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동질성 회복 계기 되길”-카네기 홀 공연 갖는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
서울-박성우 xallsl@rfa.org
2009.03.18
2009.03.18
RFA PHOTO/박성우
공연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김철웅 씨를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김철웅: 솔미솔파레파미~ 하나 둘 셋, 둘 둘 셋.
학생들: 솔미솔파레파미~
서울 강남에 있는 백제예술대학 8층. 한 강의실에선 음악 악보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른바 ‘시창’ 수업이 한창입니다.
김철웅: 솔라시도라시솔~ ‘솔’이 몇 박자야?
김철웅 교수에게 30여 명의 학생은 때로는 칭찬을 들으며, 때로는 혼이 나며, 열심히 수업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짜리 수업이 끝난 다음, 김철웅 씨와 교무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박성우: 강의하시는 거, 잘 들었습니다. 백제예술대학에서는 언제부터 강의하신 거죠?
김철웅: 네, 지금 1년째 되는 거고요. 작년 9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박성우: 공연도 많으신데. 요즘 많이 바쁘시겠어요.
김철웅: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되죠. 공연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여러 개가 겹치다 보니까. 그 준비를 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박성우: 공연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김철웅: 일단 18일 출국해서 호주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문제 국제회의에서 연주하게 돼 있고요. 또 2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평화 음악회에서 ‘코리안 심포니’와 협연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4월 17일 카네기 홀에서 AWCA 입양인 학교 기금 모금 음악회를 하게 돼 있습니다.
박성우: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인데. 2001년에 탈북하셨고, 2002년 12월 한국에 오셨고. 그 후에 언젠가 언론 인터뷰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앞으로 꼭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고 싶다.’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들을 위해서, 카네기 홀은 음악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설명을 좀 부탁할게요.
김철웅: 지구 상에서 음악을 한다고 하면, 한 번쯤 카네기 홀에서 연주해 보고 싶어 할 만큼, 꿈과 선망의 무대고요.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다는 이력이 있으면, 세계 어떤 음악가들도 인정을 받게 되는 무대입니다. 물론 이 연주 홀에서 연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어떤 음악가라도 함부로 연주할 수 없는, 아무리 수억 만금을 들여도 연주할 수 없는 곳이 카네기 홀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주 홀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 자체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이 지금껏 연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에서 일반인들은 카네기 홀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요?
김철웅: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조금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게는 다 모르는 형편이고요. 카네기 홀 자체가 미국에 있으니까, 아직은 북한에 있는 음악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박성우: 그럼 평양에서 음악 공부를 하실 때, 같이 공부하시던 친구들과는 카네기 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봤다든지,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김철웅: 카네기 홀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 정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홀이 어느 정도로 유명한지는 상세히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
박성우: 카네기 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음악인들에게는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만큼 부담도 참 많이 되실 것 같아요.
김철웅: 네, 부담이 많습니다. 중요한 연주니까, 밤새워 연습하고. 자다가도 그 연주 홀을 생각하면, 가위눌린다고 그러지요? 가위도 눌리고. 너무 부담이 돼서 밤새 한잠도 못 잔 적도 있고요. 요즘에 입술도 부르트고. 여러 가지로 정말 그 부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박성우: 왜 안 그렇겠습니까. 하루에 요즘 몇 시간 정도 연습하시나요?
김철웅: 요즘은 대체로 14시간 정도 피아노를 치고 있고요. 치든 안치든, 12시간 이상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계속 제가 연주할 곡을 듣고, 치고 하느라고. 거의 온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성우: 오늘처럼 수업이 있는 날을 빼곤, 그리고 잠자고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 앞에서 연습하신다고 보면 되겠네요?
김철웅: 네, 그렇죠. 요즘엔 전력을 다해서 연습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됩니까?
김철웅: 이번에는 순 클래식으로, 브람스의 포 핸즈 곡 중에서 ‘헝가리 무곡’과 슈베르트의 ‘판타지’ 전 악장을 다 하고요.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박성우: 그 세 곡을 고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철웅: 일단 브람스의 포 핸즈 곡은, 북한 말로 피아노 연탄 곡인데. 브람스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졌고, 너무 유명해서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된 곡입니다. 반면에 슈베르트의 ‘판타지’는 여러 가지 무곡적인 경쾌함과 상반되게 아주 섬세하고, 또 아주 예민한 곡이어서, 특별히 상반된 곡으로 골랐고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곡이고, 북한에서도 많이 치는 곡입니다. 이번 곡은 특별히 제가 러시아에서 공부했었고,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를 선택해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치게 됐습니다.
