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경의선보다 동해선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8.02
[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경의선보다 동해선 경의선.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을 이틀 앞둔 2017년 5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역에 한반도기가 내걸리고 있다.
/연합뉴스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에디터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남북이 그 동안 단절됐던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했습니다. 베트남, 즉 윁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 했던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질지 주목되는데요. 남북 간 경제협력이나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도 진전이 있을지도 관심사입니다. 문성희 박사님, 오늘은 남북관계와 북한의 경제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문성희: 네, 청취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뒤 남북 관계도 악화되었습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요. 탈북자 단체가 김정은 총비서를 비방하는 전단을 살포한 데 대해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남한과의 통신연락선과 정상 간 핫라인, 즉 비상용 직통전화를 단절하고 그 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습니다.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남북 간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추진될 지 저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자>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으로 한국의 경제협력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점이 이번 조치의 배경이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문성희: 물론 그런 측면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리 단순한 이유로 남북이 함께 관계개선에 나선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측에도 관계개선이 필요할 사정이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0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문 대통령 입장으로는 임기 내에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남기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과거 노무현 정권 말기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됐는데 여기서는 남북 경협을 보다 더 추진하기로 남북이 합의했습니다. 합의문에는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됐었지요. 문 대통령에게 있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는 생각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에 독일 베를린에서 북한과의 경협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베를린구상’을 발표한 바 있지요.

<기자> 네,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문성희: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된 배경에는 이 베를린구상에 북한이 매력을 느꼈다는 측면이 있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겠지만 북한에 있어서는 남북 경제협력은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서도 큰 몫을 차지하니까요. 그것은 과거에 금강산관광사업이나 개성공단사업에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좀 전에 언급하셨던,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어떤 내용인가요?

문성희: 주된 내용은 4가지입니다. 첫째는 3대벨트의 구축, 둘째는 민간 협력 네트워크를 통한 시장협력방안 마련, 셋째는 경제협력 재개, 넷째는 남북 접경지역 발전입니다. 경제협력 재개에는 당연히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정상화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3대벨트란 환동해경제벨트, 남북접경지역경제벨트, 환서해경제벨트에요. 이것을 실현하자면 물론 교통의 연결도 필요합니다. 교통의 연결, 그러니까 도로나 철도의 연결이지요. 저는 평양 특파원 시절에 남북 간 철도 연결식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기자>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문성희: 저는 동해선 철도를 연결하는 행사를 취재했습니다. 남북 철도를 잇는다고 하면 보통 경의선 생각이 나지요. 한국에서는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쪽이 주목을 받는데 실은 북한은 동해선 쪽을 중요시하고 있었어요. 2003년에 연결식을 취재했지만 그 당시에도 북한 조평통, 즉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들에게 물어봐도 동해선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베리아 철도로 이어지는 동해선 쪽이 북한 경제 활성화에는 절실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기자> 그러니까 한국에서 북한을 거쳐 러시아, 유럽으로 연결되는 동해선 철도를 건설하는 데 북한이 관심이 많았다는 말씀이신데, 북한이 기대했던 효과는 구체적으로 뭐였나요?

문성희: 하나는 북한에서 생산한 물자를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에 수출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또 하나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생산한 물자를 북한을 거쳐서 러시아나 유럽에 수출할 중간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까 중계를 하는 비용을 얻을 수 있다고 할까요, 그런 것을 생각했다고 봅니다.

<기자> 당시 동해선 철도 연결식은 성대하게 열렸나요?

문성희: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남북의 실무자가 각각 연설한 뒤 현장에서 철도를 연결하는 것으로 끝이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본 적은 있어도 동쪽 군사분계선에 가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매우 흥분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군사통제구역이었기 때문인지 실지 철도 연결식장에 갈 때는 군대가 소유한 자동차로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문사 차로는 못 들어가고 군대의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기자> 판문점 인근 군사분계선지대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나요?

