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밀주 제조∙유통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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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맥주공장에서 새로 나온 캔맥주.
대동강맥주공장에서 새로 나온 캔맥주.
/연합뉴스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문성희 박사님, 북한을 대표하는 대동강맥주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오늘은 북한의 술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그렇게 하지요. 술은 저의 특기 분야이기도 하고요(웃음). 저는 혼자 술을 마신다기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즐기는 모임을 좋아해요. 특히 북한 같은 데서는 술자리에서 생각도 못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에 취재를 하는 측면에서도 널리 이용하고 있었어요.

<기자> 북한 주민들도 술을 즐기는 편인가요?

문성희: 그럼요. 오락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술을 즐기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도 추석이나 설 등 명절 때에는 산소에 간 다음 인근에서 친족들이 모여서 식사모임을 가집니다. 그럴 때 반드시 술이 나와요. 그리고 5월 1일 노동절 등은 국가 공휴일이기에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끼리 야외에서 식사와 술을 가져와서 노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대성산이나 모란봉 등 인기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꽉 찹니다. 그래서 장소를 구하는 것도 많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가서 취재를 하면 “같이 마십시다”하면서 반드시 말을 걸어줍니다. 그래서 거기서 한 잔 하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북한 주민들이 먹는 술도 맛 본 적 있어요.

<기자> 맛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이제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독한 술이고 알콜 향이 강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는 못 먹었지요. 지방에 갔을 때는 어떤 아파트 한 곳에서 술을 파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그러니까 술 공장 같은데서 공식으로 제조하는 술이 아니라 일반 사람이 집에서 제조한 술을 팔고 있었던 것이지요. 기름을 넣는 깡통 같은 용기에 들어가 있었어요. “이건 절대 먹지 마라”고 하기에 맛은 못 봤지요.

<기자> 안내원이 ‘절대 먹지 마라’고 했다는 말씀인가요? 왜 마시지 마라고 한 건지 궁금하군요.

문성희: 그거야 원료로 무엇이 들어가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으니까 그렇지요. 현지 사람들에게는 괜찮아도 제가 설사 등 몸에 이상이 생길수 있으니까 안내원들은 특히 음식물에 주의를 주었어요. 지방 역에서 팔던 아이스크림도 먹지 말라고 했어요.

<기자> 그러니까 일종의 밀주 같은 건가요?

문성희: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지방에 가면 일반 가정집에서 휘발유를 파는 모습도 목격했으니까, 술도 허가를 받고 집에서 팔고 있었을 지도 몰라요. 우리 상식으로 보면 틀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꽃제비로 보이는 아이들이 열심히 빈 병을 구하고 있었어요.

<기자> 빈 병을요?

문성희: 그래요. 열차가 멈춘 역에서 목격했는데 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병사리라도 주세요”라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에요. ‘병사리’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어요. 그래서 제가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요. “도대체 병사리가 뭡니까?”라고 했더니 “병사리는 병을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방언)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기자> 어린 아이들이 빈 병을 구걸하고 있었다는 거군요?

문성희: 네, 그래요. 여자 아이가 계속 “병사리라도 주세요” 라고 구걸하는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째서 병을 구하려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기자> 아이들이 빈 병을 구걸하려던 이유, 뭔가요?

문성희: 한 번은 이런 일을 경험했어요. 2010년당시, 어느 지방에서 대동강맥주의 ‘가짜’가 팔리고 있었어요. 병은 틀림없이 대동강맥주인데 맛이 전혀 다른거에요. 지방의 분들은 제가 대동강맥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사준 것이에요. 값을 듣고 놀랐어요. 900원이었던 것이에요. 당시 국영상점인 평양제1백화점에서 한 병 140원이었으므로 가짜가 몇 배나 더 비쌌던 것이지요. 그 분들에게 “이것은 대동강맥주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니까 매우 낙심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대동강맥주라고 하니까 그것을 믿고 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아마 대동강맥주 병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병을 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어른들이 빈 병 구걸을 아이들에게 시켰던 거군요?