박성우: 연주회 하실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치셨던 곡이 ‘아리랑 소나타’인데, 이번에는 빼시는 건가요?
김철웅: 아니 뭐, 앙코르를 하면 어차피 앙코르 1번이 ‘아리랑 소나타’일 거고요. 많은 분이 ‘아리랑 소나타’를 좋아해 주시니까, 아무래도 그 곡이 빠지면 다른 분들이 조금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연주하시는 곡들이 굉장히 길다고 들었어요. 제일 긴 곡은 몇 분 정도 됩니까?
김철웅: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제일 긴데요. 그게 46분간 연주입니다.
박성우: 46분짜리 곡을 악보를 보지 않고 치시는 건가요?
김철웅: 네, 필수적으로 다 외워야 되고요. 그 46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숨죽이고 듣는 동안 저 혼자서 그 숨죽이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연주해야 하니까,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박성우: 알았습니다. 공연장에는 굉장히 유명한 음악 평론가들도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어찌 보면, 이번 공연을 잘 끝마치면 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철웅: ‘뉴욕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평론가들이 몇 명 온다고 들었거든요. 어찌 보면 극과 극의 현실이 도래할 수 있는 게, 못하게 되면 다음번엔 아주 피아노를 다시는 못 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잘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겠죠. 어쨌든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자만 그 기회를 얻는다’고 했는데. 저도 열심히 준비하느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네, 정말 부담이 대단히 크실 것 같습니다. 공연을 하고 나면 수익금은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걸로 들었는데요. 어떻게 사용하게 됩니까?
김철웅: 네, 수익금은 AWCA 입양인 학교라는, 한국인들이 옛날에 입양된, 미국인들에게 입양된 애들을 위주로 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가 한인들이 운영하는 학교래요. 그쪽에 뜻이 있는 분들이 모금을 위해서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특별히 또 ‘뉴욕 필하모닉’ 이사이신 한성은 씨가 이런 제안을 하셔서, ‘이 수익금을 입양인 학교에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저도 뭐 좋은 일이니까. 제 연주로 그 학교의 모금이 좀 더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쾌히 수락했고요. 이 수익금 전체는 AWCA 입양인 학교 기금 모금으로 될 겁니다.
박성우: 알았습니다. 김철웅 씨는 작년에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세계 각국으로 연주 공연을 많이 다니시는데. 이번에 카네기 홀 공연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시기 전에 호주에서 공연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연인지, 잠시 설명을 부탁할게요.
김철웅: 한국에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호주 북한인권위원회 주최로 조직되는 북한인권 국제회의에 정식 초청을 받았고요. 거기서 예술 섹션, 그러니까 인권문제에 대한 문화적 접근 방법의 한 섹션으로 제가 곡해설과 연주를 겸한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이걸 통해서 음악을 통한 인권문제의 해결과 접근 방법에 대해서 제가 세계인들에게 말을 할 것이고. 그를 통한 공감대를 좀 불러일으키려고 이번에 제가 가게 됩니다.
박성우: 호주에서 하시는 행사도 굉장히 중요한 행사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올 상반기 김철웅 씨에게 제일 큰 행사는 카네기 홀 공연인 것으로 보입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아주 성공적으로 끝내게 된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탈북자가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철웅으로서 자리 매김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실 것 같습니다. 카네기 홀 공연 끝나고 나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잠시 말씀 부탁하겠습니다.
김철웅: 카네기 홀 공연이 끝난다고 해서 피아니스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게 제 운명인 것 같고요. 여전히 피아니스트로 살 것이고. 그런데 이게 좀 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니까 중요한 거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북한과 관련이 있고, 인권이 눌려 있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위로해 주고, 또 음악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고, 또 남북 간 음악적 유대, 그러니까 문화를 통한 동질성 회복에 조금이라도 이바지를 한다면, 제가 카네기 홀에 다녀오면 아무래도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으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요즘 김철웅 씨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앞으로 남은 생애 기간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참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남북 간의 문제라든지 남북 음악의 동질성,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런 일을 열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하시기 위해서라도, 이번 카네기 홀 연주는 성공적으로 잘 끝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철웅: 네, 감사합니다.
김철웅: 솔미솔파레파미~ 하나 둘 셋, 둘 둘 셋.
