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바로 청취자 여러분이 살고 계신 북한입니다. 내부 문서를 통해 오늘이 북한을 만나보는 [문서로 보는 북한] 진행에 안창규입니다. 오늘도 김지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이번 주 문건의 제목은 무척 깁니다.
김지은 기자 : 네, 입수한 강연제강의 제목은 ‘우리의 미더운 녀자축구선수들이 진한없는 애국열의를 안고 위대한 우리 국가 존엄과 영예를 금메달로 높이 떨친 데 대하여’ 입니다. 내용도 무려 35페이지에 달한다.
저희가 소개한 문건에서도 작성자가 ‘당’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성공한 해당 일군이나 대표적 인물인 경우가 많다. 이들을 내세워 증언하는 방식인데 이편이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쉽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번 제강의 작성자 역시 신용철 체육성 축구련맹 위원장으로 돼있습니다.

진행자 : 김 기자는 축구 좋아합니까? 저도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김지은 기자 : 네, 저도 북한에서부터 여자 축구를 즐겨봤고 여러 체육 종목 중에서 유일하게 축구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진행자 : 이번 문건은 사실 제목만 봐도 내용이 짐작되긴 합니다. 아마도 일련의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자랑이 엄청날 듯한데요, 우선 문건의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북한은 여자 축구의 성과를 어떻게 포장했나
김지은 기자 : 강연제강에는 ‘북한 여자 축구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지난해 9월 열린 국제축구연맹 u-20, 즉 20살 이하 녀자 월드컵에서 일본과의 접전 끝에 1대 0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고 밝히며 북한이 어떻게 이겼는지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서는 ‘월드컵 경기에서 맞다 드는 강팀들을 모두 보기 좋게 누르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승리의 보고, 영광의 보고를 드리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결승에서 전후반 90분 경기에서 1:1로 비기고 승부차기로 한 꼴을 득점해 이겼다는 내용은 없고 여러 차례의 국제경기 중에 북한이 2016년 요르단 대회 이 후 8년 만에 3번째 우승했다는 것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세계 경기에서 등수권에 들지 않은 경기는 절대 방영하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주민들은 신용철 체육성 축구연맹 위원장 명의의 제강을 그대로 믿게 될 겁니다.
진행자 : 문건을 보면 강연 출연자가 2024 U-20 월드컵에 아시아 지역에서는 북한, 일본, 오스트랄리아(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한국 이렇게 4개 나라가 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텔레비죤에서 방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괴뢰한국’ 이렇게 칭하고 있군요.
김지은 기자 : ‘괴뢰한국’ 들을 때마다 참,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한국의 국호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괴뢰한국이라니요.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만큼이나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문건으로 돌아와서 신용철 위원장은 선수 선발에서 사회종합팀과 군대종합팀 사이의 대항 경기를 진행해 이긴 팀을 모체로 팀을 꾸렸는데, 이를 ‘총비서동지의 가르침’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여자축구의 성과가 전적으로 김정은 총비서에게 돌리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신 위원장은 기존팀이 승산이 없다고 하며 2023년 7월, 대담하게 팀을 새로 꾸렸고 실력 본위 원칙을 세우고 혁신적으로 교체했고 감독 역시 기성 관계를 따르지 않고 임명했으며 또 개별 특기에 따라 3차례나 선수를 선발했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를 과감하게 탈락시키고 다시 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설명대로라면 불과 1년 전에 팀을 꾸리고 3개월 동안 연습해서 세계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주장인데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북한은 ‘이게 가능한 것이 북한 여자축구’라고 주장합니다.

