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0년 차이] 아이는 하루 종일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무산 출신으로 올해 남한 정착 10년 차인 박소연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으로 이제 막 한국에 정착한 이해연입니다”

10년 차이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 선후배가 전해드리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박소연 : 해연 씨, 안녕하세요. 요즘 별일 없으시죠?

이해연 : 별일 없이 잘 지냈습니다. 대신 얼마 전에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요. 선배님, 혹시 ‘조용한 택시’라고 들어보셨어요?

박소연 : 택시는 다 조용하지 않나요?

이해연 : 조용한 택시는 일반 택시와는 좀 다릅니다. 며칠 전 택시를 탔는데 ‘이 택시는 청각 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음성이 나오는 거예요. 안내를 받는 순간 운전 기사님이 내 말을 못 들을 수 있구나 바로 알았죠. 그리고 앞 조수석 뒤쪽에, 그러니까 뒷 좌석에 탑승한 제가 바로 바로 볼 수 있는 위치에 판형 컴퓨터가 붙어있고 그것으로 운전 기사와 소통할 수 있더라고요. 목적지를 입력할 수도 있고....

박소연 : 그래서 조용한 택시군요! 기사에게 말로 안 하고 문자로 전달한다고...

이해연 : 맞아요. 내릴 때도 컴퓨터에 ‘여기서 내릴게요’ 입력해서 전송하면 기사님이 바로 볼 수 있어서 소통하는데 어렵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청각장애인분들도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룹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현대자동차 그룹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현대자동차 그룹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Hyundai World wide 유튜브 캡처 사진)

조용한 택시를 아십니까?

박소연 : 북한에서 ‘청각 장애인’이란 말은 서류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사회에서는 ‘귀머거리’, ‘귀 절벽이’라고 폄하해서 부르는데, 남한에서 그렇게 불렀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남한이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지만 청각 장애인이 직접 운전을, 그것도 택시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네요.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이해연 : 저도요. 남한은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 사람도 차에 보조 장치 예를 들면 보조 거울 같은 법적으로 정해진 장치를 부착하면 운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조 거울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후사경에 붙어있는 작은 후사경 거울을 말하는데요, 보조 후사경 거울은 시야를 더 넓게 비춰주기 때문에 안전운전에 도움이 됩니다.

박소연 : 솔직히 경적을 듣지 못한다고 운전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택시는 손님과 말로 소통해야 하는 거 잖아요. 문자로 소통하면 한계가 있지 않나요?

이해연 : 요즘 남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휴대전화에 설치한 프로그램을 통해 택시를 호출하는데 미리 목적지를 입력해서 전송하기 때문에, 승객이 택시를 타는 순간 기사님들은 대부분 어디로 갈 건지 알고 있어요. 조용한 택시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택시를 호출하게 한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기술이 있는데요. 요즘은 말로 하면 바로 문자로 변환이 돼서 상대방에게 보낼 수가 있습니다.

박소연 : 음성인식기술을 말하는 거죠.? 음성 인식 기술은 음성을 문자로 전환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가끔 소개되거든요. 휴대 전화 통보문을 보낼 때 휴대 전화에 말로 하면 그걸 문자로 옮겨서 전송해 줍니다. 그런 기술에 대한 보도를 볼 때마다 저게 왜 필요한가 생각했는데, 이런 경우 정말 유용한 기술이네요. 청각 장애인이 운전하는 택시가 왜 조용한 택시인지 이제 이해했습니다.

이해연 : 손님들이 말로 하면 그 말을 문자로 옮겨서 휴대전화나 판형 컴퓨터를 이용해 기사에게 전송될 수 있고, 그렇게 문자로 소통하며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거죠.

박소연 : 그래도 모든 소통을 글로 해야 하는데 갑작스런 상황이 닥치면 즉시 대처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을 것 같고...

이해연 : 약간은요. 운전 중에 혹시 외부에서 경적을 울릴 때 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살짝 궁금했는데 나중에 검색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외부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차선을 이탈하게 되면 운전사에게 진동이 전달된다고 합니다.

박소연 : 그런 게 있었군요!

이해연 : 저도 이번에 검색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남한 자동차 회사에서 청각장애인 기사를 위한 차를 개발했더라고요. 청각 장애인들이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각종 경고 등을 진동을 통해 손으로 감지할 수 있도록 특별 제작을 한 거죠.

