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크로싱’ 실존 인물 유상준 씨 “숨진 아들 생각에 아직 영화 못 봐”

비극적인 탈북자들의 현실을 그린 영화 ‘크로싱’이 지난해 남한에서 인기리에 상영돼 탈북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서울-이수경 xallsl@rfa.org
200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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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의 실존 인물인 탈북자 유상준 씨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크로싱’의 실존 인물인 탈북자 유상준 씨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RFA PHOTO-이수경
특히 영화 ‘크로싱’ 은 실제 북한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것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로싱’의 실존 인물인 탈북자 유상준 씨는 탈북 과정에서 가슴에 묻은 아들 생각에 이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서울 통신, 오늘은 유상준 씨를 만났습니다.

2001년 7월 6일, 탈북자 유상준 씨는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한국에 입국한 유상준 씨를 찾아 몽골 국경을 넘던 12살 난 아들 철민이가 굶주림과 탈진으로 몽골 사막에서 숨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들 철민이는 북한 땅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아내와 차남을 잃고 남은 유일한 혈육이었기에 유상준 씨의 슬픔은 더 컸습니다.

그 후 8년여 세월이 지난 지금, 유상준 씨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2일 만난 그는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크로싱’은 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저도 사실 그런 영화 만들었다니까 좋게 생각했습니다. 감독이 탈북자에 대한 무관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음이 아파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될 수 있으면 기억 속에서 잊고 싶고. 그것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일종의 고통이니까 보지 않았습 니다.”

유상준 씨는 아들을 잃은 후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까지 보였습니다. 살아가야 할 희망이 없어 아무도 만나지 않고 몇 달을 집안에만 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새해와 같은 명절이 되면 아들 생각이 간절하다고 말합니다.

“특히 명절 때가 제일 생각이 나죠. 다른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는 즐거운 명절이지만 저에게는 슬프고 고통입니다. 우리 말에 자식은 가슴에 묻고 부모는 땅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자식이 비참하게 되어서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원망스럽습니다.”

유상준 씨가 아들을 잃은 정신적 후유증을 조금씩 극복한 것은 지난 2003년, 중국으로 건너가 탈북자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입니다. 그는 자신과 아들 철민이와 같은 희생자가 다시 생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중국 내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탈북자를 돕는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식을 데려오기를 정말 바랬었고 이 놈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에 오신 분들이 헤어진 부모 자식을 기다리는 것을 보고 그런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국에서 살아오는 과정에서 한국에 가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에 그들을 돕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유상준 씨는 중국에서 탈북자을 돕는 활동을 하다 지난 2007년,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네이멍구 자치주 감옥에서 4개월 동안을 지내면서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도 유씨를 견디게 해 준 것은 중국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수많은 북한 동포들의 얼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도와줬습니다. 제가 직접 탈출은 못 시키고, 경비도 많이 드니까 요. 그 경비를 부담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도, 처음으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 2명을 구출했어요. 그 때부터 산 속에 숨어 다니는 사람, 매를 맞는 사람, 그들의 소원이 모두 한국에 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한국에 가는 것도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한다. 그 길은 죽지 않으면 사는 길이다. 그래도 죽어도 한국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가는 것은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탈출 길을 조직했습니다.”

유상준 씨가 지금까지 중국에서 도와 준 탈북자의 수는 약 300여명. 유상준 씨는 수 년 동안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지원하면서 느낀 것은 북한의 근본적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중국으로 국경을 넘는 탈북자의 행렬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김정일 정권은 인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백성들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백성들의 생존을 외면하고 정권 강화와 독재 유지만 하니까 탈북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회유본능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도강자, 조국을 버린자, 이렇게 매도해 버리니까 갈 수가 없죠.”

유상준 씨는 탈북자들을 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중국에서 강제 추방된 이후 이제 중국에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씨는 밝혔습니다. 유상준 씨에게 중국 내 탈북자들은 이제 삶의 목표가 됐기 때문입니다.

“제 꿈이 이뤄지고 생이 다 할 때까지 계속 할 것입니다. 저의 꿈은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서 이리저리 숨어서 도움을 바라는 그들을 안아주고 그들이 한국에 올 수 있다면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최종 목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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