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10대 뉴스] ⑩북한 핵문제의 진전과 전망

2008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에서는 2008년을 되돌아보는 ‘RFA 10대 뉴스’를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순서로 올해 있었던 북한 핵문제의 진전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짚어봅니다.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08.12.29
올 한 해 미국과 북한 간 최대 현안이라면 단연 핵문제를 꼽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우선 올 한 해 벌어진 북한 핵과 관련한 주요 사건부터 짚어볼까요?

그렇습니다. 사실 북한 핵문제는 지난해 말까지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하기로 한 시한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이미 올 연초부터 파란을 예고했는데요. 결국은 지난 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양자협상을 거쳐 지난 6월 하순에야 북한이 비로서 핵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곧바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발표했고, 지난 10월 마침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습니다.

그러나 한때 진척을 보이던 핵문제는 현재 검증이란 벽에 부닥쳐 교착 국면에 빠진 상태입니다. 북한의 핵신고서 내용을 검증하기 위한 의정서를 작성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올해 들어 마지막으로 지난 12월8일부터 11일까지 베이징에서 집중적으로 협상을 벌였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내년 1월 들어서게 되면 부시 행정부가 지난 8년간 펼쳐온 대북 정책에 대해 면밀한 재검토 작업이 이뤄질 것이 확실하고, 그런 뒤에야 새 대북 정책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서 6자회담도 당분간 열리기 힘들 전망입니다.

그렇군요. 북한이 핵신고서를 제출하긴 했는데, 어떤 내용을 신고서에 담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신경전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미국은 내심 북한의 핵신고서를 토대로 그동안 비밀에 가려져왔던 농축 우라늄 활동과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이런 목표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습니다. 특히 핵신고를 어떤 식으로 하느냐 하는 형식 문제를 놓고서도 미국과 북한은 팽팽히 맞섰는데요, 결국은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추출한 플루토늄 대목만 핵신고서에 명기하고 미국이 내심 파헤치려던 우라늄 농축활동과 시리아에 대한 핵확산 활동 문제에 대해선 미국이 우려 사항을 명기하되 북한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간접 신고’ 방식으로 처리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습니다.

이런 합의는 미국 측 협상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힐 차관보는 싱가포르 양자회동이 끝난 뒤 그 결과를 상원과 하원의 외교위원회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비공개 설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 타협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활동과 대시리아 핵확산 의혹 대목은 현 단계에서 묻어두는 식의 양보를 한 셈인데요, 이를 두고 미국의회와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비판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든 북한과 타협해 절충안을 마련함으로써 외교적 유산을 남기려 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핵신고서 제출 문제가 일단락됐는데, 현재 북한 핵문제는 어느 단계까지 해결이 됐고, 가장 큰 쟁점은 무엇입니까?

네, 북한 핵문제 해결의 진전 상황을 살펴보면, 현재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신고를 한 대신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100만톤 규모의 중유와 중유 상당의 에너지 지원을 하는 비핵화 2단계인데요, 이게 지금 마무리가 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특히 2단계를 마무리하는 데 핵심적인 쟁점이 바로 북한의 검증 의정서를 받아내는 일인데요, 여기서 모든 당사국들이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검증의 쟁점은 소위 ‘시료 채취’란 항목인데요, 쉽게 말씀드려 영변 핵시설 내 원자로 노심 혹은 핵재처리 시설 내부에 과학자들이 들어가 측정 장갑을 끼고 플루토늄 입자를 추출해 보거나 혹은 핵시설 주변의 흙과 물을 채취해서 북한이 과연 얼마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했는지, 자기들이 신고한 양과는 일치한지 여부를 가리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과 관련해 북한은 시료 채취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나오고 있는 겁니다.

북한이 시료 채취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시료채취는 ‘북한의 안보와 주권의 문제로서 현 단계에서는 논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 미북 핵협상에 정통한 미국 외교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은 시료 채취에 대해서도 조건부이긴 하지만 지난 여름까지도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가 무슨 이유인지 핵검증 문제가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미국 측은 궁여지책으로 시료 채취란 용어에 갖는 북한의 거부감을 의식해서 덜 자극적인 용어를 택하되 내용적으론 시료 채취를 담보하는 쪽으로 북한과 협상을 벌였지만 이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베이징 6자회담이 열리기 직전 미국의 저명한 핵과학자로 지난 1992년 영변 핵시설을 방문하기도 했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국제과학안보연구소 소장은 ‘북한에 시료채취란 말은 정치적인 함의가 무척 강하다’고 말하고 ‘시료 채취란 말 대신 과학적인 정밀감식 혹은 흑연파편 채취와 같은 다른 말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반면 미국 외교협회 게리 새모어 부회장은 ‘설령 시료 채취란 말 대신 다른 용어를 택해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새모어 부회장은 북한이 시료 채취의 이유로 ‘주권과 안보 문제’를 거론하곤 있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북한은 시료 채취를 허용할 경우 선례를 남긴다는 점 말고도 이미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이 부정확한 것으로 들통날 수도 있고, 또 시료채취를 허용하는 순간부터 몇 달, 아니 몇 년간 의혹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시료채취를 포함하지 않는 검증 절차를 미국이 동의해 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새모어 부회장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 핵문제가 내년 1월 19일로 끝나는 부시 행정부의 임기 내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차기 오바마 행정부로 넘어가게 됐는데, 기존의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겠죠?

