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한미일 탈북자 6인 솔직 토크 ② “내 삶은 내가 결정해요”

도쿄-박정우 parkj@rfa.org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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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탈북민연대 일본지부가 지난 2016년 도쿄 신주쿠(新宿)의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앞에 설치된 전광판 광고를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국제탈북민연대 일본지부가 지난 2016년 도쿄 신주쿠(新宿)의 신오쿠보(新大久保)역 앞에 설치된 전광판 광고를 통해 북한 주민의 인권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을 떠나 미국과 일본, 한국 등 각 지역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 이들이 되짚어 보는, 북한에서의 삶과 현재 정착한 곳에서 느낀 차이점은 뭘까? RFA 자유아시아방송과 일본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 (日本政府 拉致問題対策本部)는20대부터 30대, 그리고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탈북자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북한 이야기와 좌충우돌 자유세계 정착기를 마련해 4회에 걸쳐 보내드립니다. 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 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미국∙일본∙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6인의 솔직 토크,’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내 삶은 내가 결정해요’편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박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 정착해 살고 있는 김철민(가명) 씨. 북한을 떠나온 뒤 국가가 간섭하지 못하는 인간의 기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털어놓습니다.

김철민: 제가 (북한을) 나와서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할 권리, 정부와 기관에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직업) 선택의 권리가 있구나 (하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김수인 씨도 북한에서는 당과 수령 아래 철저히 뭉쳐야 하고 그런 가운데서야 개인의 권리도 보장받도록 강요당했다고 말합니다.

김수인: 외부에 나와서 보니까 개인으로서 삶에 자기가 주인이 돼 자기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에 대한 복종과 충성심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권리, 인권의 개념이 이런 것이구나,….

김철민 씨는 기본권을 행사하는 주요 수단으로 선거참여를 들었습니다.

김철민: 일본에서 제가 선거를 세 번 (참여)해봤습니다. 선거제도를 이해하기가 참 힘들었지만 이제 기다려지네요. 이 선거를 통해서 내가 (나를) 더 잘 살게 해주는 정치인을 고를 수 있는 사회,….

미국에서 살고 있는 최초연(가명) 씨는 북한에서 선거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지 당시에는 잘 몰랐다고 말합니다.

최초연: 선거하면서 한 사람 놓고 투표하는데 그 선거에 빠지면 반동으로 몰아요. 몇 명이 참가했는가가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선거에 참가하지 않으면 반동으로 몰고 사상 투쟁이 심각해요, (북한에 있을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강릉아산병원에서 탈북자들이 건강 검진을 받고 있다.
한국 강릉아산병원에서 탈북자들이 건강 검진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일 정착 첫 건강검진 CT, MRI 촬영

먼저 돌아간 형제들 생각 밤잠 설쳐


의료 문제로 화제가 옮아가자 참가자들이 할 말이 많은 듯합니다. 김철민 씨는 일본에 도착해 CT, MRI 등 첨단 영상장비를 활용해 첫 건강검진을 받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김철민: 아파서 간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거주 수속 중에 갔는데 처음으로 일본 병원에 가서 온 몸을 진찰했어요. 처음으로 CT, MRI를 했는데,…, 그 날 저녁에 잠을 못 잤습니다. 먼저 돌아가신 형제들, 한 번도 검진도 못 받고 돌아갔거든요. 그래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박경림(가명) 씨도 일본에 정착한 뒤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받았던 경험을 얘기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박경림: 저는 일본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일본에 와서 2년 뒤 암 진단을 받고 두 차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대수술을 받고 살아났는데 내가 만약 북한에 있었다면 없는 존재인데,…. 일본의 의료체계, 복지제도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게 아닌가. 이 말을 북한사회에 꼭 전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마틴 리(가명) 씨도 병원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돈이 없어도 의료지원을 받는 걸 보고 북한과 너무 달라 놀랐다고 털어놓습니다.

마틴 리: 제가 병원에서 일할 때 가끔 응급실에서 통역을 할 때가 있습니다. 노숙자가 많이 오는데,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죠. 노숙자가 길거리에서 지내다 벌레에 물린 자리가 곪아서 병원에 오면 치료를 다 해주는 데, 북한에서는 잠깐 소독약도 바르지 못해 (상처가) 곪아가는 (친구를 본 적이 있는 데) 정말 안타깝더라구요.

 

“북한선 정당한 노동 대가 못 받아

여기선 하지 말라고 말려도 일해”

의료복지 못지 않게 노동의 대가도 북한과 남한이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김지민(가명) 씨는 지적합니다.

김지민: 제가 처음 예술단에 들어갔을 때 쌀 1킬로그램 조금 넘게 살 수 있는 돈을 받고 한 달 내내 공연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손풍금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는데,…. 달러로 100 달러, 200 달러, 300 달러, 많게는 1천 달러까지 그때그때 다르지만 돈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정말 누가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거예요. 그 동안에는 내가 정말 노동의 대가 없이 일을 했었구나,….

김철민 씨는 일을 더 하면 보수가 그만큼 더 늘어나는 재미에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철민: 지금 다니는 회사 외에도 밤에도 회사를 다니거든요.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재미가 있거든요, 대가가 (있어서.)

