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설문: 코로나19 속 탈북민 사회] ③ 코로나19도 못 꺽은 ‘아메리칸드림’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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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_defector_society_b 지난 10월30일 오후 미국 버지아주 리치몬드 시내의 탈북민 최초연 씨가 운영하는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의과대학 부속병원 구내식당에서 마스크를 쓴 손님에게 직원이 음식을 담아주고 있다.
/RFA Photo

앵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도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처음 가슴에 품었던 희망인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꿋꿋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한 탈북민 사업가는 줄어든 손님과 늘어난 방역 비용 등 ‘이중고’ 속에서도 버틸만 하다고 담담히 밝혔습니다.

RFA 특별 기획, 코로나19 속 탈북민 사회’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탈북민 사업가 최초연 씨를 한덕인 기자가 만났습니다.


[현장음]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VCU Medical Center Main Hospital)

지난 10월30일 오후 미국 버지니아주의 주도인 리치먼드 시내에 위치한 버지니아커먼웰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

병원 출입구를 들어서자 보이는 한 경비원에게 다가가 구내 식당을 묻자 건물 내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발열검사를 해야한다며 온도 측정기 앞으로 안내합니다.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도착한 식당 입구에는 손소독을 위한 세정제가 배치돼 있고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포스터도 보입니다.

[현장음] 계산대에서 고른 음식을 계산하는 손님들

저녁 시간이라기엔 이른 오후 4시에도 먹을거리를 사려는 손님들과 종업원들로 식당 안은 꽤 북적입니다.

과자나 과일처럼 간단한 간식거리나 음료 외에도 유리막이 쳐진 건너편 부엌에서는 따로 주문을 받는 음식도 만들고 있습니다. 메뉴로는 햄버거부터 튀긴 닭, 피자, 스파게티, 타코 등 다양한 국적의 먹거리들이 있습니다.

이 식당은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탈북민 사업가 최초연 씨가 운영해 온 사업체입니다.

최 씨가 운영중인 VCU 대학병원 구내식당의 입구.
최 씨가 운영중인 VCU 대학병원 구내식당의 입구.
/RFA Photo

2007년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최 씨는 7년 전 처음 프랜차이즈, 즉 가맹점을 통해 식당일을 시작했습니다.

[최초연] 2013년도에 첫 사업을 했었어요. 사업체는 프랜차이즈(가맹점) 사업이고요. 프랜차이즈 가게를 세개 하고 있다가 올 해 들어서 대학교 가게 하나는 문 닫았어요. 장사도 별로고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대학교들 아예 다 문 닫았잖아요. 그래서 문 닫고 지금 현재 (대학병원 구내식당) 두 개 하고 있어요.

“많을 때는 식당을 다섯 개 까지 운영해봤다”는 최 씨는 시간제로 근무하던 직원들을 내 보내고 한 가게에서 매상이 떨어지면 다른 가게에서 손실을 메꾸는 방식으로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최 씨는 미국에서 처음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했던 당시 세번째 가게를 닫는 결정을 내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상당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최초연] 처음에는 공포감이 있었어요. 저희가 파는 음식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좀 많았어요. 특히 저희는 생(raw)으로 된 음식을 많이 다루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마스크도 잘 안끼고, 사과같은 것도 손님들 다니는 데 놔두면 손님들이 만지잖아요. 코로나가 음식을 통해서 들어오면 위험하니깐 그런 공포감이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물이나 음료수같은 데서는.

그는 다만 최근에는 많은 고객들이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같은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기 시작했다고 안도했습니다.

자신의 차 번호판에 영어로 ‘통일(TONGIL)’을 새긴 최 씨는 북한에서 살던 당시 ‘토대,’ 즉 성분을 따지는 불공평한 사회 분위기에 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탈북을 결심하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최초연] 북한이란 땅에서는 자유를 통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뭔가를 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북한에서는 성공이나 꿈을 키울 수가 없어요. 토대 때문에, 북한에서 꼭 뭘 하려하면 토대를 따지고, 결혼할 때도 토대, 국가적으로 출세하는 데도 토대, 좋은 대학 가는 데도 토대, 그것이 탈북자를 만들어내는 내부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최 씨는 또 어머니가 하던 사업도 당국의 끊임없는 약탈에 억울한 피해를 입은 사례가 너무 많았다고 말합니다.