진행자 : 지난해 같은 경우 북한 여자 축구 성적은 자랑할 만합니다. 작년에 북한은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했습니다. 두 달 만에 두 개의 월드컵을 연속으로 제패한 셈인데 문건은 이런 공을 모두 김정은의 은혜와 배려 덕분으로 돌리고 있는 거죠. 사실 자료에 언급되는 선수들에 대한 영양공급 같은 건 어느 나라, 어느 선수단을 막론하고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걸 특별하게 포장하고 모든 공을 지도자에게 돌리는 건 우리가 국제 대회마다 보아왔던 모습이죠. 참 북한의 수령들은 요리는 물론 군사, 경제, 체육 등 각 분야에 최고들이지 않았습니까?
김지은 기자 : 그것뿐이겠습니다. 건설도 그렇고 축구 기술도 가르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번 문건에도 ‘이번에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가르쳐주신 공격적인 전법을 모든 경기에서 빠짐없이 구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2013년 6월 김정은 총비서가 평양국제축구학교 설립하고 방문, 은정 깊은 조치를 베풀었다’고 서술했지만 북한의 여자 축구는 김정일 시대부터 시작됐고 북한 당국은 그동안 꽤 많은 공을 들여왔습니다. 김정은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거죠.
체육을 체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전의 계기,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선전의 계기로 이용하는 북한의 체육 실태는 익히 알고 있지만 다시 보니 씁쓸합니다. ‘김정은이 가르친 공격 전법’, ‘은정 어린 조치’이니 하면서 주민들을 선동해야 하는 체육위원회 위원장이나 그 선전을 듣고 있을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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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사실 체육 즉 스포츠는 순수한 스포츠여야 합니다. 정치적인 색깔이나 고려를 빼고 스포츠로만 겨뤄야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정신’이라는 말도 있지만 북한은 운동 경기에 정치적 감정, 대립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특히 북한은 이번 여자 축구 경기는 물론 역대적으로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국제 경기에서 붙으면 목숨을 걸고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죠.
“체육은 적들과 총포성 없는 전쟁”
김지은 기자 : 이번 문건에서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늘 외우는 말이지만 평화 시기에 적들과 총포성이 없는 전쟁을 하는 것이 바로 체육입니다’…이 문장이 북한이 체육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보여줍니다. 북한에서 체육이나 운동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대결’로 보니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강연제강에서 미국팀과의 경기 과정이 자세히 소개됐습니다.

김지은 기자 : ‘특히 미국과의 경기가 있기 전날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하여 오락회를 조직하였다. 오락회 시작을 알리자 제일 먼저 방어수 14번 황유영 선수가 나와서 경애하는 아버지 원수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노래 ‘불타는 소원’을 불렀다. 가사에는 ‘이 한밤도 먼길 가실 원수님 생각하며 우리 마음 자욱자욱 간절히 따라섭니다…’는 구절들이 총비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꽉 차넘치게 하자 모두가 합창을 불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락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는 ‘전쟁의 3년간’을 불렀다고 하는데, 이 노래는 전쟁입니다. 가사는 ‘얼마나 많고 많은 아까운 생들이 싸늘히 식어 누웠나. 이땅의 모든 이들이 혈육을 잃고 흘린 눈물을 영원히 잊지 않아’하고 노래를 부르니 모두가 비장한 감정에 휩싸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장면이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질 것 같습니다.
김지은 기자 : 이 정도면 단순한 오락회라고 할 수 없죠? 노래를 통해 미국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끌어 올리고 그 정신으로 경기에 임하라는 세뇌입니다.
가장 중요한 세뇌는 사실 6.25 전쟁이 북한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감추고 주민들에게 미국에 의해 발발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거짓말을 반복해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은 ‘결전의 길로’를 불렀다고 합니다. ‘만세, 만세, 만세높이 부르며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나가다 동무여 결전의 길로’. 이 노래를 마치고 선수들은 서로가 의기 투합하여 “미국팀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자”고 격동된 목소리들이 연방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제강에는 ‘친미 국가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있는 호텔에서 웬만한 담력과 배짱이 없어 가지고는 미국을 저주하고 결사전을 다짐하는 노래를 장내가 들썩하게 부르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세계적인 강국, 위대한 북한의 체육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 배짱에서 나온 말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운동선수들에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하라는 분위기를 당국이 나서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 북한은 북한 선수단이 승리한 경기만 보여주면서 북한 주민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죠. 분명 북한 여자 축구를 세계적으로 잘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국제 경기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또 잘 나가는 유소년 축구에 비해 성인 여자 축구를 영 맥을 못 춥니다. 다음 시간 이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감사합니다.
김지은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진행에 안창규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이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