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북한에서 온 손편지] ② 희망을 담아 써 내려간 답장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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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ion-Rebel Pepper

앵커: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어머니의 편지를 약 10년 만에 받아 본 한 탈북 여성은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사실만으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북한에서 안타까운 소식만 들려오지만, 이마저도 자신이 어머니를 도울 수 있고,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원동력이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날로 쌓여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어떤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2000년대 초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한 탈북 여성이 북한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받은 기적 같은 편지 사연을 소개했는데요.

 

오늘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사랑의 마음을 담은 탈북 여성의 답장을 노정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어머니를 도울 있음에 감사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북한의 어머니로부터

약 10년 만에 편지를 받은 탈북 여성 김은희 씨. (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편지 속에는 어렵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머니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지만,

오히려 김 씨는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자신이 북한을 떠난 뒤 20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한 어머니가 살아계신다는 소식에,

사진으로나마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음에,

또 형편이 어려운 어머니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건네줄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한국에서 홀로 살아가는 본인의 형편도 넉넉지 않지만,

어떻게든 어머니가 필요한 것은 다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김은희(가명) ] 제가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고 나니 지갑에 4 원이 남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늘은 엄마가 이밥(쌀밥), 고기라도 해서 드시겠구나. 엄마가 오늘은 웃으면서 된장국이라도 끓여 드시겠는지’. 엄마가 좋아하시는 드시라고, 엄마가 입는 , 쓰는 것은 보내드릴 테니까 이밥에 고기라도 사서 드시라고 했거든요. 엄마가 그렇게 하시겠다고... 엄마에게 돈을 건네주신 분이 말하기를 엄마가 그렇게 우신대요.

돈을 건네받은 어머니는 편지로 못다 한 고마움을 전화기 너머로 전합니다.

[어머니 육성] 고맙다. 고맙구나. 이렇게 고마울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김 씨에게  어머니는 늘 씩씩한 여장부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동생들의 시집, 장가를 다 보내고,

고혈압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경제를 이끌어갔습니다.

그렇게 홀로 모진 고생을 이겨낸 어머니의 강인함은

김 씨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김 씨가 한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어머니 생각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홀로 명절을 보낼 때면 음식을 차려 놓고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보는 것도 매년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김은희(가명) ] 제가 아플 때나 맛있을 먹을 때도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가 한복이나 가락지를 좋아하셨어요. 제가 동대문이나 인사동에서 , 고운 한복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그렇게 나는 거예요. 한복 앞에서 멍하니 서서우리 엄마가 입으면 이런 모습이겠지라고요.

/Illustration-Rebel Pepper

 

어머니에게 계속된 시련…, 나에게는 희망

 

안타깝게도 북한에 계신 어머니에게 시련은 계속됐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따른 방역 대책으로 북중 국경이 봉쇄돼

북한의 경기 침체가 악화하면서 생활고에 직면한 데다

김정은 정권이 탈북민 가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김 씨와 어머니는 한동안 연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말,

김 씨는 자신과 어머니를 연결해 주던 현지 브로커로부터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지난 8월에 내린 집중 호우로 어머니의 집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북한 현지 브로커] 집이 앞으로 무너지겠습니다. 이번 피해로 집이 그렇게 무너졌다는 아닙니까. 집에 토사가 쓸려 완전히 출입문이 넘어지고, 집이 한심합디다. 앞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골대(골조) 몽땅 무너졌다는 소립니다. 출입문 기초가 드러나오고...,

 

브로커에 따르면 비에 쓸려 내린 토사가 집을 덮치면서 거의 무너질 정도였고,

어머니는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한 채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브로커가 건네준 전화기 너머 어머니는 또 울기만 했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의 집이 수해를 입었고,

북한 당국의 복구 지원과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끊은 뒤 서둘러 한국 돈 100만 원(미화 약 840달러)을 마련해 송금했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북한에서 홀로 지내고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됐다고 말합니다.

 

[김은희(가명) ] 내가 무너지면 된다. 내가 다시 박차고 일어나 돈을 벌어 엄마를 도와주고, 동생들도 도와주고... 의무는 이것밖에 없다는 거죠. 저는요. 내가 살아야 희망이 생겼어요. 내가 살아야 엄마도, 동생들도 있다는 원동력이 생긴 거죠.

 

탈북민 정착 지원 활동을 하는 한국의 민간단체,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의 신미녀 대표도 김 씨의 다짐을 응원했습니다.

 

[신미녀 대표] 북한에서 먹고, 산다는 소식이 들려와야 하는데,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2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까지 들리니까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이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죠. 여기 계신 탈북민 어르신들이 그렇게 건강을 챙기세요.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반드시 고향을 다시 있다 염원이 덧붙여진 거죠. 건강하게 오래 살아 고향에서 가족을 만나겠다는 염원이 정말 가슴 뭉클했습니다.

/Illustration-Rebel Pepper


어머니에게 보내는 답장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김 씨는

북한에 계신 어머니가 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희망을 담아 써 내려 간 답장을 띄워 보냅니다.

 

너무 보고 싶은 엄마. 땅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꽃다운 엄마의 고운 얼굴, 그대로일 알았는데,

엄마 사진을 보고 세월이 미웠소.

엄마 나이 80 넘으셔서 이제 머리도 빠지고,

곱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들을 보며

어머니에게 정말 많은 죄를 지은 내가 미워요.

엄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아프지 마시고,

어떻게든 딸이 엄마를 위해 다시 박차고 일어나 엄마를 도울 것이고,

동생들을 위해 끝까지 도울 것이니 엄마 믿고, 다시 소식이 때까지 기다릴게요.

엄마~ 걱정하지 마시고, 앞으로 좋은 날이 거니까 건강에만 힘쓰고,

엄마~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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