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아래로부터 시장화 ①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18-12-18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시민들이 야채를 사고 있다.
ASSOCIATED PRESS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조선신보 평양 특파원을 역임한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오늘은 북한 내부에서 퍼지고 있는 시장∙장마당 활성화 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 문제와 관련해 외부세계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분야는 핵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 경제가 가장 큰 관심사일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인으로서 북한에 머물면서 북한 사회를 직접 체험했고 북한이 외부인에게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장마당을 직접 둘러본 흔치 않은 경험을 가진 이 분을 통해 현재 북한의 모습을 평가해 보는 건 큰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문성희 박사님, 오늘 첫 시간인데요 먼저 청취자 여러분께 간단한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사진 제공:문성희)

문성희: 네 저는 문성희라고 합니다. 제일 교포 2세이고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기자로 근무할 당시 평양에 특파원으로서 두 번 간 경험이 있습니다.

이미 2000년대 후반에도 시장에선 생필품 넘쳐나

<기자> 2008년 8월에 평양의 지역시장인 통일거리시장을 처음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첫 인상이 ‘과연 평양이 맞는가’ 스스로 되물었을 정도였다면서요?

문성희: 정말 놀랐습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들어간 게 1984년이었고요, 계속 북한에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2003년에 조선신보 특파원으로 있다가 그 이후에는 갈 기회가 없었는데, 2003년 당시에 북한에 통일거리시장이 생겼다는 것은 들은 바 있었는데, 그 당시는 거기에 견학을 못 했습니다.

근데 2008년에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기고 직접적으로 거기서 뭔가 사거나 뭐 그런것도 하게 되었는데, 과연 여기가 북한인지 하는 그런 놀라운 장면을 많이 봤고, 물론 그 당시도 북한이 아직도 생활 필수품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거기가면 없는 것이 없었어요. 정말 놀라운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기자> 네 말씀하신 데로 당시 북한에서는 생필품이 많이 부족했는데 통일거리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주로 어떤 데서 생산된 제품들이었습니까?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와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일본 출판사인 헤이본사(平凡社)에서 이 달 중순 출간된 문성희 박사의 저서 ‘맥주와 대포동’ 표지. 엄격한 사회주의경제가 아니라 시장화가 촉진되는 북한의 현상황을 지역시장과 공장 등 경제와 인민생활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그 실태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Photo: RFA

문성희: 제 추측으로는, 이것은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중국이나 그런 데서 들어오는 물건인 듯싶었어요. 근데 먹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북한 안에서 생산되는 것이 팔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기자> 네 북한 내 생산된 농산물들이 시장을 통해서 유통되는 그런 구조였다. 배급구조가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시네요.

문성희: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많은 과일이나 또 생선도 많았고, 콩이나 잡곡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농산물을) 그렇게 많이 수입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좀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거기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북한 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거기에 유통이 됐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급 모자랐던 지방에서 장마당 더 활발

<기자> 평양 이외 지역은 어땠습니까? 보통 북한을 ‘평양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평양과 지방의 격차는 큰 데요,시장화 측면에서 볼 때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문성희: 시장화 측면에서는 오히려 지방이, 아예 처음부터 장마당이 활발했던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추측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시 평양은 국영상점이 많고, 아직도 평양을 중심으로 생활필수품이 다 공급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일정하게, 평양에선 일정하게 생산된 것을 거기에 놓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방에서는 이제 뭐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장마당이 활성화돼 있었다고 할까요,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시장을 볼 수는 없었고, 지역 시장 가까이 까지는 갔는데요, 지방에서는, 가까이 가니깐 역시 길거리 상점이라고 할까요, 길거리 시장 같은 게 보통 사람들이 뭔가 종이나 그런데 위에 물건을 놓고 팔거나, 뭐 그런 정도의 작은 장마당은 많이 있었습니다.

<기자> 네 주로 지방 길거리 시장에선 어떤 물건을 팔고있었습니까?

문성희: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은 담배 그리고 계란이나 그런 것들이었고, 역시 생선이나 고기, 쌀 그런 거 같은 것은 못 봤어요. 못 봤는데, 간단한 것 있잖아요 남새 같은 거, 야채 같은 거, 그런 것들은 장마당에서 팔고 있었던 것 같고, 평양의 작은 길거리 장마당에서는, 길거리 상점에서는, 달피라고 그 쪽 사람들은 말하는데 명태를 말린 게 있었습니다. 뭐 그런 걸 팔거나, 마른 낙지, 한국에서는 오징어라고 하지요, 그런 것들은 봤습니다.