문성희: 글쎄요. 잘 모르기는 하지만 당연히 어른이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아이들은 병을 팔아 하루벌이를 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서 얻은 병에 집에서 만든 술을 넣어서 팔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병을 재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대동강맥주의 가짜를 판다는 생각보다 병을 재이용해서 제조한 맥주를 팔고 있다고 할까요. 가짜 맥주를 팔았던 사람은 “맥주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속인 것은 아니다”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기자> 가짜 맥주를 몰래 만들어 진짜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는 건데요.

문성희: 네. 저는 이러한 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북한 사람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꼈어요. 저지르고 있는 짓이 북한의 법을 어기는 것이어도 그들이 살아가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1990년대에 정부의 공급이 중단되어 자력으로 식량을 조달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든 지혜를 짜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북한 사람들의 강인함과 당참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 당시 지방에서는 술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집에서 몰래 제조한 술이 유통되고 있었다는 거군요.

문성희: 음,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파트에서 술을 팔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것은 1990년대이니까 지금도 그렇게 해서 개인이 팔고 있을 지는 모르겠어요. 적어도 평양에서는 그런 일은 없겠지요. 그리고 평양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술을 팔고 있었어요. 맥주도 대동강맥주만이 아니라 룡성맥주나 봉학맥주, 평양맥주 등도 팔고 있어요. 소주도 다양해요. 값도 종류도 다양합니다. 고급 술은 매우 비싸지만 그런 술은 먹어도 다음날 두통이 없어요. 평양소주도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숙취는 없었어요.

<기자> 평양소주는 질이 좋은가 보네요?

문성희: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안내원이나 운전수끼리 마실 때는 평양소주보다 아래인 소주를 먹고 있었어요. 그리고 북한에도 폭탄주 문화가 있었어요.평양소주하고 대동강맥주를 섞어서 ‘폭탄주’도 마셔보았는데 맛있었어요. 아마도 남북 접촉을 하면서 누군가가 남측에서 배워서 북한에서 유행시켰다고 봐요. 안내원한테서 “남조선(한국)에서는 폭탄주라는 것이 있다지요?”라고 질문 받은 적도 있어요. 그런데 2018년 1월에 북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시면 체온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장과 간 등에 나쁜 영향을 준다”, “소주와 맥주는 따로따로 마시는 것이 좋다”라고 경고한 바가 있어요.

<기자> 그렇다면 이제 북한에선 폭탄주는 별로 유행하지 않고 있는가요?

문성희: 제가 최근에 북한에 못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요. 북한 사람들은 소주를 그대로 먹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니까, 한때 재미로 해보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유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폭탄주는 한국 술 문화이니까 북한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서 유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북한은 꽤 가부장적인 전통이 남아있다고 예전에 말씀하셨는데요 여성들의 음주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나요? 여성들도 술을 자주 마시는가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문성희: 당연하죠. 그러나 과거에는 여성들이 술을 마신다는 건 있을 수 없었어요. 적어도 1980년대나 1990년대는 그러했지요. 제가 북한에서 술을 마시면 “여자가 술을 마시는가”라는 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가서 북한에 가보니까 술을 마시는 여성들도 대폭 많아지고 있었어요. 그것도 가정주부보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일수록 당당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물론 독한 술이 아니라 맥주나 하이볼 같은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이 많지만.

<기자> 여성들이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말씀이시군요?

문성희: 대동강맥주 비어홀에서는 여성들의 모습도 보았어요. 물론 남성들에 비해서 인원수는 많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성이 바깥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지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와 있었다고 봅니다. 최근에 북한에서 공개한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까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요리에는 와인이 맞습니다”라고 하면서 둘이서 와인을 먹고 있었던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래도 비교적 나이 든 여성들이 바깥에서 당당히 술을 마시지, 젊은 여성들이 마시는 모습은 목격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제가 보지 않는 것만으로 대학생들끼리나 직장 동료들끼리로 술을 즐기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여성들끼리 모여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젊은 여성들도 섞여 있어요. 제가 모를 뿐 북한 여성안에도 ‘애주가’가 있을 지도 몰라요. 그런 분이 계신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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