학생들: 솔미솔파레파미~
서울 강남에 있는 백제예술대학 8층. 한 강의실에선 음악 악보를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른바 ‘시창’ 수업이 한창입니다.
김철웅: 솔라시도라시솔~ ‘솔’이 몇 박자야?
김철웅 교수에게 30여 명의 학생은 때로는 칭찬을 들으며, 때로는 혼이 나며, 열심히 수업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짜리 수업이 끝난 다음, 김철웅 씨와 교무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박성우: 강의하시는 거, 잘 들었습니다. 백제예술대학에서는 언제부터 강의하신 거죠?
김철웅: 네, 지금 1년째 되는 거고요. 작년 9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박성우: 공연도 많으신데. 요즘 많이 바쁘시겠어요.
김철웅: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되죠. 공연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여러 개가 겹치다 보니까. 그 준비를 하는 것도 그렇고. 요즘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박성우: 공연 일정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죠.
김철웅: 일단 18일 출국해서 호주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문제 국제회의에서 연주하게 돼 있고요. 또 28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평화 음악회에서 ‘코리안 심포니’와 협연을 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4월 17일 카네기 홀에서 AWCA 입양인 학교 기금 모금 음악회를 하게 돼 있습니다.
박성우: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인데. 2001년에 탈북하셨고, 2002년 12월 한국에 오셨고. 그 후에 언젠가 언론 인터뷰를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앞으로 꼭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고 싶다.’ 북한에 계시는 청취자들을 위해서, 카네기 홀은 음악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설명을 좀 부탁할게요.
김철웅: 지구 상에서 음악을 한다고 하면, 한 번쯤 카네기 홀에서 연주해 보고 싶어 할 만큼, 꿈과 선망의 무대고요.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다는 이력이 있으면, 세계 어떤 음악가들도 인정을 받게 되는 무대입니다. 물론 이 연주 홀에서 연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어떤 음악가라도 함부로 연주할 수 없는, 아무리 수억 만금을 들여도 연주할 수 없는 곳이 카네기 홀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주 홀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 자체가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가들이 지금껏 연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에서 일반인들은 카네기 홀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나요?
김철웅: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조금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게는 다 모르는 형편이고요. 카네기 홀 자체가 미국에 있으니까, 아직은 북한에 있는 음악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박성우: 그럼 평양에서 음악 공부를 하실 때, 같이 공부하시던 친구들과는 카네기 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봤다든지, 그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김철웅: 카네기 홀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 정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홀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홀이 어느 정도로 유명한지는 상세히 모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습니다.
박성우: 카네기 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음악인들에게는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만큼 부담도 참 많이 되실 것 같아요.
김철웅: 네, 부담이 많습니다. 중요한 연주니까, 밤새워 연습하고. 자다가도 그 연주 홀을 생각하면, 가위눌린다고 그러지요? 가위도 눌리고. 너무 부담이 돼서 밤새 한잠도 못 잔 적도 있고요. 요즘에 입술도 부르트고. 여러 가지로 정말 그 부담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박성우: 왜 안 그렇겠습니까. 하루에 요즘 몇 시간 정도 연습하시나요?
김철웅: 요즘은 대체로 14시간 정도 피아노를 치고 있고요. 치든 안치든, 12시간 이상을 피아노 앞에 앉아 있습니다. 계속 제가 연주할 곡을 듣고, 치고 하느라고. 거의 온종일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성우: 오늘처럼 수업이 있는 날을 빼곤, 그리고 잠자고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피아노 앞에서 연습하신다고 보면 되겠네요?
김철웅: 네, 그렇죠. 요즘엔 전력을 다해서 연습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됩니까?
김철웅: 이번에는 순 클래식으로, 브람스의 포 핸즈 곡 중에서 ‘헝가리 무곡’과 슈베르트의 ‘판타지’ 전 악장을 다 하고요.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전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박성우: 그 세 곡을 고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김철웅: 일단 브람스의 포 핸즈 곡은, 북한 말로 피아노 연탄 곡인데. 브람스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졌고, 너무 유명해서 관현악곡으로도 편곡된 곡입니다. 반면에 슈베르트의 ‘판타지’는 여러 가지 무곡적인 경쾌함과 상반되게 아주 섬세하고, 또 아주 예민한 곡이어서, 특별히 상반된 곡으로 골랐고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곡이고, 북한에서도 많이 치는 곡입니다. 이번 곡은 특별히 제가 러시아에서 공부했었고,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를 선택해서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치게 됐습니다.
