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기계농 vs. 모내기 전투…너무 다른 남북 농촌

2주 전쯤 저는 버스를 타고 경기도 안중에 있는 큰 딸아이 집에 갔습니다. 가는 도중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저는 창밖으로 녹색으로 변해가는 넓은 벌판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고향 생각을 했습니다.
김춘애
2008.05.26
‘벌써 모내기철이네...내 고향에도 한창 모내기 전투를 하고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넓은 벌판에 한 아저씨가 모 기계를 타고 한 바퀴 빙빙 돌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벌판이 파랗게 변해가는 논벌을 보니 지난 옛 시절이 영화의 장면처럼 떠올랐습니다.

북한에는 지도 농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사는 농민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과 사무원 노동자 대학생들과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학생들의 지원 노력이 없이는 농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벌써 지금쯤이면 ‘모두 다 모내기 전투에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체 인민이 농촌 전투에 총돌격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도 눈에 훤하게 떠올랐습니다. 인민학교 학생들이 제 키보다 더 큰 물 초롱과 고사리 같은 손에 호미를 들고 넓은 벌판에서 지도농민과 담임선생님의 감시와 호령소리를 들으며 하루 과제 수행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는 모습도.. 옥수수 영양 단지를 잘못 옮겨 저녁이면 학급 모임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남모르게 굴뚝 뒤에 숨어 눈물을 흘리고 있을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삼삼했습니다.

매일 교대로 아이들을 맡기고 인민반 주민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강남군으로 모내기와 김 매기 동원을 다니느라, 뜨거운 햇빛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저녁에 집에 오면 우리 아이들조차 낯설어 했습니다.

식량이 없어 도시락을 준비 못한 주민들을 위해 마을에 남은 사람들로 대신 도시락을 모아 주었던 일들과 점심시간과 휴식 시간이면 짬짬이 논두렁과 개울에서 미나리와 물쑥을 뜯었고, 작은 물건들을 가지고 마늘과 채소를 바꾸었던 일들 하며 가지가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라 밥을 먹는 사람들은 무조건 100% 참가해야 합니다. 군인들도 1년에 농촌 동원에 참여해야 되는 공수가 있기 때문에 예외가 없습니다. 지방에는 인민학교 학생들도 공부를 죽이고 옥수수 영양 단지 심기와 물주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제 고향인 평양시에서는 일부 학생들은 4월15일 명절이 지나서는 손에 책을 쥘 새가 없답니다. 집단 체조훈련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농촌동원에 참여합니다.

학생들이 학과 학습이 기본이라고 하지만, 1년 중 겨울에만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지금 한창 모내기철이라 논벌에는 성인들과 대학생들과 군인들로 붐비고 밭머리에는 어린 학생들로 붐비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의 농사철에는 농민들보다 지원 노력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 남한의 농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하고 있습니다. 모내기와 파종으로부터 시작해 가을걷이와 탈곡까지도 모두 기계가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모내기철이라고 하지만, 논벼모를 실어 나르는 작은 뜨락또르와 쉴 새 없이 돌고 돌며 모를 꽂고 있는 모내기 기계 한댁 전부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너무도 다른 현실을 보고 저는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해 저는 딸의 집으로 갔습니다. 딸이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남새와 곡식을 심었다고 하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밭으로 갔습니다. 저는 거기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고추와 찰옥수수를 심어 놓고 고랑마다 비닐 방 막을 덮어 놓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곡식이 어떻게 숨을 쉬는 가고 했더니 뾰족뾰족 올라오는 찰옥수수 포기마다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북한처럼 김을 매야 하는 줄로 알았고, 중국처럼 풀을 죽이는 약을 뿌려야 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을 매주지 않고 시약도 뿌리지 않아도 풀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농사짓는 방법도 남과 북이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는 밭에서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었습니다. 서해 바다 바람과 더불어 빨간 장미꽃의 향기를 맡으며 벌판에서 먹는 자장면 맛도 참 별미였습니다. 지금껏 어린 철부지 딸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한 가정의 주부로서 강한 엄마로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저는 오늘도 뜨거운 햇볕 아래 허리를 구부린 채 구슬땀을 흘리며 모를 꽂고 있을 내 고향의 주민들을 그려 보며 하루 빨리 그들도 기계로 농사짓게 되는 그날이 왔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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