애가 있다고 할까요.
저의 이야기에 여러 번 등장하는 사람이 있어요. 김정숙탁아소 보육사로 일하던 여성인데, 그 분이 실지 어떻게 어린애들을 돌보는가 하는 것을 직접 보았어요. 악기를 다룰 줄도 알고 노래도 꽤 잘 불렀어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상시부터 자기 기술기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 농장 관리위원장의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꽤 놀라운데요, 특별히 이 분야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한 배경이 있나요?

문성희: 아마도 여성쪽이 세심하니까 아닐까요? 역시 농업은 여러가지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할 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여성이 적임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측면을 특별히 취재한 것이 아니니까 추측으로밖에 안 됩니다만.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여성이 많다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2003년에 황해남도 재령군에 있는 삼지강협동농장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거기 관리위원장이 여성이었는데, 그 당시 마침 농업의 IT화라 할까 컴퓨터를 써서 농업을 하자는 그런 방향으로 전환을 하기 시작한 시기었는데, 그 여성 관리위원장이 나이도 많으신데 적극적으로 도입할 기세를 보이고 있었어요. 새로운 것이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자세는 존경할 만했지요.

<기자> 북한에서 일하는 여성들 비율이 많다고 하셨는데, 남녀 평등이 확립되고 있다고 볼 수 있나요?

문성희: 네, 우선 북한에서 해방 1년 뒤인 1946년 7월 30일에 벌써 남녀평등권법령이 시행되였다는 것을 말씀드려야겠지요. 그러니까 법률상으로는 남녀평등이 비교적 빨리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거에요. 그것은 소련의 지도아래 공산주의사회를 지향하던 북한 임시정부가 여성들의 평등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라고 봅니다. 다만 이것은 법률상이나 제도상 문제이지 사람들의 의식은 그렇게 간단히 변하는 것이 아니지요. 제가 1996년에 조선신보 평양특파원으로 있을 때 마침 남녀평등권법령 시행 50주년이었어요. 그래서 남녀평등이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기획을 짰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자> 어떤 이야기인가요?

문성희: 평양시 어느 구역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여성이었던데 그 분 집에 찾아가서 남편이랑 아들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그때 남편이 한 말이 “남녀 차별이라는 것은 도로에서 자라는 잡초나 같은 것이다”고 말했어요. 빼도 빼도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남녀 차별 의식이 없어지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는 자기 아내를 “밥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여자를 가사나 하는 그런 사람으로밖에 안 보는 것이지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기자> 그러니까 제도적으로는 남녀평등을 지향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녀차별이 여전했다는 말씀이신데, 북한에서 직접 겪었던 사례는 없으신가요?

문성희: 1996년에 여성시나리오작가를 취재했어요. 그 분이 시나리오를 담당한 드라마에는 술을 마시는 여성이 등장했어요. 그 당시 북한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여성은 나쁜 일이라도 한 것 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고 할까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더니 그 여성 작가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장면을 일부로 넣었다는 것이에요.

<기자> 무의식 속에 만연한 여성차별 의식을 깨기 위한 드라마가 있었던 모양이네요?

문성희: 네, 그 분이 말하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데는 여성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남성도 여성도 함께 참가하는 연회에 참가했을 때 여성이 모인 테이블에는 접대원이 맥주를 안 가져왔답니다. 그래서 “여기에도 맥주를 가져와 주세요”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주었어요. 여성 접대원이 당연히 여성 테이블에는 술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별로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맥주를 가져오게 했다는 것이에요. 지금은 북한에서도 맥주나 술을 즐기는 여성들이 가끔은 나오고 있어요.

<기자> 오늘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