[최초연] 겪은 거야 많죠. 북한에 가면 경찰이 있고 보위부가 있고 검찰소가 있어요. 근데 보위부보다는 검찰소나 경찰들이 장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 걸 다 뺏어요. 그게 제일 심했던 때가 1999-2000년도 였는데, 저희 어머니도 사업을 하시는데 한번 몽땅 뺏겨서 집안이 진짜 거지가 됐어요. 다음 날 먹을 것도 없고, 장사 할 물건을 사오다가 다 뺏긴거에요.

최 씨는 태국 난민 수용소를 거쳐 처음 미국에 정착했을 때 낮선 땅에서 혼자서 앞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막막했던 당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최초연] 한 푼도, 땡전도 없이 왔어요. 처음에는 미국이란 땅이 좀 허무했지요. 그 때 당시에는 다른 큰도시를 구경할 기회도 없었고, 동네에서 살면서 미국의 이쁜 모습도 못보고 하니 어쩔 때는 무섭기도 하고 잘못왔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생활을 위해 여러 식당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나도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최초연] 진짜 많은 식당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화장실청소부터 부엌청소, 물건관리나 주문, 양념 제조 등을 다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배워서 한 3년만에 제 식당을 개업했어요.

사업을 처음 개업할 때 필요한 행정절차 등 많은 걱정거리를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 쉽게 해결했다는 최 씨는 이제는 다른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데도 적극적입니다.

[최초연] 앞서 저희 식당에서 일하던 한 동생에게는 메뉴 짜고 음식하는 법, 양년 만드는 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요. 언젠가는 내 밑에서 일할수 없고 나가서 사업을 해야 하니깐 지금 일하는 건 네 일인 것 처럼 해라. 그렇게 가르쳐 줬는데 지금 잘 하고 있어요.

2013년부터 리치먼드에서 식당업을 운영해온 탈북민 최초연 씨.
2013년부터 리치먼드에서 식당업을 운영해온 탈북민 최초연 씨.
/RFA Photo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봐가며 잠시 접었던 사업 확장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할 때가 “손님들이 식당 음식이 맛있다며 다시 돌아올 때”라는 최 씨는 스스로 개발한 요리 메뉴를 손님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음식점을 따로 개업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최초연] 음식을 개발하는건 프랜차이즈라 안 되지만, 조만간 따로 식당을 차리고 싶어요. 빠르면 다음해고, 다음해 봄 즈음이 될 것 같고요. 동양, 미국, 이탈리아 음식 메뉴를 섞어서 ‘American Flavors New Crepe Deli’라고 가게 이름을 달 계획이에요. 지금도 계속 준비하고 있어요.

한편 최 씨는 코로나로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며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최초연] 통화 한 번 하는 데 서른번도 넘게 끊어졌다 연결됐다 하니 진짜 중요한 일 외에는 다른걸 물어볼 상황이 없었어요. 물론 다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해진 것 같아요. 통화하는 가족이 내 가족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한 문장을 다 듣기가 어려워진거에요. 하다가 끊기고, 하다가 끊기고. 조금 들리는 건 들리는 데 통화하다가 자동으로 끊겨버려요, 왜 그런지.

최 씨는 지난 6월 말에 북한에 있는 어머니 등 가족에게 돈을 보냈지만 네 달이 넘도록 확인 전화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착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고 많은 고민 끝에 결심한 미국행이지만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최 씨는 자신에게 ‘아메리칸드림’이란 “첫째로 미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고 “나아가서 언젠가는 고향으로 갈 때 멋지게 성공한 모습으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초연] 친구들과 동창들이랑 북한에 같이 가서 사업할 수 있는 그정도 능력을 갖고 싶어요. 제 가족도 북한에 있고, 나중에 통일되면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싶은데, 호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최 씨는 오늘도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언젠가는 북한에 방문해 남은 가족들과도 재회할 수 있을 그 날을 고대하며 미국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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