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① 김정은 세습과 권력지형 변화

워싱턴-천소람 cheons@rfa.org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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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① 김정은 세습과 권력지형 변화 북한의 김정은 총비서(왼쪽 앞)과 당·정·군 실세들이 지난 2011년 12월 28일 김정일 영결식에서 운구차를 호위하고 있다. 이들은 ‘운구차 7인방’으로 불렸으나 5년만에 모두 처형되거나 교체됐다. 김정은의 뒤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기남 당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이영호 당시 총참모장 뒤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 서 있었다.
/AP

앵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집권 말기 아들인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해 군부 강경파와 일종의 정치적 거래를 했다고 서방의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이 주장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한 상태에서 아들의 권력세습을 위해 소수 엘리트 그룹과 타협했고 결국 북한의 정치지형 변화라는 ‘대가’를 치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직후 등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북한의 권력지형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토마스 쉐퍼 북한 주재 전 독일 대사로부터 듣는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오늘은 첫 시간으로 천소람 기자가 김정은 세습과 권력지형 변화에 관해 전해드립니다.

토마스 쉐퍼 (Thomas Schäfer)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말기(2007-2010년)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초반(2013-2018년)을 평양에서 보낸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8년 가까이 평양에서 지내며 급변하는 북한의 정치지형을 직접 지켜봤던 그에게 평양에서 일어난, 강건파와 온건파 간 끊임없는 권력투쟁과 이를 토대로 이뤄진 권력세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변하지 않는 도시’ 평양에서 명확했던 한가지 변화는 권력의 변화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뇌졸중이 있었고 신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우리는 또 다른 북한의 정치적 변화를 봅니다.

10년 가까이 외국인으로서 북한을 직접 경험했던 쉐퍼 전 대사는 권력지형의 변화를 제외하면 주민들의 일상 등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그들은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생활 측면을 살펴봐도 많은 변화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정권은 여전히 주민들을 억압하며 많은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이 나아진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네요.

“북한, 김정은 단일 체재 아냐”

서방 대사로 북한 내 고위 인사들과 두루 교류하면서 그가 느낀 북한의 정치체제는 뜻밖입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북한이 1인 지배체제로 김정은 총비서가 ‘절대적인 힘’을 휘두르는 권력자가 아니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북한이 1인 지배체제가 아닌 김일성 주석 시절 때부터 함께해온 아주 소수의 최상위 엘리트 계층으로 이뤄진 집단에 의해 사실상 집단 지도체제(collective leaderships)로 통치되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쉐퍼] 저는, 북한이 아주 작은 집단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집단은 당 내 안보 관련 책임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은 소수로 이뤄진 가족 구성원인데,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함께 해 온 아주 최상위층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그들은 서로 개인적으로 아주 잘 알며 의사결정 과정에 깊게 관여합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 소수 집단을 ‘강경파’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정통성을 이어가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김 씨 일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토마스 쉐퍼] 이 집단 지도체제는 정통성을 이어가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 씨 일가를 앞에 내세워야 하죠. 그래서 최근 몇 년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이들에게는 경제 발전을 통해 주민들을 잘 살게 하는 건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경제 발전을 통해 외국 사상이 북한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겁니다.

[토마스 쉐퍼]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모든 외부의 지원은 외부 사상과 연관돼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외부의 사상은 북한 주민들의 정신무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투자를 받는 것을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나라, 특히 미국, 한국,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과거 한국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도 그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주는 장점보다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해로움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쉐퍼 전 대사는 수면 아래 머물던 북한 권력 핵심 내 강경파의 움직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후반에 수면 위로 부상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마스 쉐퍼] 제가 평양에서 2007년 처음 경험한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을 포함한 몇몇 나라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당 기관지도 그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 외국인 기부자들에게 고맙다고 밝혔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신문에서 ‘이 지원은 인도주의적 지원이 아니었고 외부 사상을 유입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기사가 실렸죠. 이 도움을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분열책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일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권력층 사이에 대외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일화도 있었습니다. 2007년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대북투자 제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의했고 이 사실은 당 기관지에 실렸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이를 뒤집는 기사가 같은 신문에 실립니다.

[토마스 쉐퍼] 2007년, 두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어요.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그 당시 (노무현) 한국 대통령 사이에 말이죠. 그 정상회담에서 한국 민간기업의 대북 투자가 제안됐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이후 관련 논의가 있었고 외국 투자의 장점에 대해 당 기관지가 기사를 실었습니다. …, (하지만) 2008년 새해 기사에서는 외국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논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몇 달 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투자에 동의했지만 나중에 후퇴한 거죠.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후 이듬해 2008년 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신체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의 권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위원장으로선 빨리 후계자를 내세워야 했고, 그 대가는 정치적 지형 변화였습니다.

[토마스 쉐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군부와 소수 엘리트 집단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세우는 데 동의했습니다. 우리는 2009년에 알았지만 이러한 결정은 2008년 후반부터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이를 진행시키기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이것은 국내 정치 지형은 물론 대외정책, 대남정책,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의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하기 위해 이러한 거래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명확했습니다.

군부를 중심으로 소수 엘리트 강경파를 상대로 한 정치적 거래 과정을 거쳐 탄생한 김정은 정권.

쉐퍼 전 대사는 김 총비서와 10미터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됐을 때 가졌던 느낌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토마스 쉐퍼] 한 행사에서 그와10~15m떨어진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2013년 혹은 2014년이었을 거에요. 데니스 로드먼이 북한을 방문해 경기를 하는 자리였죠. 김정은 (총비서)은 그 농구경기를 보는 자체로 아주 행복해 했어요. 그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죠. ‘그가 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있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단순한 삶을 살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그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그의 부모에 의해 이 자리에 놓여진 거죠.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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