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③ 공개처형∙강제동원 ‘여전’

워싱턴-천소람 cheons@rfa.org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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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③ 공개처형∙강제동원 ‘여전’ '불경죄'로 숙청한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왼쪽)과 설렁설렁 박수쳤다는 이유로 처형된 장성택.
/연합뉴스

앵커: 북한 체제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토마스 쉐퍼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시간이 갈수록 문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북한 관료들도 이 체제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형 집행 공개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김일성 광장에서 강제 연습에 동원된 아이들을 보며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전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직후 등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북한의 권력지형 변화를 직접 목격했던 쉐퍼 전 대사로부터 듣는 [RFA 특집, 북한 통치체제의 실상]. 오늘은 세 번째 시간으로 천소람 기자가 북한 통치체제 이면의 관료들의 속마음과 열악한 인권 실태 등 사회 실상을 전해드립니다.

빈곤∙궁핍∙억압

[토마스 쉐퍼] (북한의) 첫인상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가난, 비참, 그리고 억압이 첫인상이었어요.

1980년대를 중국에서 지냈던 토마스 쉐퍼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는 2007년 평양에 첫 발을 내딛었던 순간 1980년대 당시 중국보다 더 낙후됐었다고 느낍니다.

이 후 그가 2차례 평양에 머문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북한 주민들의 생활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토마스 쉐퍼] 김정일 집권 마지막 몇 년 동안 평양 시민들의 물질적인 생활수준은 조금 나아졌지만, 시골의 생활 수준은 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하면서 외부정보 유입에 대한 단속이 한층 강화 됐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북한에 살아도 (외보정보유입과 관련된 것은) 알아차리고 수치화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특히 정권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면 말이죠. 김정은 (총비서)이 집권을 시작하면서 단속이 더 심해졌습니다. 북한에 외부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증가했는지 혹은 감소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외부정보는 북한 내로 많이 유입이 될 걸로 봅니다. 중국 그리고 한국과 경제 격차가 계속해서 커지는 만큼 정보유입이 계속되는 것이 미래의 북한 정권에는 더 큰 문제가 되겠죠.

쉐퍼 전 대사는 평양에 머물 때 북한 고위 관료들과 대화를 통해 베일에 쌓인 북한의 정치체제를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최근 펴낸 책, ‘김정일에서 김정은까지: 강경파는 어떻게 득세했나 (From Kim Jong Il to Kim Jong Un: How the Hardliners Prevailed)’는 그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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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쉐퍼 대사의 책 ‘김정일에서 김정은까지: 강경파는 어떻게 득세했나’ 표지. /아마존닷컴 캡쳐

[토마스 쉐퍼] 수 년을 북한에서 보내며 북한 관료들과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 후 느끼는 바가 있었고, 제 경험이 북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에 대한 몇몇 인식은 분명히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보통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죠. 외부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잖아요. 기회가 있더라도 짧게 한 두 번 혹은 하루 대화하는게 다겠죠. 북한 주민들과 대화하고,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들만이 북한 정책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관료들도 ‘피해자’

쉐퍼 대사는 아내와 함께 평양 내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외교단지에 머물렀습니다.

[토마스 쉐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평양에서의 생활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문화적인 부분에서 통제돼 있었고 북한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조금 제한이 있었죠. 외국인 사회는 아주 작았고 말이죠. 일상생활은 소소했고 궁핍했지만, 북한 주민들과 비교하면 몇 천 배 나은 상황이었겠죠?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북한 체제를 이해해야 하는 점이 특히 어려웠고 그 중에서도 주민들의 고통을 직접 지켜보는 건 고역이었습니다.

[토마스 쉐퍼] 시간이 갈수록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더 이해했고 억압이 느껴졌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쉐퍼 전 대사는 이런 감정을 북한 주민들을 넘어 관료들에게도 느끼게 됐다고 말합니다.

[토마스 쉐퍼] 모두에게 적용되죠. 북한 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면 그들은 북한 당국의 입장을 말해주죠. 저는 그들이 이 문제있는 체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피해자라고 느꼈어요. 그들은 단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족에서 태어난 거잖아요. 북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만 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아니고 그냥 그 상황에 놓여진 거죠.

그는 북한 고위 관료와 만남에서 겪은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 하루는 북한의 아주 고위 관료와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꽤 나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북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저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고 대화하는 편이었어요. 그 대화가 끝나고 다른 북한 관료가 제가 말할 때 조금 조심할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당시 그의 머리를 스친 건 대화 내내 긴장감이 역력했던 그들의 표정이었습니다.

[토마스 쉐퍼] 제가 질문을 할 때면 그들은 굉장히 긴장한 것처럼 보였어요. 잘 못 대답할 까봐 겁먹었던 거죠. 그렇게 된다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테니까요. 처음에는 ‘어려운 질문을 못하게 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상대방이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그는 북한의 관료들 역시 북한 체제의 ‘피해자’라고 여기게 됐습니다.

[토마스 쉐퍼]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 그들을 좋아하게 됐고, 보통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친구가 됐겠죠?

광장에서의 공개 사형 집행 그리고 한밤 중 아이들의 연습

쉐퍼 전 대사는 북한에 지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잠시 고민한 뒤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토마스 쉐퍼] 차를 타고 중국에서 평양으로 돌아오던 날이 기억이 나네요. 여느 때와 같이 차로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한 작은 마을을 지나가야 하는데 진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입구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왜 도로가 막혔는지 물어봤습니다. 광장에서 누군가 사형을 당하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죠.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은 말이 없고 가라앉아 보였어요. 사형집행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이 일화를 잊을 수가 없네요.

그는 폭우가 쏟아지던 한 여름 밤, 군중들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깬 뒤 아내와 함께 소리를 쫓아 걸어갔던 경험도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 김일성 광장에 도착했어요. 10-12살 사이의 아이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오고 있었죠.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훈련을 지시하고 있었어요. 그 공간에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지치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상황에서 풀 위에 옷을 깔고 자고 있었습니다. 지치고 피곤해 보였어요. 이 장면이 아주 인상에 깊어요. 아주 추악한 행위잖아요. 한밤중에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마을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는 사형, 한밤 중 훈련을 강요 받는 아이들.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현장을 본 그 순간을 쉐퍼 전 대사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쉐퍼] 북한에 있으며 만난 사람들을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그들을 지지하며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슬픕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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