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장사에 눈뜬 남성들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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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onggang_department_b 사진은 평양의 보통강백화점 모습.
/AP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네.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김혜영 씨, 안녕하세요. 우리가 북한 시장의 모습을 보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들입니다. 왜 남성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나요?

[김혜영 씨] 고난의 행군 이전부터 북한 남자들은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자들이 장사에 많이 나섰지만, 나중에 큰 규모의 장사는 남자들이 더 잘했습니다. 또 북한 남자가 승부욕이 참 셉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가족을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아내를 도우려 애썼고, 일부 남자 중에는 시장에서 여성 속옷이나 액세서리 등을 팔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남자는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 여성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보면 남자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물건을 옮긴다든지, 그날 장사를 개시할 때나 마감할 때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혜영 씨] 그렇죠. 그래서 남자들이 처음에는 작은 구루마(리어카)로 짐도 실어주고, 큰 통에 강물을 길어 나르기도 하고, 그렇게 무거운 짐을 날라주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이 남자들의 역할이 됐습니다. 또 구루마로 남의 짐을 날라주며 용돈을 벌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남자들이 더는 고난의 행군에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죠. 일자리를 잃은 남자들이 집에서도 할 일이 없으니까 사람들로부터 '집안의 만년화'요, '우리집 정구알'이요. 이렇게 놀림의 대상이 됐습니다.

- ‘집안의 만년화’, ‘우리집 정구알’이란 표현은 처음 듣는데요. 무슨 뜻인가요?

[김혜영 씨] 이건 북한에서만 쓰는 표현인데요. 보석 돌가루로 만든 그림을 만년화라고 하거든요. 그냥 벽에 변함없이 걸려있는 그림 같다는 말이고요. 정구알(전구)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데 그냥 걸려 있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잖아요. 그만큼 벌이도 없고 아무 쓸모가 없는 남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역전이나 시장 같은 곳에서 구루마를 개조해 손님들을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기본적인 돈벌이를 하게 됐습니다. 큰 보따리 장사꾼들의 심부름을 하기도 했고요. 한 명, 두 명씩 이런 일을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하는 사람이 많아져 영역 다툼으로까지 번지게 됐죠. 지금도 이 구루마는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운송수단으로 어느 집이나 다 있습니다.

- 그렇게 점점 돈맛을 알게 되면서 남성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든 돈벌이 분야는 무엇이었나요?

[김혜영 씨] 가장 큰 분야는 역시 밀수였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남성 중에 국경 연선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주로 밀수를 시작했어요. 1970년대에는 중국이 북한보다 못 살았습니다. 당시 압록강이나 두만강에는 보초가 없고, 겨울에 강이 얼면 북한 아이들과 중국 아이들이 같이 어울려 눈썰매도 타고, 팽이도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친분도 쌓게 되면서 서로 간에 작은 장사가 시작된 겁니다. 지금은 양국 사이에 철조망이 있고 초소가 10m마다 하나씩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밀수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 북한 밀수꾼들이 한 품목은 수산물이었습니다. 해삼, 낙지, 명태, 조갯살 등 주로 바다에서 나는 것으로 밀수를 해서 돈을 벌었죠. 그러다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밀수 품목도 바뀌었는데, 철, 동, 금, 니켈, 골동품, 통나무부터 시작해 중국에서 달라는 것이면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돈에 맛을 들이고 난 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죠. 그렇게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밀수를 하게 됐고,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서서히 찾게 된 겁니다.

- 다시 말해 북한에서도 점점 돈이 중요한 사회가 되면서 남자들도 적극적으로 돈벌이나 장사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군요. 시장에서 장사하는 남성들도 있었나요?

[김혜영 씨] 있었죠. 밀수는 좀 대범한 사람들이 한다면, 그런 일은 정말 못하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남자들은 시장에서 옷 장사도 하는데요. 저희 어머니가 한때 시장에서 장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께서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어떻게 남자들이 여자 속옷을 두 팔에 주렁주렁 걸고, 창피한 것도 없이 큰 소리로 ‘가슴띠(브래지어) 사시오’, ‘빤쯔 고운 색으로 사오’라고 한다는 겁니다. 또 남자들이 개고기나 돼지고기 등 주로 가축을 잡아 팔거나 쌀, 신발 등도 팔았는데 점점 창피함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장사하는 남자들이 돈을 더 잘 벌었고요.
가전제품은 장마당에 들고나올 수가 없으니까 팻말에 ‘텔레비전’, ‘녹음기’라고 쓴 작은 간판을 들고 서 있으면, 사고 싶은 사람들이 그 남자를 따라 집으로 가서 사기도 했는데, 이것도 돈 버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또 남자들 몇 명이 돈을 내고 대형 컨테이너 차를 사서 보따리 장사꾼의 짐을 날라주고 비용을 받는 이른바 ‘달리기 장사’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남성들도 돈맛에 눈을 뜨면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내세워 밀수나 장거리 장사 등을 하게 됐고, 북한에서 남자들의 삶의 방식도 달라지게 된 겁니다.

- 그 당시에 남성들이 시장에서 여성 속옷을 팔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돈의 힘이 무섭군요. 남성들도 돈을 벌었지만,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이 향상되면서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과 지위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은데요.

[김혜영 씨] 북한에 이런 구호가 있습니다. 여성들도 혁명 한쪽의 수레바퀴 역할 담당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해주는 것이 없고, 남자들도 할 일 없이 집에만 있으니 여성들이 장사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게 됐죠. 북한 당국이 늘 수령님 찬양으로 주민들을 얼레고 달래지만, 북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당국이 뭐라 하던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돈 벌러 나간다’는 입장이지요. 앞에서는 만세를 불러도 속으로는 빨리 끝내고 장사할 생각으로 가득할 겁니다.
돈이 중요한 사회가 되다 보니 돈주가 여자라고 해도 무조건 그 사람에게 허리를 숙여야 했는데,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도 북한에서 돈주였습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남자들을 많이 부렸고, 그들을 통해 앉은 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 경제적으로 여성의 역할이 커지는 것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입장은 어땠습니까?

[김혜영 씨] 북한 당국의 기본입장은 장사를 통제하는 겁니다. 또 여성들이 시장에 나가 장사하는 것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이 그렇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당국에서 통제를 해도 여성들은 ‘지금 어렵고 힘든 것을 이겨내 먹고 살아야 혁명도 할 것 아니냐’라고 막 대들었습니다. 그럼 북한 당국도 뭐라 할 수 없는 겁니다. 또 돈을 가진 주민들은 더 당당해지고, 아무리 당에서 뭐라 해도 코웃음을 치곤 했죠.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맞지 않는 부르주아 사상을 철저히 없애겠다고 해도 돈의 맛을 보게 되면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목숨 걸고 돈 버는 것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네. 오늘은 돈벌이를 위한 북한 남성들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무역일꾼 출신 탈북 여성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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