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강제 현장동원

워싱턴-박정우 parkj@rfa.org
2021-09-07
Share
[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강제 현장동원 사진은 지난 2017년 함흥 외곽의 한 공사장 모습.
/AP

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어렵고 힘든 건설현장에 ‘탄원진출’한 청년들에게 축하문을 보냈습니다. 문성희 박사님, 오늘은 북한 젊은층의 건설현장 동원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문성희: 네, 그렇게 하지요. 북한에서는 8월 28일을 청년절로 정하고 있는데 김정은 총비서가 축하문을 보낸 날이 바로 이 날입니다. 그러니까 청년절에 즈음해서 보낸 것인데, 올해는 청년절이 정해진지 60주년을 맞이한다며 북한에서는 대대적으로 축하했습니다.

<기자> 어떤 축하행사가 있었나요?

문성희: 지방에서 청년 대표들을 평양으로 불러 대규모 행사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참가자가 무려 1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기자> 꽤 규모가 큰 듯한데, 이런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꽤 많이 들 듯한데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대부분 열차를 이용해서 평양까지 온 것 같은데 열차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많이 들겠지요. 그렇지만 지방 청년들에 있어서는 이런 기회에 평양 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 좋겠지요. 그들을 위해 공연도 진행이 된 것 같습니다.

<기자> 김 총비서는 참가자들과 단체 기념사진도 찍었군요.

문성희: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그 1만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예는 최고 영도자와 접견하는 것입니다. 자택에 가면 최고 영도자와 찍은 사진을 가장 좋은 자리에 걸어놓고 있지요. 이게 집안의 자랑이란 말입니다. 1만명이라고 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육안으로는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데 그래도 자기가 어느 자리에 있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접견사진이 있는 집에서는 무조건 그것을 벽에 걸어놓고 있습니다.

<기자> 그런데 요즘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지방에서 올라왔다면 방역도 만만치 않았을 듯한데요.

문성희: 그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사전에 검사를 했겠지요. 조선중앙통신이 발신한 사진을 보면 청년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가 이렇게 8월 28일에 축하문을 보내면서까지 ‘어렵고 힘든 경제건설현장에 지원’한 젊은이들을 격려한 배경은 뭔가요?

문성희: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인데 지금 북한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어려운 현장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왜냐면 과거에는 일제 식민지시기도 겪었고 6.25이후 복구건설도 겪은 사람들이 나라의 고마움을 알고 그에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어려운 현장에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식량이나 생필품 공급체계가 서고 있어서 국가의 덕분에 자기들이 살 수 있다고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은 뒤 자기들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기들이 해결해야 하게 되었지요.

<기자> 그러니까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위해 제공해온 기본 공급이 중단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귀중한 시간을 국가 건설에 바치자는 그런 생각도 없어진다는 말이네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특히 지금 젊은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 뒤에 태어났기 때문에 공급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해야 하고. 물론 나라를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바치라는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받고 있기 때문에 표면상은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고 이야기를 하겠지요. 그러나 내심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 모르지요.

<기자> 아무래도 외부정보도 예전보다는 많이 들어가고 하면서 북한 당국의 체제선전이 이전만큼 젊은층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듯한데요, 어떻습니까?

문성희: 제가 과거에 취재하거나 접한 젊은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치겠다는 각오도 대단했습니다. 한 여성고등중학교를 취재했을 때 16살밖에 안 되는 어린 학생들이 모두 군대에 탄원하겠다고 한 것에는 많이 놀랐지요. 그러나 이런 젊은이들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들 생활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체제선전을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construction_mobilization.jpg
평양시 장전거리 건설현장의 건설 노동자들. 안전모를 쓴 젊은 여성들이 연장을 들고 줄지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2011년 9월) / 문성희 제공


<기자> 그런데 문 박사님이 북한에 계실 때 건설 현장에 학생들이 많이 동원되고 있었나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창전거리인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는 거리를 건설할 때 기본적으로는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동원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지요. 건설현장에서 일할 시간을 공부에 돌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주로 어떤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동원되던가요? 학교나 지역별로 동원 인원이 할당되는 방식인가요?

문성희: 제가 들은 바로는 학교 단위적으로 건설현장을 맡은 것 같습니다. 평양 교외에 대규모 온실을 건설하고 있었던데 거기는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동원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원까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런 방식으로 할당이 되는 것이지요.

<기자> 그런데 이과계통 대학생들은 그런 건설 현장에 안 보낸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사실인가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이과계통 학생들은 기술개발, 그리고 여러가지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을 창조해내는 것이 하나의 임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연구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수재들은 건설현장에 가는 것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술계통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그 기술을 높이는데 힘을 쓰라고 나라에서 특별히 배려해 주기 때문에 그런 현장에 안 가도 좋은 것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인문과학계통 학생들이 건설현장에 동원된다는 것이네요?

문성희: 네, 물론 제가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취재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렇다고 단언은 할 수 없지만 그런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있는 집에서는 돈으로 해결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일이 있어요.

<기자>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아무래도 건설 현장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겠지요. 그래서 일정한 돈을 바치면 그것으로 해결해 준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2011년에 들은 얘기니까 지금도 그런 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자> 돈이나 권력 등, 뒷배경을 이용해 건설현장 동원에서 빠지려는 시도가 꽤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네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북한 사람들은 ‘여기서는 백(Back)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그것이 바로 돈이고 권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 그 만큼 북한 젋은이들 사이에서 현장 동원이 기피되고 있었다는 말씀인데, 일도 힘들고 대우도 나쁘기 때문일 듯합니다. 실제 보셨을 때 현장 상황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건설 환경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데도 든든하게 안전시설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저 같으면 무서워서 올라가지 못하는 그런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인가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돌격대인가 숙박은 대동강가에 건설한 천막에서 하는 것 같았어요. 건설이 한창일때는 그런 천막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자> 그런데 요즘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류 드라마를 즐겨 보는 현상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도 김 총비서가 이번 축하문을 보낸 배경이 아닐까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축하문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이 있어요. ‘내가 무엇보다 기쁜것은 뒤떨어졌던 청년들이 어머니조국을 위해 자기를 바칠 훌륭한 결심을 하고 어렵고 힘든 부문에 진출하는 것으로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것’이라고 한 부분이에요. 뒤떨어졌던 청년이란 비사회주의 현상에 물들어 있었던 청년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일도 하지 않거나 한류 드라마를 보거나 뭐 그런, 북한 당국의 입장에선 올바른 생활을 하지 않던 청년들이 건설현장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김정은 총비서는 그들과도 만나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 당국으로선 청년들이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비사회주의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청년들에게도 호소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문성희: 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이런 사람들마저 동원을 해야 하는 지경에 있다는 것이지요. 비사회주의적인 죄를 지었다가 교화소에 들어가고 있었던 젊은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교화소에 수감되는 대신 어려운 건설 현장에 가게 되었다, 뭐 그런 상황일 수도 있겠죠.

<기자> 당사자 입장에선 교화소도 어려운 건설 현장도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요?

문성희: 그렇지도 않지요. 교화소에서 노동을 해봤자 그것은 죄값을 치를 뿐 평가도 받을 수 없지만 어려운 현장에 탄원해서 나가면 그것은 곧 영예가 되고 북한에서 영웅 취급을 받고 가족들도 포함해서 물질적인 평가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