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석방된 후 작업과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진작가 석재현

200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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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1월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보트 탈출을 동행취재 하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중국 감옥에서 1년 2개월 보냈던 사진작가 석재현 씨는 현재 남한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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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석재현씨 - PHOTO by 석재현

석재현 씨는 중국 감옥에서 보냈던 악몽 같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중국으로 돌아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지도 1년 반이 넘은 현재, 석재현 씨는 경상북도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방송국 영상 촬영 다큐멘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종종 자신의 구명을 위해 애써준 사람들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석재현: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기 때문에 최근에도 다른 자리에 가면, 그 때 염려 많이 하셨다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감사의 뜻을 다 전하지도 못하고 인사도 하면서, 감사의 뜻은 얘기는 합니다.

석재현 씨는 그러나, 탈북자와 관련한 대외활동은 자제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석재현: 대외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이전에 알았던 사람들과 관계를 다지는 정도. 제 스스로 크게 당장 활동을 해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어. 원래 활동가라기보다는 작업을 통해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이니까 그 쪽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 작업과, 강의활동에 바쁜 석 씨지만, 종종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 7월에는, 자신이 가르치는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학생들을 이끌고, 경상북도 울진군으로 가 영정사진 찍어주기 봉사를 했습니다. 그와 학생들은 울진군의 조그만 농촌마을에서 5박6일을 머물며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진을 정성껏 찍었습니다.

석재현: 간간히 그런 사진작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필요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하던 일. 이번 건은 울진군이랑 이야기가 되어서 이 일은 다른 분들도 항상 해 오셨던 일인데, 단위가 큰 샘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한 1,500분 가까이 작업.

중국에서의 악몽 같던 1년 2개월의 생활, 그러나 석재현 씨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사진작가협회로부터 핑야오 사진축제에 오라는 초대를 받고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 측에,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지 여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석재현: 사실 제가 공식 비자신청은 그쪽기관에서 부담스러워 해서 북경에 계시는 대사님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해서, 이후 총영사님이 제게 직접 전화를 주시고, 또 제가 들은 바로는 건의나 요청은 했답니다.

비자신청을 하는 것에 대해,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지해서. 그러나 그 쪽에서 너무 이르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말씀을 총영사님께서 해 주셔서, 공식 적으로 비자 서류를 접수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석재현 씨는 그러나 개인적으로 중국을 다시 방문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감옥에서 겪었던 일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석재현: 같이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이 다 사진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라서, 다큐멘타리 작업과 관련해 저희들이 보통 사람을 촬영하는데,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다큐멘타리의 기본적인 의식에 대해 궁금해 하고. (중국생활에 대해서는) 일부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외국의 교도소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던 분들도 있고. 그 안에서 조그마한 사회조직이 형성되면서 어떤 삶들이 있었는지, 그 안에서 보고 느낀 바들을 궁금해 하고, 제가 얘기를 하고 그래요.

개인적으로 중국에서 있었던 생활들.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다행스럽게도 크게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있다. 거리낌이 있다면 지금 중국을 가고자 하지 않겠죠.

석 씨는 또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 전하는 일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석재현: 독립된 학문을 하는 부분이 아닌 사회구조 속에서 제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고, 제가 꼭 이야기를 보여주고 전해야 하는 대상들, 그 중에 탈북자 분들은 지금의 정치 체제가 계속 가는 이상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석재현 씨는 2003년 1월, 한 탈북 단체로부터 중국 산등성 옌타이항에서 수십 명의 탈북자들이 보트를 타고 탈출할 예정이나 취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탈북자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즉 기록영화를 기획하고 있던 석 씨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1월 18일, 탈북자 10여명과 함께 다롄에 도착한 석 씨는, 옌타이항에 정박해 있는 대형 보트에 올라, 이곳에서 합류하기로 한 다른 탈북자들을 기다렸지만 시간이 한 참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 때 중국 공안이 배 앞에 와 있다는 전화를 받고, 갑판으로 나가자, 100여명의 공안들이 석씨와 일행을 에워쌌습니다.

석재현 씨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2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국제적인 구명운동에 힘입어 14개월만인 2004년 3월 남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 강혜원 씨는 석씨와 잘 아는 외국인 150명과 함께 레졸루션 217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대구와 서울 등에서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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