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유엔보고서 맹비난 뒤 WHO 호평 배경은?

워싱턴-한덕인 hand@rfa.org
2021.04.13
북, 유엔보고서 맹비난 뒤 WHO 호평 배경은?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보건기구 본부 건물에 있는 로고.
/AP

앵커: 최근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어린이 영양실태 문제를 지적한 유엔 안보리 전문가단 보고서를 강하게 비판한 데 이어 세계보건기구를 향해서는 협력 의사를 밝힌 데 대해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속보이는 처사라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실제 건강상태보다 코로나19가 전무하다는 등 외부 선전에 치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물론, 내부 불만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황당한 날조자료가 버젓이 언급됐다.”

“유엔과 비정부단체의 간판을 가지고 진행되는 ‘인도주의협조’ 사업이 우리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가를 엄정히 검토하며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4월6일), 11개 대북 구호단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근거해, 고강도 방역조치로 인해 북한 내 어린이 영양실태가 악화했다고 지적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를 두고 노발대발한 북한.

반면 다음날(4월7일)에는 전날 기조와는 정반대로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에 대해 호평과 협력의 뜻을 밝혔습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런 상반된 태도가 세계보건기구가 이제껏 보건성이 제공하는 코로나19 관련 상황을 별다른 검증없이 국제사회에 전해주는 일종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4월9일)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세계보건기구가 북한 보건성이 전하는 코로나19 관련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세계보건기구 보고서가 북한 내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이 전혀 없다는, 북한 정권이 원하는 이야기를 지지하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세계보건기구와는 향후에도 협력할 의향이 있을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나아가 “이런 태도는 북한 정권이 앞으로도 원조를 받는 대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숨길 것을 시사한다”며, 따라서 “한미 당국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야한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을 약화시킨다”고 꼬집었습니다.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도 (4월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의 세계보건기구 호평은 북한이 여전히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기타 약품을 후원받기 위해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나아가 주민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을 직접 겪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양실태 등의 상황이 열악하다는 유엔 보고서를 더 신뢰하게 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특히 현실과 괴리된 주장을 지켜본 “충성스러운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 역시 없지 않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정재섭 미국 존스홉킨스대 링크(LiNK) 북한정책 수석연구원도 북한이 유엔 보고서와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를 별개의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재섭 연구원: WHO와 유엔을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유엔에서는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비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패널은 지난번 보고서 이후에는 주로 북한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고, 보고서를 읽어 보시면 영양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 선박환적 등 북한을 비판하는 부분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그 보고서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WHO는 북한 인도지원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이 둘을) 다르게 보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정 연구원은 특히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지난 몇 년간 커지는 흐름에 따라 미국이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을 비난하는 기조가 뚜렷해진 것과 반대로 북한은 오히려 해당 기구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재섭 연구원: (북한이) WHO를 좋게 바라보는 부분이 트럼프 정부에서 보신 것과 비슷하게 중국의 영향력에 있다, 그런 흐름에서 비슷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 정부에선 유엔에 관련해선 비판을 그렇게 크게 하진 않았죠. 반면 WHO에 대해서는 중국의 영향이 크다. 미국이 싫어하면 북한이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과 비슷한 흐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미국 해군분석센터의 켄 고스 국장은 “통상 북한 당국의 입장 발표는 내부와 외부 청중 모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들의 정책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대체로 유엔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전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이번에도 북한은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반박한다”며, 보고서에 대한 북한의 이번 반응은 놀랄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맥스웰 연구원은 김정은 총비서가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가장 간단한 결정은 국제 사회의 원조를 완전히 투명하게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배분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는 다만 이러한 노선은 김 총비서 자신의 정책 결정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대체로 대북인도적 지원에 큰 변화는 없을 걸로 내다봤습니다.

켄 고스 국장은 북한이 유엔 및 외부 원조 기구들을 통해 자체적으로 들여올 여력이 없는 기술과 자원 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국제기구 및 인도지원단체 등의 외부지원을 전면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습니다.

켄 고스 국장: 북한은 유엔 국제기구나 인도주의단체들의 외부 지원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제공한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북한은 외부에서 원조를 지원받기 위한 물밑 협의를 조용히 이어가고 싶어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인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의 안경수 센터장도 향후 국제기구 및 인도지원단체들의 대북지원에 큰 변화가 있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안경수 센터장: 북한이 유엔 국제기구들이나 인도지원단체들에 협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이건 이제 좀 강하게 나오는 언술일 뿐이고. 앞으로 방북활동이나 분배감시같은 경우엔 제한이 좀 있겠지만, 궁극적으론 정도와 속도 차이는 있겠지만 북한이 국제기구나 인도지원단체들과 협력은 지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유엔 전문가단 보고서에 대해 북한이 반발한 데 대해 이러한 “국경 봉쇄 이후 공급 부족으로 영양 관련 비축물자가 줄어들면서 어린이 영양실조 상황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내용이 날조됐다는 북한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도 “북한 정권은 지속해서 자국민을 착취하고, 불법적인 핵과 탄도 무기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쓰일 자원을 전용하고 있다”고 북한의 인권 문제를 규탄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