박소연 : 예를 들어 차선을 밟았다든지, 차 간격이 좁아졌다든지 하면 이런 상황들을 진동으로 알려서 운전자가 알아차리게 해준다는 거잖아요? 이러면 청각 장애인들도 운전, 충분히 할 수 있죠. 나도 기회있으면 꼭 한번 타보고 싶네요.

이해연 : 저는 이 얘기를 선배님과 꼭 방송에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는데요,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선배님은 아실 것 같아요.

박소연 : 그 마음 알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청각장애인은 귀머거리, 앞을 못 보면 장님, 그리고 다리를 절면 찌꾸다리, 이렇게 비하하는 표현을 쓰죠. 해연 씨는 북한에 살 때 장애인을 본 적이 있어요?

‘고난의 행군’ 이후 장애인에 대한 시선, 두려움 혹은 안쓰러움

이해연 : 많이 봤죠. 잘 못 들는 사람들은 주변 가족들이 옆집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얘기하잖아요. 그리고 앞을 못 보시는 분들 같은 경우 옆에 보호자 분이 늘 손을 잡고 다니세요.

박소연 : 북한에서는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아요. 늘 집 앞에 조그만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어요. 고향에 사는 언니 아들이 소아마비라서 제가 그 사정을 너무 잘 알죠. 조카는 또래들보다 지능이 떨어져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는 큰길에 마구잡이로 뛰어들었어요. 몇 번 죽을 뻔한 일이 있어서, 집 안에 가두는 게 상책이었어요. 그 아이 때문에 장사를 못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방 안에 갇힌 조카는 바깥으로 내보내 달라고 항상 문을 두드렸어요. 평양시는 사회주의가 무너지기 전에 외국 손님들이 많이 왔어요. 그때는 장애인들을 아예 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을 외국인에게 보이는 자체가 나라의 위상을 떨구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최근 북한 영상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보통강변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을 봤어요.

이해연 :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지금도 아침부터 지팡이 짚고 다니는 사람 보면 재수가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고난의 행군’ 때 장애인에 대한 두 가지 인식이 존재했어요. 군대 갔다가 사고로 장애인이 된 영예 군인들이 국가에서 아무런 보상을 해주는 게 없으니까 화가 난 거죠. 목발을 한 4~5명의 영예군인들이 시장에서 장사꾼을 둘러싸고 무조건 도와달래요. 나라를 위해서 다리를 바쳤는데 너희라도 뭔가를 내놓으라는 거죠. 잡화를 팔던 할머니들이 천 원짜리를 주기도 하고 음식을 주기도 했죠. 나라에서 대우를 못 받은 것에 대한 화를 인민들한테 푸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장애인만 보면 겁을 냈어요. 언제 또 행패를 부릴까 늘 불안했죠. 또 다른 면은 시장 밖에서 장사하다가 안전원이 단속하러 와요. 보통 사람들은 단속원을 피해 골목으로 뛰면 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잘 모르니까요. 그냥 있다가 물건을 전부 회수당했어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봐주는 것도 없어요.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고 불쌍하다 혹은 나라에서 받지 못한 혜택을 주민들에게 화풀이하는 비뚤어진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인식했어요.

이해연 : 지금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막시하는(막나가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분들도 나랏일을 하다가 그렇게 된 건데 나라에서 보상을 안 해주니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모든 주민이 살기 힘든 상황이라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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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 북한은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시설도 없고 그들이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에서 보청기들이 밀수로 들어왔는데 엄청 비쌌어요. 거기에 중국제 보청기는 고장이 자주 나고 수리할 곳도 없었습니다.남한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청기를 국가가 지원해 줍니다. 2025년 보청기 국가지원금은 1인당 무려 900달러로 한국 돈으로는 117만 9천 원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같은 경우에는 100달러를 더 주더라고요. 19세 미만의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거의 2천 달러, 한국 돈으로 262만 원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이해연 : 남한처럼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북한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국가적 혜택이 없잖아요.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보청기를 살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불편하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클로징] 지난 2018년 남한에 정착한 탈북 여대생은 “북한에서는 소아마비가 걸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마치 원숭이 쳐다보듯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청취자 여러분들, 잘 아실 겁니다.

사실 장애인 문제에서 남북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쳐다보는 눈, 즉 주변의 시선입니다. 시선과 인식의 차이는 또 제도의 차이로 이어지고 이 차이는 생각보다 굉장히 큽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탈북 선후배가 전하는 남한 정착 이야기, ‘우리는 10년 차이’, 진행에 박소연, 이해연 제작에 서울 지국이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