앞서 말씀드렸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 공식 출범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그때까진 기존의 6자회담, 나아가 검증 문제를 둘러싼 핵협상도 공백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 때처럼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핵협상 대표로 나서게 하는 대신에 북핵 문제를 전담할 고위 특사직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에 관한 오바마 새 행정부의 정책에는 주무부처인 국무부는 물론 국가안보회의, 국방부, 에너지부 등 관련 부처가 모두 관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오바마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윤곽이 얼마나 빨리 드러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북한 핵 관련 업무를 맡게 될 고위 인사가 누구이고, 또 얼마나 빨리 상원 인준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요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국무장관에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공식 지명된 상태이고, 동아태 담당 차관보직에는 커트 켐벨 전 국방부 부차관보, 그리고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직에는 제프 베이더 전 대사가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전담할 인물로 고위 특사직을 거론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네, 이 문제와 관련해 제가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한반도 외교자문진 중 한 사람과 최근 통화를 했습니다. 전직 관리를 지낸 이 분은 ‘현재 시중에 나돌고 있는 대북 고위특사직 소문이 맞다고 보면 된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특사직을 국무부 동아태국에 소속시킬 경우 관료주의 장벽에 부닥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백악관 직속의 국가안보회의 같은 곳에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이 분은 또 대부분 자리를 그만두는 차관보급 이상의 고위직과 달리 ‘중하위 관리들은 행정부가 바뀌어도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는 만큼 북한 핵문제에 관한 접근방식도 기존의 부시 행정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특사직을 국무부 동아태국 소속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강조했습니다. 이 분은 특히 현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인 힐 차관보가 지난 몇 년간 북한 핵문제에 매달리는 바람에 원래의 고유 업무, 즉 동아시아 태평양국내 현안을 소홀하게 다뤄왔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앞으론 고위급 특사가 북한 핵문제를 전담하고,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쪽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혹시 대북 고위 특사직을 누가 맡을지, 또 직급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된 사실이 있습니까?

아직은 소문만 무성할 따름입니다. 앞서 언급한 전직 관리는 특사직이 고위급이어야 하겠지만 반드지 장관급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최소 대사급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국무장관이던 국가안보보좌관이든 아니면 대통령이든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까지 가장 유력하게 거론돼온 사람으론 웬디 셔먼 전 대샤를 꼽을 수 있는데요,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셔먼 전 대사는 특사지 대신 차관급 고위직인 국무장관 자문관(Counselor)에 기용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신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급부상하고 있는데요, 워싱턴의 정통한 외교 전문가는 힐 차관보가 당초 은퇴할 것이란 소문과 달리 국무부 잔류를 희망하고 있고, 그 경우 고위 특사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대북 특사직이 신설될 경우 현재 검증 문제로 교착 상황을 빚고 있는 북한 핵협상도 잘 풀릴 것 같습니까?

글쎄요. 미국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특사가 협상의 전권을 갖고 북한 핵문제를 다룰 경우 협상에 속도감을 낼 수는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북한의 태도를 꼽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핵신고에 근거해 국제적 기준의 검증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있지 않는 한 특사직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미국 외교협회 새모어 부회장은 장차 어느 시점에 가서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양보를 얻어낼 경우 시료 채취를 포함한 미국의 검증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간 미국에 대해 적대시 정책의 포기를 요구하면서 구체적으로 경수로 제공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경수로 제공에 관한 논의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양측은 절충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또 북한 지도부의 최고 수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미국 최고위급 특사를 맞이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는지 여부도 변수입니다. 오바마 진영의 한반도 외교자문진 중 한사람인 조너선 폴락 미국 해군대학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북한 체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수행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미국이 북한과 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펼쳐나가는 데 진짜 어려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그러나 폴락 교수는 ‘누군가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최고 지도자와 상대할 수 없다면 북한을 상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보기엔 아직은 김 위원장이 북한 최고 지도자’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전문가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 북한과의 직접 외교가 더욱 왕성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핵협상을 둘러싼 미국, 북한 양국의 외교전은 부시 행정부 때에 비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의 소위 ‘벼랑 끝’ 협상 전술도 계속 펼쳐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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