문성희: 판문점은 아무래도 일종의 관광지이기 때문에 잘 정비가 되고 있지요. 그렇지만 동해안쪽 군사분계선지대는 평소 별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지요. 그래서인지 연결식 현장 근처에는 남북분단지점인 것을 알리는 녹슨 간판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별로 엄격하게 분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철길이기 때문에 어디가 북이고 어디가 남인지 잘 몰랐어요. 기자들도 남과 북을 오가면서 취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까 판문점에서 느끼는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기자> 판문점과 비교해 동해안 군사분계선 일대의 북한군 경비는 어땠나요? 문성희: 이제 오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표면상으로는 별로 경비가 엄하지 않았습니다. 마침 그 당시에 남북 간 군축도 추진되고 있어 군사분계선 일대의 지뢰를 모두 제거한다니 뭐니 하는 시기였어요. 북한 사람들은 여기에는 이제 지뢰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물론 군사분계선에 들어가기 전에는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고 기억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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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의 개선청년공원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에 설치된 메뉴판. 자기가 먹고 싶은 걸 골라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2010년 8월). /문성희 제공

<기자> 그런데 역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한국의 경제협력인 듯합니다.

문성희: 막상 남북경협을 재개하자면 유엔 제재를 비롯한 국제적인 대북 제재가 장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관계자도 개성공단 운영도 제재에 걸리기 때문에 물자를 쉽게 가져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뒤 핵실험과 미사일시험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과거보다 제재가 더 엄격해졌지요. 이런 상황 아래서는 한국의 결심만으로는 남북경협을 쉽게 재개할 수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결국 대북제재가 남북 간 경제협력 재개에 걸림돌이 될 거란 전망이시군요.

문성희:네,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남북에서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싶어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지구에 물자를 반입할 수 없다는 측면이 있지요. 여기뿐 아니라 직접 북한에 기업이 진출하려고 해도 제재에 걸리는 일이 너무도 많다면 기업이 진출하자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재가 있는 한 남북 경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을 정상화할 것이 포함되었지만, ‘조건이 갖추어지는 대로’라는 전제가 붙었습니다. ‘조건이 갖추어지다’는 것이 ‘제재 해제’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기자>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핵폐기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지 못 하고 있는데요.

문성희:네, “핵보유국”이라고 하고 있는 이상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전략적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그것이 하나의 딜레마이지요.

<기자>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부터 자력갱생을 계속 강조해왔고 노동당 8차당대회에서도 이 노선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는데, 앞으로는 자력갱생 노선에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까?

문성희: 거기까지는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제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가 1년 반 이상 계속되면서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지도부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력갱생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에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하나의 방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선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남북간 통신연락선을 복원한 것 뿐이지요. 그것만 보고 노선 전환까지 논의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보고 있어요.

<기자> 그렇지만 자력갱생만으로는 산적한 경제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차 명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지원을 포함해 외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문성희:북한 지도부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서고 있는데 우선적으로는 국경봉쇄를 풀고 중국에서 물자를 들여오고 싶다는 생각은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를 우선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국과의 무역은 활발하지 못합니다. 중국세관총서에 따르면 1월부터 6월까지의 북중무역총액은 6천 572만 달러로 이것은 2019년에 비해 95%의 감소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에만 의존할 수 도 없고 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한편 이번에 남북 간 통신연락선 복원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총비서의 여러 번에 걸친 친서교환이 있었다는데,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고 보시나요?

문성희: 그것도 아직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에 정상들의 핫라인은 복원이 안 된 것 같지요. 그렇게 간단하게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자면 뭔가 성과가 있어야 되는데 예상할 수 있는 성과가 잘 떠오르지가 않거든요.

<기자> 그렇지만 북한 주민들은 남북관계가 빨리 개선돼 남측에서 물자가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요?

문성희: 그럼요. 북한 시장에서도 신라면 등 남측 식료품 등이 팔고 있는데 물론 이것은 중국에서 들어온 물자라고 할지라도 옛날처럼 한국 상품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봅니다. 일반 주민들이 남북정상회담을 보는 눈도 “아, 이걸로 약간 경제가 풀리는구나”라는 기대감이 모두라고 봅니다. 물론 간부들이야 다르겠지만 시민들의 생각이야 그렇지요. “지도자가 인민들의 식의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측 지도자와도 만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