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지 밀러 씨에게 듣는 북한 이야기] ② “평범한 일상 속 변화 느껴져”

워싱턴-천소람 cheons@rfa.org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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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 밀러 씨에게 듣는 북한 이야기] ② “평범한 일상 속 변화 느껴져” 도로에서 마주한 트럭 위 군인들.
/린지 밀러 (Lindsey Miller)

앵커: ‘트럭을 타고 이동 중인 북한 군인들’, ‘디즈니 가방을 멘 소녀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젊은 연인’ 들의 모습은 북한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영국 외교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2년 간 평양에서 살았던 린지 밀러 씨는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삶을 사진에 담으면서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속에서도 작은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의 저자 린지 밀러 씨의 북한 이야기, 오늘은 두번째 시간으로 밀러 씨가 찍은 사진들과 이에 얽힌 이야기, 사진을 찍으며 밀러 씨가 느꼈던 생각을 천소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트럭 위 군복을 입은 20대 청년들

린지 밀러 씨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는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북한 군인들입니다. 이 사진이 그녀가 북한과 주민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흔히 마주하는 군인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김정은 정권을 떠올리게 되지만, 밀러 씨는 그들이 북한 군인이기에 앞서 평범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라고 말합니다.

[린지 밀러] 이 사진을 보면 그들을 통해 북한 정권을 떠올리겠죠, 하지만 이 사진을 오래 보면 개개인의 표정을 볼 수 있고, 이들이 단지 젊은 청년들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몇몇은 웃고 있고, 몇몇은 허공을 쳐다보고 있고요. 또 몇몇은 지루해 보입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차에 있던 밀러 씨는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던 그 찰나를 기억합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밀러 씨와 손 인사를 했는데, 다른 군인들도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린지 밀러] 그중 한 명이 저에게 손 키스를 보냈고 다들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보냈죠.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어요. 우리는 (북한에 이런 일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곤 합니다. 군복에 너무 집중해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을 잊곤 하죠.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고, 가족과 그들의 인생은 어떨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군복에만 집중하기보다 사람 자체를 볼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들을 개개인으로 존중할 수 있죠.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입니다.

하늘색 작은 아파트에 투영된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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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옆, 북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색의 작은 건물. /린지 밀러 (Lindsey Miller)


평양의 고속도로 옆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 건물. 평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작은 아파트입니다. 밀러 씨는 이 건물의 페인트 색에 이끌려 사진을 찍게 됐고,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해졌습니다.

[린지 밀러] 이 건물을 처음 보았을 때는 건물 외관에 칠해져 있는 페인트 자국이 눈에 띄었습니다. 겹겹이 칠해져 있는 그 페인트를 보면서 북한의 생활이 투영됐습니다. 페인트 자국은 선명히 볼 수 있지만, 건물 내부, 문 안쪽의 상황까지는 제가 볼 수 없잖아요? 평양처럼 겉모습이 화려한 건물은 아니었지만, 이 건물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했어요. 겨울은 어떻게 보내는지, 충분한 식량은 있는지, 물은 나오는지 말이죠.

평양에 있는 건물들은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지금도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여전히 북한 깊숙이 존재하는 가난과 빈곤 등이 밀러 씨의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교복을 입고 디즈니 가방을 멘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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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끝난 뒤 고속도로에 앉아있는 어린 소녀들. /린지 밀러 (Lindsey Miller)


교복을 입고 목에 빨간 천을 두른 어린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로에 앉아 있는 사진도 밀러 씨의 기억에 남은 장면입니다. 밀러 씨는 많은 어린 학생들이 미국 만화 영상의 상징인 디즈니 가방을 메고 있어 놀랐던 순간을 회상합니다.

[린지 밀러] 제가 상상도 못 했던 물건들을 착용하고 있었죠. 디즈니 가방을 북한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특히 아주 어린 소녀들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김일성, 김정일의) 벽화를 보고 절하고 있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런 경험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죠.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들이 빨간색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지만, 단지 아이일 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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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마주한 붉은 색의 건물과 2명의 노인. /린지 밀러 (Lindsey Miller)


평양에 있는 빨간 건물과 그 앞을 서성이는 할아버지.

그 뒤에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할머니의 모습에서 그들이 겪은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또 두 노인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밀러 씨는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린지 밀러] 북한의 기성세대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인생을 경험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많은 사람이 전쟁을 겪었을 수도 있고, 고난의 행군도 겪었겠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권력 세습과 그 과정에서 혼란도 경험했을 거잖아요. 김정은 총비서가 한국의 땅을 밟고,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도 봤겠죠? 이 모든 것을 경험한 그들의 인생은 어떨까요? 이런 질문들을 할 수도 없고, 질문한다고 해도 정직한 답변을 받지 못했겠죠.

할아버지가 입고 있는 옷이나 붉은색 건물의 색이 바뀐다면 이 사진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어색하지 않은 사진이었을 거라고 밀러 씨는 말합니다.

[린지 밀러]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건물색을 보면 매우 북한스럽다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이 짧은 순간, 저 노신사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요?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걸까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러곤 했거든요. 뒤에 있는 할머니는 그의 아내일까요? 알 수 없죠.

노동신문 앞 손을 잡고 있는 연인, 사소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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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건물 앞, 젊은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 /린지 밀러 (Lindsey Miller)


북한 체재와 사상을 가장 앞장서서 선전하는 ‘노동신문’사 앞. 그리고 한낮에 손을 잡고 그 앞을 걸어가는 젊은 연인의 사진에서 밀러 씨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린지 밀러] 이 사진이 좋은 이유는 ‘노동신문’은 중앙정부의 단속과 제재를 상징하잖아요? 북한 정권이 전 세계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춰졌으면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건물 앞에서 젊은 연인이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보면서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않잖아요. 조금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꽤 흔한 일이었죠. 젊은 세대들이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이 모습은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고, 북한 정권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들이 아니었던 거죠. 북한이라는 나라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변하지 않은 점들도 많지만, 이렇게 젊은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것도 변화잖아요. 젊은 세대들의 자그마한 변화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담지 못한 순간들…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차마 사진에 담지 못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에는 사진뿐 아니라 16개의 짧은 이야기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 장면들이지만, 당시 그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기를 선택한 순간들입니다.

밀러 씨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묘향산에서의 일화를 마지막으로 소개했습니다.

[린지 밀러] 하루는 정자에서 쉬고 있었어요.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저와 사진을 찍길 원했어요. 가족들과 온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사진을 찍으며 저는 그녀에게, 그녀도 저에게 팔을 둘렀습니다. 5분여 동안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이 정말 즐거웠고, 그녀의 향수 냄새와 재치, 친절함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가 만약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말이죠. 그들이 옷에 차고 있던 김일성, 김정은 배지만 뺀다면,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었죠.

이처럼 밀러 씨가 평양에서 지낸 2년 동안 사회주의 사상은 북한 곳곳에 늘 존재했지만, 밀러 씨가 주민들과 나누었던 교감과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또 그 그리움을 달래고, 소중한 추억을 계속 간직하고픈 것이 이 책을 출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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