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3.1절 90주년 맞아 다양한 행사 열려
서울-이수경 xallsl@rfa.org
2009.02.27
2009.02.27
RFA PHOTO-이수경
이날 오전 천안에 위치한 독립 기념관에서는
개관 이후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3.1절 기념행사가 열렸고,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외쳤던
서울 종로구의 탑골공원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의 탄압 장소였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도 이날 3.1절을 기념해 시민들의 체험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은 옥사를 둘러보고 독립 만세 운동을 재현하면서 당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 투사들의 뜻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 시간에는 3.1 절 기념 행사가 열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아가 봅니다.
이날 3.1절을 기념해 시민들의 체험 행사가 마련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찼습니다. 당시 복장을 차려입은 학생들과 독립투사로 분장한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서대문 형무소는 90년 만에 그날의 함성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 대한 독립 만세 !”
민족 대표를 대신해 어린이와 시민들이 다시 낭독하는 독립 선언문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순국 선열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3.1절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아빠의 등에 올라탄 아이도,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도 태극기를 높게 흔들며 나라의 소중함을 배워봅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이날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대학생 이지연 씹니다.
이지연: 중학교 때도 왔고 고등학교 때도 방문했습니다. 저는 항상 존경하는 위인이 독립운동가 이봉창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오면 뜻깊고 좋습니다. 특히 3.1절 날 오니까 행사도 하고 재밌습니다.
30년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서 간수로 근무한 최병선(82) 씨도 이날 손녀과 함께 독립투사들의 옥중 생활을 전시한 옥사를 둘러보며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다 이곳에서 순국한 애국 선열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최병선: 아이들이 이렇게 바쁜 시간에도 여기 와서 견학을 하고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떻게 했다는 역사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항일 저항사를 시대적 사건별로 전시해 놓은 ‘민족 저항실’ 한쪽에는 통역 안내원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본어 통역 안내원으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황현숙 씨는 이곳을 찾는 전체 관람객의 10%가 일본인 관광객이라고 말하고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알려 줄 수 있어 보람있다고 말했습니다.
황현숙: 처음 오시는 일본분들은 충격도 많이 받으시고 진짜냐고 물어보세요. 일본에서는 역사 교육, 특히 한국 역사는 공부를 안합니다. 제가 알려드리면 미안해 하고 숙연해 하는 자세로 받아 드립니다.
일제에 의해 지난 1908년 지어진 서대문 형무소는 악명 높은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모진 옥고를 치뤘고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겼던, 우리 민족 독립의 현장입니다.
특히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평화적인 3.1운동은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명한 대표적인 민족 투쟁으로 3.1 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대표 33인과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측은 3.1절을 맞아 일제의 온갖 고문과 억압에도 굽히지 않았던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과 아픔을 후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김태동 대리입니다.
김태동: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제가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하고 탄압했던 장소였습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 역사를 잊지 말고 오늘에 다시 새기고자 오늘 3.1절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행사로 가득찼던 90주년 3.1절 날.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서대문 형무소는 이날만큼은 시민들의 태극기와 애국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하루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의 탄압 장소였던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도 이날 3.1절을 기념해 시민들의 체험 행사가 마련됐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은 옥사를 둘러보고 독립 만세 운동을 재현하면서 당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에 저항했던 독립 투사들의 뜻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이 시간에는 3.1 절 기념 행사가 열린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아가 봅니다.
이날 3.1절을 기념해 시민들의 체험 행사가 마련된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찼습니다. 당시 복장을 차려입은 학생들과 독립투사로 분장한 자원 봉사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이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자 서대문 형무소는 90년 만에 그날의 함성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 대한 독립 만세 !”
민족 대표를 대신해 어린이와 시민들이 다시 낭독하는 독립 선언문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순국 선열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3.1절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아빠의 등에 올라탄 아이도,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도 태극기를 높게 흔들며 나라의 소중함을 배워봅니다. 남자 친구와 함께 이날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대학생 이지연 씹니다.
이지연: 중학교 때도 왔고 고등학교 때도 방문했습니다. 저는 항상 존경하는 위인이 독립운동가 이봉창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오면 뜻깊고 좋습니다. 특히 3.1절 날 오니까 행사도 하고 재밌습니다.
30년 동안 서대문 형무소에서 간수로 근무한 최병선(82) 씨도 이날 손녀과 함께 독립투사들의 옥중 생활을 전시한 옥사를 둘러보며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다 이곳에서 순국한 애국 선열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최병선: 아이들이 이렇게 바쁜 시간에도 여기 와서 견학을 하고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떻게 했다는 역사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최병선: 아이들이 이렇게 바쁜 시간에도 여기 와서 견학을 하고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리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어떻게 했다는 역사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항일 저항사를 시대적 사건별로 전시해 놓은 ‘민족 저항실’ 한쪽에는 통역 안내원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본어 통역 안내원으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황현숙 씨는 이곳을 찾는 전체 관람객의 10%가 일본인 관광객이라고 말하고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알려 줄 수 있어 보람있다고 말했습니다.
황현숙: 처음 오시는 일본분들은 충격도 많이 받으시고 진짜냐고 물어보세요. 일본에서는 역사 교육, 특히 한국 역사는 공부를 안합니다. 제가 알려드리면 미안해 하고 숙연해 하는 자세로 받아 드립니다.
일제에 의해 지난 1908년 지어진 서대문 형무소는 악명 높은 일제의 대표적인 탄압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모진 옥고를 치뤘고 마침내 목숨까지 빼앗겼던, 우리 민족 독립의 현장입니다.
특히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평화적인 3.1운동은 민족의 독립 의지를 표명한 대표적인 민족 투쟁으로 3.1 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대표 33인과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측은 3.1절을 맞아 일제의 온갖 고문과 억압에도 굽히지 않았던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과 아픔을 후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김태동 대리입니다.
김태동: 서대문 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제가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하고 탄압했던 장소였습니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 역사를 잊지 말고 오늘에 다시 새기고자 오늘 3.1절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행사로 가득찼던 90주년 3.1절 날. 민족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서대문 형무소는 이날만큼은 시민들의 태극기와 애국의 함성으로 가득했던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