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인도적 지원의 전제조건

송영대∙ 평화문제연구소 상임고문
2009.10.21
북한은 지난 16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남측에 인도적 지원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북한은 지원을 원하는 구체적 품목이나 양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주로 쌀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같은 북측요청에 대해 남한 측은 11월과 내년 설에 이산가족상봉을 실시한다는 전제 아래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쌀을 포함한 필요 물자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이에 맞는 몇 가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첫째, 대남 위협과 도발을 중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난 12일 남측이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과 적십자 실무접촉을 제안했던 날에도 동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 5발을 발사했습니다. KN-02미사일로 불리는 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60km로서 정확도가 뛰어나 남한의 평택, 오산 미군 기지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무기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북한 해군은 남한 함정들이 어선 단속을 구실로 10차례에 걸쳐 자기 측 영해에 침입했다고 억지 주장을 했습니다. 특히 북한 측은 서해상의 ‘제3의 충돌’까지 거론하면서 “경고 뒤에는 행동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남조선 군당국은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한편에서는 대화의 손을 내밀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무력 시위와 협박을 하는 양면전술을 피는 것은 대남협상의 입지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둘째, 북한이 남한으로부터 쌀 지원을 받으려면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으로부터 받은 쌀을 굶주리는 주민들에게는 배포하지 않고 주로 군부대에 보낸 사실이 여러 곳에서 포착되었습니다. 남한 쌀이 북한 주요 항구에서 북한 군 트럭에 바로 실려 나가거나 또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쌀 포대들이 휴전선 북한 군부대 트럭에서 하역되는 사진들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한 적십자 요원들이 지원한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배급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은 필요한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입니다.

셋째, 북한은 지원받고자 하는 쌀 규모에 관해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적정 양을 남측에 요청해야 합니다. 과거 남한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매년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 정도를 북한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규모는 적십자의 인도주의 차원을 벗어난 정부 차원의 정치적 지원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제 구호기구들이 재난지역에 보내는 식량규모를 보면 피해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5만 톤 정도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번에 이루어질 대북 쌀 지원도 이러한 국제적 관례가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와 함께 남북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에 북한이 적극 협력함으로써 인도주의 사업이 한반도에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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