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술 빼는 날’ 목욕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북한은 대부분 비포장도로로 하루 종일 배낭을 메고 장사하고 집에 오면 몸이 땀으로 끈적거려요. 여름철이면 동네 통하는 아줌마들끼리, 수건 하나 들고 인근 강으로 목욕하러 갑니다. 혼자 가면 무섭거든요. 어두운 밤,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나무가 있는 으슥한 장소를 선택해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공짜 목욕을 하는 거죠. (웃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속옷을 입고 집으로 냅다 뛰어갔던 추억이 잊혀지지 않아요. 남한은 환경오염 때문에 강에서 목욕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냅니다. 북한은 강에서 세차도 하는데 말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만 북한은 목욕과 관련한 추억만큼은 많네요.

이해연 : 국경 지역에는 강 옆에 국경경비대 초소가 있고 군인들이 밤이면 이동 순찰을 합니다. 그때마다 강에서 몰래 목욕하던 사람들이 인기척을 내지 않고 숨을 죽인 채 주변을 살피곤 했어요. 저는 그 시절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어요. 굳이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웃음)

박소연 : 남한은 굳이 숨어서 목욕할 필요가 없죠. 집집마다 화장실이 있고 샤워기, 욕조도 있습니다. 정착 초기에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하얀 거품이 가득한 욕조에서 매일 목욕하고 와인을 마시며 살 줄 알았어요. 그것도 처음에 서너 번 정도 하다가 안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욕조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청소하기가 힘듭니다! 요즘은 운동하는 아들이 퇴근하면서 욕조에 더운물을 채워달라고 전화로 부탁해요. 해주긴 하지만 속으로 욕합니다. 더운물을 많이 쓰면 난방비가 오르거든요. 어떻게 보면 행복한 불만인 것 같아요. 살아가는데 편리한 모든 것이 갖춰진 남한에서 살면서 점점 배은망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해연 : 만약 북한에도 화장실이 있고 아무 때나 더운물이 나온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이 쓸 것 같습니다. 북한에는 물세가 없으니까요. 다행히 더운물이 나오지 않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북한에서 목욕하는 날은 집에서 술 빼는 날

박소연 : 제가 어릴 때는 목욕하는 날이 따로 지정돼 있었어요. 북한은 집에서 가마뚜껑을 뒤집어 찬물을 붓는 방식으로 술을 많이 뽑잖아요. 보통 술을 뽑으면 더운물이 두 다라(대야)정도 나옵니다. 엄마들은 술 뽑는 날을 온 가족이 목욕하고 빨래하는 날로 정해요. 고향 말로 껍데기를 벗기는 날입니다. 목욕한 물에 빨래까지 하는데 어릴 때는 집에서 술을 뽑는 날이 제일 싫었습니다. 해연 씨는 어땠어요?

이해연 : 저희도 똑같았어요. 어릴 때는 술 뽑는 날에는 무조건 목욕하는 날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집에서 순대를 만들거나 김장하는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불을 많이 때는 날에는 무조건 목욕을 하고 집 대청소도 하고 빨래도 잔뜩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박소연 : 저는 동생이 많아요. 엄마가 동생들 목욕도 저한테 맡기셨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집에서 두부를 만드는 날이면 촛물(두부할 때 나오는 물)로 머리를 감고 이불 빨래를 했어요. 촛물에 머리를 감으면 비누를 칠하지 않아도 머릿결이 반짝거리고 흰 이불도 하얗게 때가 빠졌어요.

이해연 : 다 옛날 얘기네요. (웃음) 지금은 북한에서도 형제가 많아야 두 명 정도니까 동생이 씻지 않겠다고 투정하긴 했지만 싫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박소연 : 저도 동생이 한 명이면 힘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고향에서 동생들을 큰 소랭이(큰 대야) 앉히고 목욕을 시켰는데 남한에는 소랭이가 필요 없더라고요. 북한은 설거지 소랭이, 장판닦는 소랭이, 구정물 바께쯔(양동이)가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남한은 하수도가 24시간 막히지 않아 물을 따로 담아서 버릴 일도 없는 데다 부엌과 화장실에 싱크대가 있어 소랭이가 필요 없습니다.

이해연 : 북한에서는 ‘큰 소랭이’ 혹은 ‘다라’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선 ‘작은 소랭이’는 ‘대야’라고 부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대야가 뭔지 몰랐어요.