최초연 씨는 북한에서는 학생들에게 농촌동원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농장일을 시키지만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최초연: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몽땅 대학생부터 인민학교, 중학교 (할 것 없이) 한 달 반 정도 다 농장으로 일하러 가요, 봄과 가을에.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200평에 대한 과제를 끝내야 했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죠. 그 어떤 보수도 없고 학교를 한 달 반 안 가고,….

지난 2월 영국의 북한 인권단체 ‘커넥트 북한’이 주최한, 북한인권과 문화를 알리기 위한 북한요리 행사가 런던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 2월 영국의 북한 인권단체 ‘커넥트 북한’이 주최한, 북한인권과 문화를 알리기 위한 북한요리 행사가 런던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사진-임민영 씨 제공

김수인 씨도 적절한 대가가 따르지 않을 땐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김수인: 북한 사람들은 대개 수동적이라 시키지 않으면 안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그에 대한 대가를 받으면 그 만큼 더 열심히 일하거든요, 한국에 사는 탈북자들도. 대가가 주어지냐 안 주어지냐의 차이지 북한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해서 더 적게 일하고,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평양방문 미리 신청하고 허가 받아야

이곳에선 언제든 원하면 해외여행도”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여행의 자유 역시 북한을 떠나온 뒤에야 되찾게 된 권리입니다. 마틴 리 씨는 작년에 6개월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얘기합니다.

마틴 리: 북한에선 제가 태어난 곳에서 멀리 나가봤자, 석탄을 싣고 달리는 기차에 매달려서 00까지는 나가봤어요. 근데 평양이나 이런 데 가려고 하면 제가 사는 곳에서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해요. 반면 미국에서 제가 작년에 6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유럽도 나갔고 동남아까지 세계일주를 했어요. 배낭여행이죠.

마틴 리 씨는 여행의 자유가 무척 소중하다고 강조합니다.

마틴 리: 어디를 가도 자유잖아요. 제가 바로 내일 가고 싶다면 오늘 밤 표를 사서 제가 원하는 것을 다 볼 수 있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여행도 사람에게 있어서 앞으로 인생을 사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없다면 불행할 것 같아요. 자유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죠.)

박경림 씨도 북한에서는 평양조차 허가 받지 않고는 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해외여행도 한 순간에 가능해졌다고 말합니다.

박경림: 지방에서 평양을 한 번 가자면 승인번호가 내려와야 해요. 이 사람이 왜 평양에 가야 되는가, 왜 수도에 가야 되는가 그 용건이 합당해야 해요. 평양은 목적이 특별하지 않으면 거부돼요. 여기 도쿄에 와서 보면, 여권 하나면 내가 지금 미국에 가고 싶다 하면 순식간에 갈 수 있잖아요. 그런 자유,….

김지민 씨는 여행을 떠나는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김지민: 여기 도쿄로 오기 전에 삿뽀로에 들러서 5일 동안 여행하고 왔어요. 서울은 지금 겨울이 끝나갈 무렵인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조금 더 걸려 삿뽀로에 도착하니까 거기는 눈이 막 쌓여 있더라구요, 정말 함박눈이. 그렇게 5일간 지내다 다시 두 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오니까 여긴 꽃이 막 피어있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여러 계절을 경험하고 있는 거잖아요. 정말 신기하고, 여행을 하면서 내가 자유국가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죠.

 

“처음엔 꼭 서울서 살겠다 다짐

그럴 필요 없다는 것 곧 깨달아”

김수인씨는 처음에 한국에 정착할 때 서울에서 꼭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얼마 안 가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놓습니다.

김수인: 한국에 왔을 때 저는 서울에 꼭 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북한의 일반 주민이 평양에 못 가는 걸 생각하면 내가 서울 외에 다른 지역에 가면 서울을 가볼 일이 없겠구나 싶어가지고. 그러니까 북한하고 똑같이 생각한 거죠. 그런데 서울은 물론 제주도도 배타고 가보고 비행기도 타고 가고, 중국도 여러 번 갔고, 작년에는 미국까지,…. 백악관이 근무하던 곳에서 가까웠거든요. 그 때 굉장히 느낌이 이상했어요. 여행이 (이 곳에선) 일반인이 그냥 보편적으로 하는 행위인데 북한에서는 그게 안 되니까,….

반면 낯선 땅에서 정착해 살기까지 겪었던 어려움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김지민 씨는 말투를 바꾸려 무척 애썼다고 말합니다.

김지민: 한국에 정착한 뒤 말(투)을 서울말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실제 바꾸었어요, 억양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그런데 지금 일본에 계신 분들이 북한 억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김수인씨는 북한에 대한 편견을 말투를 바꾼 이유로 듭니다.

김수인: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빨리 언어를 바꾸고 싶어하는 이유는 탈북자에게 씌워지는 그런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북한이 경제적으로 낙후됐고 교육의 질이 낮고 하니까,…. 선입견이 큰 것 같고요. 선입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남과 북이 70년 동안 헤어져 살았잖아요. 서로가 모르잖아요. 그리고 북한이라고 하면 방송에서 항상 핵무기나 공개총살, 이런 걸 얘기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요.

앵커: RFA-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 공동 기획 ‘미∙일 전문가와 함께 하는 미국∙일본∙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6인의 솔직 토크’ 2편 ‘내 삶은 내가 결정해요’ 편이었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에는 3편 ‘인권, 그게 뭔가요’ 편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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