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고난극복 방안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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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ory_woman_b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서 비료용 비닐봉투를 제조하는 종업원.(2010년 9월)
/문성희 박사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오늘은 ‘북한 경제의 어려움’에 관해 극복 방안까지 포함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문성희 박사님, 우선 북한 경제가 현재 처한 상황,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성희 :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 각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만이 괜찮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원래 유엔 제재 등으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북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은 잘 아시지요. 물론 생활이 어렵다는 소리는 들려오고 있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방금 얘기했듯이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되는 속에서 북한 만이 성장한다고는 보기 힘들지요. 그러나 코로나 상황을 생각하면 과거와는 조건이 다를 수 가 있지요. 그렇다고 1990년대 후반기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하면 지금은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자>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에 계셨는데 그때 상황을 좀 말씀 해주시지요.

문성희: 우선 전력사정이 매우 안 좋았습니다. 한 가지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제가 1996년 여름에 평양특파원으로 오랜 기간 북한에 체류했는데, 어느 날 호텔 방의 에어콘(냉방기)을 켠 채로 취재를 나갔어요. 돌아오니까 종업원이 막 욕을 하는거에요. “이런 비상시에 냉방을 끄고 가셔야지”라고 하면서. 이건 100% 제가 나쁜 것이니까 사과를 드렸어요. 그렇지만 저도 일단 손님이지 않아요. 손님에게 그런 욕을 할 정도로 북한 에너지 사정이 안 좋았다고 봅니다.

<기자> 1996년 당시 처참한 상황을 직접 목격하신 건 있었나요?

문성희: 그럼, 많이 있었지요. 제가 특파원으로 있을 때 서남부를 중심으로 수해가 났어요. 그래서 취재를 가게 되었는데, 피해지역에 가는 길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목격했어요. 아마도 배가 고파서 쓰러져 있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굶어죽는 사람도 적지 않게 나왔지 않습니까. 혹시나 하면 쓰러져 있던 그 분도 사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기자> 그러니까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도로변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는 말씀이시네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자동차 안에서만 봤기 때문에 실제 눈을 감고 있었는지, 숨을 쉬고 있었는지 여부는 구체적으로는 잘 못 봤는 데 어떻게 보더라도 그 사람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별로 그걸 보고 뭐 어떻게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놔 두고 있었으니까 (그 분의 생사가) 궁금합니다.

<기자> 당시는 물자도 많이 모자랐다면서요?

문성희: 네, 북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한데, 당시 평양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측면도 있어서 매일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대동강맥주도 없었기 때문에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를 찾아서 상점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수해지역 취재에서 돌아와서 맥주를 찾았더니 평양 시내 어느 상점에 가도 없는 거에요. 결국 안내원한테 부탁해서 시장에서 팔고 있는 것을 구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만큼 물품이 없었던 것이지요. 일본 맥주 등은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마저 떨어졌다는 사실이 좀 충격적이었어요. 해외에서 간 제가 그런 정도니까 북한 현지 사람들 생활이란 더 어려웠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 주민들의 그런 어려운 일상 생활에 대해서는 그 당시 보도를 하셨나요?

문성희: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북한에서는 부정적인 상황이 외부에 나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지요. 수해 지역 취재를 허가 받는 것도 시간이 걸렸을 정도에요. 그러니 굶어 죽었다든가, 인민들의 생활이 어럽다든가 그런 취재는 못했습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 2003년에 북한에 갔을 때는 그런 어려웠던 시기를 회상하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저에게 고난의 행군 시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때 들은 이야기로 잊을 수 없는 것은 옥수수(강냉이) 죽 이야기 입니다. 쌀이 없기에 대신 옥수수로 죽을 끓였는데 옥수수 알이 딱딱하기 때문에 하루 물에 불려서 그것을 끓였는데 그래도 입에 넘어가는 그런 음식이 아니었다는거에요. 그것도 하루 두 끼니밖에 먹을 수 없었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일하는 도중에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눈물겨운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겪었거나 들었던 이야기만이라도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습니다.

<기자> 당시 상황과 비교한다면 북한이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떻다고 짐작하시는지요?

문성희: 제가 보기에는 그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를 이겨낸 북한 사람들이라면 지금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사회주의가 붕괴해서 수해도 일어나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쳐왔는데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식이 희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공급체계 하에서 국가가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속에서 갑자기 그것이 없어지니까 당황한 부분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해결 방도조차 찾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그런 속에서 암거래가 활발해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해서 ‘아래서의 시장화’가 촉진된 것이지요.


<기자> 그러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해결 방도를 찾고 있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문성희: 네, 2008년에 처음으로 지역시장에 가서 놀랐는데 시장에는 물건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사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돈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지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나쁜 평등’이 있었다고 할까, 일 해도 일 안 해도 같은 노임을 받는다면 누구나 일 안하겠죠? 고난의 행군은 그런 사회구조를 파괴했다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때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기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벌써 20년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지금은 그런 생활에 익숙하게 되었다고 봐야겠지요.

<기자> 그렇다면 잘 사는 사람은 잘 살게 되고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생활이 어렵다는 것인가요?

문성희: 그런 측면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북한이 1990년대 북한과는 다르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봅니다. 잘 살 기회를 자기들이 찾아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기자> 그런데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경제의 극복 방안으로 당국이 내 놓은 건 자력갱생인데요.

문성희: 지난해 말 ‘정면돌파전’을 선포했을 때부터 경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봅니다. 코로나19 이후는 더더욱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북한 보도를 보면 “재자원화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있다”는 보도가 눈에 띕니다. 평양시에는 수매품 교환소가 70여 곳에 꾸려지고 있다고 해요. 거기에 수집된 유휴자재들을 공장들에 보내주고 있다고 해요. 평양만이 아니라 강원도, 함경남도, 자강도 등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유휴자재를 공장에 보내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말을 바꾸자면 결국 이건 북한에 있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자, 그러니까 자력갱생이지요.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은 ‘자력갱생’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기자> 아무리 자력갱생으로 간다고 한 들 한계가 있다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접근은 어떻습니까?

문성희: 물론 그것은 하나의 극복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요. 코로나가 좀 완화되면 중국과의 국경은 열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미중 대립이 심각해지고 있는데, 북한 논조를 보면 완전히 중국 정부 편으로 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러시아와 친선 관계를 강조하는 논조도 흔히 보입니다. 조미 관계를 개선 못 하는 이상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강화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기자> 남북 경협을 추진할 수 있으면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문성희: 네, 바로 그렇다고 봅니다. 다만 남북 경협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경제제재가 풀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핵 문제에서 전진이 있어야 되지요. 다만 최근에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발표한 담화에서 한 말을 보면 이제 북한은 제재 해제와 비핵화를 흥정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해 온다고 북한이 못 사 는것도 아니다, 뭐 그런 말이겠지요. 정면돌파전의 뜻이 명백해진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들거요,

<기자> 김 제1부부장 담화에서는 미북 정상회담이 올해 안에는 없지 않겠느냐, 그런 언급도 있었는데요.

문성희: 저는 이 담화를 읽으면서, 미국과 협상해서 제재 문제를 해결한 뒤에 경제 문제를 푼다는 계획은 이제 북한 지도부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올 해 미국 대통령선거까지는 그런 전략을 유지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제재를 해도 못 사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김일성 주석도 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계속 제재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제재가 계속된다고 해도 무서운 것은 없다고. 물론 거기에는 북한 일반 시민들의 희생이 도모되지만.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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