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수필] 추석을 맞이하며

그렉 스칼라튜∙ 루마니아 출신 언론인
2009.09.29
오는 10월 3일 남북한의 추석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저에게 아주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킵니다. 아내와 연애를 하고 처음 장인 장모님께 인사 드리러 갈 때가 바로 추석날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인사 드리는 것이라 긴장되기도 했지만, 윷놀이도 하고 추석 음식도 먹고 송편도 만들며 재미를 한껏 느꼈습니다. 당시 아내될 사람이 송편을 예쁘게 만드는 것을 보아 앞으로 2세는 예쁠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구권에 있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20년을 살다 남한으로 유학을 정할 당시 저는 지금보다 남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남북한 명절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정교회와 관련된 의미가 있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지만, 남한의 추석보다 큰 명절은 없습니다. 저도 '88 올림픽'을 통해 남한에 대해처음 알게 되었지만 유학갈 당시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남북한의 태권도와 남한의 놀라운 경제성장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 축구에 흠뻑 빠졌던 저로서는 1966년 영국 축구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국가 대표단의 우수한 경기와 평양 건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1989년 루마니아 공산 독재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남한보다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얼마전까지 만해도 남한을 ‘경제가 발전한 나라,’ ‘88 올림픽의 나라,’ ‘2002년 축구 월드컵의 나라,’ 또는 ‘마라톤의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남한은 G-20, 즉 세계에 가장 발달된 20개국에 포함된 나라와 2010년 가을 G-20 정상회담 개최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남한은 최근에 개발 도상국에 지원을 많이 해주고 유엔 평화 유지 작전에 많이 참여하여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음식에서 음악, 영화에 이르기까지 남한의 다양한 문화가 서양에 널리 알려졌지만, 얼마전까지도 ‘남한’이라고 할 때 서양 사람들은 주로 남한의 대기업들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과거 남한에 가기 전에는 남한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많이 몰랐지만, 좀더 알아 갈수록 남한의 가치관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한만의 독특한 가치관 가운데 가족이란 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대부분 나라들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 제도가 등장했지만, 남한의 경우는 다른 것 같습니다.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 100년 가까이 걸렸던 변화가 남한에서는 한 세대 안에 일어났지만 그래도 남한에서는 아직까지도 전통과 진보가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 나타나는 한민족의 대이동만 보더라도 이런 명절은 수 많은 남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고향과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찾으려는 의미있은 전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전통, 조상, 고향과 부모님을 ‘사회의 기둥’으로 보며 저의 조국인 루마니아도 다른 유럽나라들과 비교해 좀더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몇백년전까지 거슬러오른 조상을 모시지는 않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사고 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5천년의 단일 민족의 역사에 비해, 지난 61년의 분단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을 지내는 남한 사람들을 보면서 남북한의 이산 가족을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산 가족 상봉이 중단되었다 요즘 다시 이뤄지고 있는데, 남북 이산 가족의 만남은 언젠가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모든 가족과 친척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하는 첫 걸음이고, 또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해마다, 추석이 오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수백만대의 자동차들 때문에 교통이 많이 밀리지만 무려 10여 시간을 운전해서라도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언젠가는 추석날 서울에서 부산보다는 서울에서 평양으로 가는 고향길이 더 짧고 더 빠른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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