박성우: 연주회 하실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치셨던 곡이 ‘아리랑 소나타’인데, 이번에는 빼시는 건가요?
김철웅: 아니 뭐, 앙코르를 하면 어차피 앙코르 1번이 ‘아리랑 소나타’일 거고요. 많은 분이 ‘아리랑 소나타’를 좋아해 주시니까, 아무래도 그 곡이 빠지면 다른 분들이 조금 섭섭해 하실 것 같아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연주하시는 곡들이 굉장히 길다고 들었어요. 제일 긴 곡은 몇 분 정도 됩니까?
김철웅: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제일 긴데요. 그게 46분간 연주입니다.
박성우: 46분짜리 곡을 악보를 보지 않고 치시는 건가요?
김철웅: 네, 필수적으로 다 외워야 되고요. 그 46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숨죽이고 듣는 동안 저 혼자서 그 숨죽이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연주해야 하니까,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박성우: 알았습니다. 공연장에는 굉장히 유명한 음악 평론가들도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어찌 보면, 이번 공연을 잘 끝마치면 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철웅: ‘뉴욕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평론가들이 몇 명 온다고 들었거든요. 어찌 보면 극과 극의 현실이 도래할 수 있는 게, 못하게 되면 다음번엔 아주 피아노를 다시는 못 치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잘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겠죠. 어쨌든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자만 그 기회를 얻는다’고 했는데. 저도 열심히 준비하느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네, 정말 부담이 대단히 크실 것 같습니다. 공연을 하고 나면 수익금은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걸로 들었는데요. 어떻게 사용하게 됩니까?
김철웅: 네, 수익금은 AWCA 입양인 학교라는, 한국인들이 옛날에 입양된, 미국인들에게 입양된 애들을 위주로 하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가 한인들이 운영하는 학교래요. 그쪽에 뜻이 있는 분들이 모금을 위해서 상당히 노력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특별히 또 ‘뉴욕 필하모닉’ 이사이신 한성은 씨가 이런 제안을 하셔서, ‘이 수익금을 입양인 학교에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저도 뭐 좋은 일이니까. 제 연주로 그 학교의 모금이 좀 더 된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쾌히 수락했고요. 이 수익금 전체는 AWCA 입양인 학교 기금 모금으로 될 겁니다.
박성우: 알았습니다. 김철웅 씨는 작년에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세계 각국으로 연주 공연을 많이 다니시는데. 이번에 카네기 홀 공연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시기 전에 호주에서 공연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연인지, 잠시 설명을 부탁할게요.
김철웅: 한국에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호주 북한인권위원회 주최로 조직되는 북한인권 국제회의에 정식 초청을 받았고요. 거기서 예술 섹션, 그러니까 인권문제에 대한 문화적 접근 방법의 한 섹션으로 제가 곡해설과 연주를 겸한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이걸 통해서 음악을 통한 인권문제의 해결과 접근 방법에 대해서 제가 세계인들에게 말을 할 것이고. 그를 통한 공감대를 좀 불러일으키려고 이번에 제가 가게 됩니다.
박성우: 호주에서 하시는 행사도 굉장히 중요한 행사처럼 보이는데, 아무래도 올 상반기 김철웅 씨에게 제일 큰 행사는 카네기 홀 공연인 것으로 보입니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아주 성공적으로 끝내게 된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탈북자가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철웅으로서 자리 매김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실 것 같습니다. 카네기 홀 공연 끝나고 나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잠시 말씀 부탁하겠습니다.
김철웅: 카네기 홀 공연이 끝난다고 해서 피아니스트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게 제 운명인 것 같고요. 여전히 피아니스트로 살 것이고. 그런데 이게 좀 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니까 중요한 거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북한과 관련이 있고, 인권이 눌려 있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위로해 주고, 또 음악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고, 또 남북 간 음악적 유대, 그러니까 문화를 통한 동질성 회복에 조금이라도 이바지를 한다면, 제가 카네기 홀에 다녀오면 아무래도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으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요즘 김철웅 씨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앞으로 남은 생애 기간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참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남북 간의 문제라든지 남북 음악의 동질성,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런 일을 열심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하시기 위해서라도, 이번 카네기 홀 연주는 성공적으로 잘 끝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만나고 싶었습니다.’ 인터뷰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철웅: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