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극빈층 밀집 ‘하모니카 주택’ 어떻길래?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08.06
harmonica_house_b 최근 연쇄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의 한 탈북자가 그린 ‘하모니카 주택’ 모습. 부엌 하나에 방 하나로 이뤄진 한 칸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주로 극빈자층이 모여 산다.
/그림-박지영(가명)

앵커: 북·중 국경지방에는 집 한 채에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소위 ‘하모니카 주택’이 많습니다. 북한 주민의 어려운 경제 사정뿐 아니라 빈부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요. 최근 양강도 혜산시의 폭발 사고도 하모니카 주택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낙 집들이 밀집해있다 보니 작은 사고도 큰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데요. 이번 폭발 사고는 어렵게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에 더 큰 시련이 될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보도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양강도 혜산시가 고향인 50대 탈북 여성 박지영 씨.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요청)

서울에 살고 있는 박 씨는 최근 (지난 3일) 혜산시의 ‘하모니카 주택’에서 연쇄 폭발사고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자신이 경험한 ‘하모니카 주택(위 사진)’의 모습을 직접 그려 보내왔습니다.

‘하모니카 주택’은 한 채의 집에 여러 세대가 주거하는 형태로 부엌 하나에 방 하나로 이뤄진 한 칸짜리 주거 공간입니다. 집이 마치 하모니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좁은 공간에 한 식구가 모여 삽니다. 판자 하나로 나누어진 옆집과는 말소리가 다 들릴 정도입니다.

박 씨에 따르면 혜산시에는 이같은 ‘하모니카 주택’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많이 조성돼있는데 북한 극빈층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박지영 씨(가명)] 집 한 채에 출입문이 여러 개 있습니다. 부엌이 하나 있고, 그냥 방이에요. 이 집들은 옛날부터 지어진 집에서 정말 못 사는 사람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압록강에서 밀수하는 사람들이 하모니카 주택에 삽니다. 정말 부엌에 방 하나라고 보면 됩니다.

함경북도 온성 출신의 30대 탈북 남성 강민혁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도 북한을 떠나기 전까지 하모니카 주택에서 살았습니다. 워낙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보니 최근 혜산시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여러 세대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 씨는 관측했습니다.


[강민혁 씨(가명)] 하모니카 집이라는 것이 원래 대여섯 세대씩 붙어 있거든요. 또 옆으로 붙어 있고. 그래서 폭발이 일어나면 단체로 사고가 날 위험성이 큽니다. 시골 같은 경우 대부분 하모니카 주택이 기와집이어서 한 번 불이 나면 옆집까지 옮겨붙고, 한 동네나 한 줄이 전부 불타는 경우도 있고요.

앞서 한국의 인터넷 대북 매체인 ‘데일리 NK’는 최근 (지난 5일) 지난 3일 밤 양강도 혜산시 탑성동에 있는 하모니카 주택에서 연쇄 가스폭발 사고가 발생해 현재까지 1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도 지난 5일, “휘발유와 액화석유가스, 즉 LPG와 관련된 사고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이번 사고에 대해 무척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박 씨는 사고가 일어난 시간이 밤이었다면 온 가족이 집에 있을 시간이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더 컸을 테고, 사상자 중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습니다. 또 ‘하모니카 주택’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이 많이 사는데 치료와 복구 등 대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박 씨의 설명입니다.

[박지영 씨(가명)] 폭발이 생기면 그 집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옆집, 앞집, 뒷집 다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하모니카 집의 골목이 너무 좁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주변 집이 다 피해를 입었을 거예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데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지금 어려운 정도겠어요. 병원비도 업고, 병원에 가도 약도 없을 텐데,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하모니카 주택’의 특성상 앞으로 사망자뿐 아니라 부상을 입은 북한 주민들의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 혜산시가 고향인 탈북민들은 이번 사고에 대한 충격과 함께 북한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은 무사한지 걱정하는 마음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북한의 빈부격차와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모니카 주택’. 그곳에 거주하는 대부분 북한 주민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이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밀수마저 끊겨 생활고에 직면한 때에 이번 폭발사고는 가뜩이나 어려운 이들의 삶에 또 하나의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게 됐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