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올 해도 수해 못 피한 북한] ② 북, 인도적 지원 수용 가능성 낮아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1.08.11
[긴급진단: 올 해도 수해 못 피한 북한] ② 북, 인도적 지원 수용 가능성 낮아 북한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이날 하루에만 395㎜의 폭우가 내렸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북한 주민이 폭우로 침수된 도로로 자전거를 끌며 걷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앵커: 북한이 올여름 또 수해를 입으면서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지원 제안을 수용하길 촉구하고 나섰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인데요.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과 미국이 내민 손을 잡을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미국이 이번 기회에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수해 피해에 따른 대북 인도적 지원 가능성에 대해 박수영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북한 수해로 주민들 우려…인도적 지원 필요해”

[이인영] 앞으로 인도주의 협력에 관련한 사항은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 지속해서 승인해 나갈 예정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인영 한국 통일부 장관이 최근 (8월 4일) 대북 인도 협력 사업의 하나로 100억 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인 지난 5일, 홍수와 폭우가 함경남도 일대를 덮치면서 주택 1천170여 세대가 침수되고 주민 5천여 명이 긴급 대피했습니다.

북한이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사태에 자연재해까지 겹치며 삼중고를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종주 한국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 기자설명회에서 “남북 간 인도적 협력은 정치·군사적 상황과는 별개로 지속 추진한다는 기본 입장에 따라 북한 피해 상황과 국제사회의 대응을 살피며 적극적으로 협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종주] 정부는 이전에도 북한 지역의 수해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남북당국 및 민간 차원에서 또는 국제기구를 통해 인도적 협력을 추진해 왔습니다. 수해에 따른 북한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협력방안을 마련해 나가고자 합니다.

국제사회도 수해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을 우려하며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유엔 대변인실은 최근 (8월 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당국과 접촉하고 있으며,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지난 한 달간 폭염으로 국가적 식량 위기에 처한 가운데 동부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했다는 보도에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유엔 대변인실은 덧붙였습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도 (8월 9일)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하기 바라고, 인도적 지원을 목표로 하는 국제사회의 노력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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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함경남도 곳곳에서 폭우가 이어지면서 주민 5천명이 긴급 대피하고 주택 1천170여호가 침수됐다고 조선중앙TV가 5일 보도했다. 이달 1∼3일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도로 1만6천900여m와 다리 여러 곳이 파괴되고, 강·하천 제방 8천100여m도 수해를 입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당분간 북한의 태도 변화 어려울 것

하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수용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는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어떠한 인도적 지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단 저는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일 생각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는 안전보장 문제가 우선이어야 하고,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면서 제재 완화를 얻어낼 수 있다고 북한은 생각합니다.

북한이 인도적 지원이란 명분을 앞세워 분배 감시와 내정 간섭이 수반될 것이라생각하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에는 지원 요청을 하더라도 서방 국가들로부터 지원은 받지 않으려 한다는 겁니다. 특히 북한 의주 비행장에서 방역 시설 설비가 한창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고 마키노 기자는 덧붙였습니다.

또 마키노 기자는 김정은 총비서가 한류 영향으로 북한 내 민심이 흔들리는 것을 견제하기 때문에 한국이 제안한 인도적 협력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한국은 추석에 이산가족 상봉이나 코로나 백신 공급과 같은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은 생각인 것 같은데, 북한은 한국의 지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현재 비사회주의 행동을 단속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한국에서 문화가 유입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도적 지원으론 협상 물꼬 트기 어려워

북한이 한국의 인도적 지원은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이 스스로 국경을 개방하고 국제사회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관계에 이어 미북 관계의 진전은 어렵다는 겁니다.

미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미국이 북한에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혀왔지만,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미국이 북한에 새로운 변화구를 던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켄 고스] 북한이 도발하지 않는 한 지금 당장 미국은 북한을 상대하는 것보다 국내 현안에 더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미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은 없죠.

미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 연구원도 “아이에게 고기를 가져다주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그 아이는 더 의존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라며, 부분적 지원 이후 북한이 미국이 내건 조건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브루스 베넷] 미국은 종종 북한을 위해 많은 것을 해왔지만, 북한의 대응은 거의 없었습니다. 북한은 항상 요구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균형 있게 풀어가야 하며, 북한 스스로 국제 안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한편, 고스 국장은 미북∙남북 관계에서 단순한 인도적 지원만으로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며 북한이 요구해온 점진적 경제제재 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켄 고스] 우리가 북한을 협상에 끌어들이려면 미국이 먼저 제재 완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이 제재 완화와 경제적 지원을 협상 조건으로 내건다면, 판도를 바꾸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것, 즉 북한과 주고받기식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로 극심한 경기 침체와 식량난, 여기에 올해도 피해가지 못한 수해까지 입은 북한.

국제사회가 내민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북한이 침묵이 길어질수록 미북∙남북 관계에 돌파구 마련도 어려워질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고통도 날로 심해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