박소연 : 북한에서 소랭이는 여러 가지 용도로 쓰입니다. 비위생적인 것 같지만… (웃음) 큰 소랭이에 목욕하고 그걸 비누로 싹 씻어서 겨울에는 김장도 합니다. 보통 다라는 바닥이 단단하지만 목욕하거나 김장하면서 깨지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들은 땜질해서 계속 쓰는데 가정마다 윗방에는 큰 다라 여러 개가 꼭 있어요. 간혹 동네에 갓 시집온 신혼집에서 다라를 빌리러 오면 빌려주지만 뒤에서는 세간살이 못한다고 흉을 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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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 : 옛날에는 이웃끼리 대야도 빌려주고 목욕 수건도 빌려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때수건 정도는 누구나 사서 쓸 수 있을 정도는 됐고 남이 때를 민 수건으로 목욕한다는 것 자체를 찝찝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진짜 많이 빌려주고 막 그랬었는데...대야는 가정마다 하나 정도는 갖춰놓고 사는 편이라 과거처럼 서로 빌리고 빌려주는 문화는 거의 없어졌어요.

박소연 : 오… 개인주의인데요?

이해연 : 선배님이 생각하는 이웃 간의 정이라는 게 많이 사라지긴 했어요. (웃음) 한편으로는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야박해지지 않았다 싶어요.

박소연 : 한편으로는 북한도 문화적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들이 따로 사용해야 위생에 좋은 부분도 있으니까요. 과거에도 빌려 달라면 내키지 않지만 정 때문에 빌려주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은 사라졌다고 하니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 목욕탕에도 세신사가 있을까?

이해연 : 목욕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 나는 게 있어요. 남한에서 찜질방을 갔다가 신기한 걸 봤어요. 그곳에서 손님들의 때를 밀어주고 돈을 받는 ‘세신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있었어요. 목욕관리사로도 불립니다. 궁금해서 한 번 경험해 봤습니다.

박소연 : 주변에 세신사 직업으로 돈을 벌어 창업까지 한 탈북민 남성분이 있어요. 남한 정착 초기 목욕탕에 갔다가 때를 밀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을 보고 그 직업을 선택했답니다. 북한에서 오랫동안 삽질을 해서 팔 기운도 좋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한 직업이라 몇 년 동안 쭉 하다가 돈을 모아 지금은 자그마한 가계를 운영하고 있어요. 해연 씨, 때 미는 요금이 얼마인지 아세요?

이해연 : 보통 20달러입니다. 거기에 마사지를 추가하면 금액이 조금 더 올라갑니다. 때를 밀어주니 좋긴 한데 어색했어요. 내 몸의 때는 내가 미는 게 편하더라고요. (웃음)

박소연 : 20달러… 어디 세신사 필요한 데 없나요? (웃음) 사실 돈을 내고 때를 미는 건 너무 부르주아지로 보였어요. 남한에는 혼자서 등을 밀 수 있는 긴 때밀이 수건도 있는데 왜 돈을 쓰면서 때를 미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북한 류경 건강단지 내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타월
북한 목욕탕 타월 평양의 류경 건강단지 내 목욕탕 방문객을 위해 수건이 쌓여있다. 사우나, 목욕탕, 헬스장, 레스토랑, 탁구장, 미용실이 함께 있는 종합 시설은 2012년 11월 문을 열었다. (AP)

이해연 : 사실 적은 돈은 아니잖아요. 물론 내가 때를 미는 것도 좋지만 고생한 나에게 베푸는 최고의 대접이라고 생각하면 한 번쯤은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습니다.

박소연 : 솔직히 목욕탕에 대한 주제로 방송하자고 할 때 긴가민가했어요. 할 말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끝이 없습니다. (웃음) 저는 요즘 가족 간의 소통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껴요. 저희 집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거든요. 그런데 찜질방이나 목욕탕은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잖아요? 가족들이 모여서 얼굴을 보고 대화하고 친밀감을 쌓는데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해연 : 오히려 카톡으로 문자 보내면서 대화하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웃음) 저는 그게 더 편하던데… 그런데 선배님, 언제 저랑 한번 저랑 가실래요?

박소연 : 지금 말고 나중에… 훗날 저는 손자의 손목을 잡고 해연 씨는 딸과 함께, 넷이 가는 건 어때요? 두 가족이 함께 찜질방에 가는 그날을 로망으로 남겨놓고 싶어요.

이해연 : 거절이신거죠? (웃음) 그런 로망을 오랫동안 꿈꾸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공감해요.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에 드살쟁이 언니들이랑 찜질방에서 시어머니 흉을 보면서 큰 소리로 웃을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의 행복했고 좋았던 추억이 현실이 되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오늘 방송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전하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