<기자> 집에서 잡았거나 또는 가공해서 그런 것들을 먹고 남은 것들을 시장에다 내다파는 그런 형태로 볼 수 있겠군요?

문성희: 그렇죠. 그리고 계란 같은 것도 굉장히 많이 있는 것이 아니라, 10-15개 정도 그런 계란을 가져와 놓고 있었고, 계란을 사겠다는 할머니도 계셨거든요. 그래서 산다는 것도 그것을 사다가 다시 파는 거잖아요 아마도. 그런 현상 같은 것도 목격을 했습니다.

<기자> 시장에서 사서 다시 되파는 그런 형태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말씀이시군요.

문성희: 예. 그것이 2011년 정도였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자> 이미 6-7년 전에 그런 현상이 평양 이외의 지방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직접 목격했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단속 어려워지자 ‘메뚜기시장’ 대신 ‘진드기시장’으로 불려

<기자> 그런데 북한에서 ‘메뚜기시장’으로 불리던 길거리시장이 2012년을 전후로 ‘진드기시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면서요?

문성희: 그것은 제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메뚜기시장’이 왜 메뚜기시장이냐 하면, 역시 암거래 시장이라고 할까, 장마당이 불법적인 것이잖아요, 불법적이니까 경찰이라 할까, 그 쪽에서는 보안원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단속을 하러 옵니다. 단속을 하러 올 때 다 도망치는 모습이 메뚜기 같다고, 그래서 메뚜기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요, 그게 2012년 정도부터는 길거리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단속을 하는데 대해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게 불쌍하지도 않으냐?’ 라는 식으로 반발하는 소리들이 막 나오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은 단속을 못해서 그곳에 앉아서 그대로 계속 장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니 그게 진드기 같다고 그런 식으로 메뚜기시장이 진드기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자> 네 그러니깐 북한 당국으로서도 시장에 대해서 마구잡이식으로 단속만 하던 방식에서는 일부 후퇴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문성희: 그렇죠. 그러니깐 결국은 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밖에 없잖아요, 국영상점이 잘 돌아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리고 공급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는. 근데 그게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어쩔 수 없는 그런 측면도 있고 해서, 결국은 단속을 하기보다도 그런 것 가만히 다 놔두자 하는 식으로 된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추측인데요.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집 앞 길거리에서 여행용 가방 펼치고 장사

<기자> 이런 방식으로 장사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특히 지방에서 많았다면서요?

문성희: 네. 그리고 집 앞에서 가방이라 할까,  가방상점이라고 제가 멋대로 이름을 붙였는데, 큰 여행용 가방 있잖아요. 그런 것을 다 열어두고 거기에 물건을 놓고 파는 현상을 봤거든요. 어째서 이런 걸 하는가 보니, 지방에서는 시장이 그렇게 많이 있는 게 아니니까, 한 읍에 하나 정도 있잖아요. 그렇게 하면 거기까지 가는데 많이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그런 가방시장을 하는 사람한테서 뭔가 물건을 사거나 그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결국 하나의 장사의 방법이라 할까, 그런 느낌을 가지기는 했었습니다.

<기자> 큰 여행용 가방에 팔 물건들을 담아서, 자기 집 앞 길거리에서 팔고있었다, 이런 말씀이시죠?

문성희: 네 그렇죠. 현지 사람들이 이야기하기에는 값을 물어보니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는 조금 비싼 것 같았어요.  그런 측면에서는 시장에 못 가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거기서 사는, 마치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런 식으로 가방상점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존위해 시장으로 직접 나서

<기자> 북한 주민들도 이미 가격을 어떤 식으로 정해야된다, 뭐 이런걸 다 깨치고 있었단 그런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문성희: 그러니깐 시장 가격이라는 게 생기고 있었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말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개선됐는지 어떤지는 저도 2012년 이후로는 가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간에 2012년까지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깐 결국은 시장을 통해서 물건을 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렇게 된 것으로 봅니다.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라 할까요. 그런 것이 추진되고 있었다고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기자> 네 북한당국은 계획경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래로부터 북한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시장화를 온몸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