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탈북자 돕다 옥살이 중인 최영훈씨 부인, 남한정부 관심 촉구


2006.06.01

중국에서 탈북자를 탈출시키려다 체포돼 3년 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남한사업가 최영훈씨의 부인이 남편의 석방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봉순씨는 1일 남한정부가 최 씨의 조기 석방을 위해 중국당국에 선처를 요구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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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씨와 가족들 - PHOTO courtesy of 최영훈씨 가족 (cafe.daum.net/cyh486)

김 씨의 남편 최영훈씨는 본래 지난 1998년부터 중국 옌벤 등지에서 중장비 임대사업을 하던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다가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씨는 지난 2003년 1월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서 보트를 이용해 탈북자 80여명의 탈출을 도우려다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산둥성내 교도소에서 3년 5개월째 수감 중입니다.

김 씨는 최근 시어머니와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떠나기 전, 몇날 며칠을 가슴 설레며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으로 거듭 되뇌는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고 김씨는 1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통화에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김봉순: 만난 것은 한 30분이예요. 저희가 (중국에 가려면) 한 두 달 정도 고민 고민 끝에 어렵게, 어렵게 해서 가잖아요. 그렇게 가서 만난 것은 30분인데, 그 30분 기간에도 옆에 교도관들이 있어요. 또 통역이 있어서 중국어로 우리가 말을 하면 통역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저희끼리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별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주고받고 한 이야기를 (사실과는) 다르게 적지 않았나, 지금에 와서 그런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서로 굉장히 말도 아끼게 되고, 또 눈치도 보게 되고 그래요. 가까이서 둘이 조용하게 이야기하면 교도관들이 떨어져 앉으라고 하구요. 그런 분위기에서 면회를 하니까 자유로운 면회라고는 볼 수 없죠.

몇 달 만에 만난 남편의 모습은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가슴이 미어져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렸었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김봉순: 원래 지병 (고혈압)이 있어서 중국측에 계속 요구를 했었어요. 원래 먹던 약이라도 먹게 해달라구요. 그래서 체포된 지 일 년 있다가 약이 들어가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약을 먹고 있긴 한데, 그래도 감옥환경이 워낙 열악하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보니까, 체중도 많이 줄어있는 것 같고, 힘들어하죠. 그렇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해요. 애들 아빠가 그렇게 붙잡히고 나서 어머니가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쓰러지셔서 심장수술도 받으시고 거의 병원생활 하시다가 그래도 얼굴 한 번 보시겠다고 이번에 가셨었거든요. 그런데 나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는 도저히 못가겠다’고, ‘(아들 얼굴) 못 보겠다’고 막 그러시더라구요.

김 씨는 남편이 체포되고 나서 한동안은 언론과 남한의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관심을 보여주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남한정부에 대해 많이 섭섭하다며,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남편의 석방을 위해 힘써 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김봉순: 처음에 우리 아빠가 잡혔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제가 알기로 한 8명에서 9명 정도가 그 건으로 해서 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거의 모두가 형기 반 정도 살다가 다 나오고, 또 어쨌든 (남한의 사진기자인) 석재현씨도 2년 선고를 받고 일 년 만에 풀려났어요. 저희는 5년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한 2년 반이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지금 3년도 훨씬 지났거든요. 왜 우리는 그런 적용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담당 영사님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정부에서 움직여주지를 않는데요.

( 기자 : 중국정부에서요?) 아니 우리나라 정부에서 중국정부에다 직접 요구를 해야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주질 않는데요. 그러니까 나라에서 너무 인간차별을 하는 것 같아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고, 남편도 그래요. 가족 입장에서 굉장히 속이 상하구요.

남편이 갑자기 수감되는 통에, 생활고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김씨. 그러나 김 씨는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다 손을 다친 상태에서 남편을 면회해 걱정만 끼쳤다고 오히려 남편에게 못다한 말을 전했습니다.

김봉순: 애들 아빠, 그때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말을 많이 못 나누고 와서 너무나 아쉬웠었어요. 그래도 그 안에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위로하고, 애들 걱정을 많이 했었죠. 내 손을 보고 당신이 눈물을 흘리던 게, 그런 (손의 상처를) 것을 보여주고 온 게 굉장히 마음이 아팠었어요. (울먹이며) 마음 아파하지 말고.

지금은 또 우리가 꿋꿋하게 잘 살고 있고, 내 손도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어머니도 그때 굉장히 힘들어 하셨는데 지금 다시 건강해지셨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많이 성경 책 읽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금방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안에서 식사 잘 하고, 약도 잘 먹고 금방 풀려나왔으면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편, 최 씨의 가족을 후원하고 있는 일본의 민간단체 북조선 난민구원기금은 최 씨의 석방을 위해 최근 최씨가 수감돼 있는 산둥성 교도소에 편지보내기 운동 등 국제적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워싱턴-장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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