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박수영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 출판사에서 일하던 여성이 남한에서는 간호조무사가 되어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지는 어느덧 10년이 넘었는데요. 이순희 씨가 남한에서 겪은 생활밀착형 일화들 함께 들어봅니다.
기자: 이순희 씨 안녕하세요.
이순희: 네, 안녕하세요.
기자: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순희: 봄을 알리는 3월이 시작됐어요. 3월이 반가운 이유는 화이트데이가 있어서기도 해요. 젊은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텐데, 2월 14일은 사랑을 담아 초콜릿을 주는 밸런타인데이였잖아요. 3월 14일은 반대로 사탕을 건네는 화이트데이에요.
기자: 화이트데이는 어디서 유래됐나요?
이순희: 화이트데이는 일본의 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이 사탕 판매를 늘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해요. 그 일본의 문화가 한국에까지 퍼진 거죠. 2월 14일에 남자에게 초콜릿이나 선물을 받은 여자가 그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서 사탕이나 선물을 주는 날로 자리 잡았어요. 그리고 또 재미있는 한국의 기념일은 4월 14일 블랙데이 같은 날이에요. 이날은 2월과 3월에 사탕과 초콜릿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혼자 짜장면을 먹는 날이에요. 짜장면의 춘장이 검은색이라서 (솔로들을 위한) 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밸런테인∙화이트 데이 남북한의 다른 모습
기자: 북한에서는 이날들을 기념하지 않다 보니 생소하실 텐데요. 남한에서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연인들이 이날을 기념하고 있죠?
이순희: 맞아요. 남한에서는 청춘남녀들뿐만 아니라 중년, 노년 부부들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해요. 초콜릿과 사탕 등 달콤한 간식을 주고받으면서 데이트도 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죠.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로 북한 젊은이들은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를 챙기는 경우도 있었겠죠. 그런데 밸런타인데이는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이틀 전이니까 더 들뜨기도 하죠. 이때는 어느 때보다 바쁘기도 해요. 유일하게 북한에서 어린이들에게 당과류 1kg을 선물로 주는 날이기도 해서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명절이기도 해요. 솔직히 (평소에는) 밥도 먹기 힘든데 어떻게 간식까지 챙길 수 있겠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이날에 국가에서 갓난아기부터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어린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주거든요.
기자: 그런데 화이트데이에 연인끼리는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많지만, 어르신들은 좀 낯설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이순희: 젊은 사람들은 이런 문화에 익숙해서 잘 즐기지만, 나이 든 어르신들은 잘 모르긴 해요.
제가 남한에서 요양원에서 일하다 보니까 어르신들을 많이 상대하고 있잖아요. 아침에 직원들이 먼저 출근해서 차를 타고 오시는 어르신들을 “어르신,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거든요. 그러면 어르신마다 주머니에서 초콜릿과 사탕을 꺼내서 선생님들한테 “우리 손자 주고 남은 거다. 선생님 생각해서 하나 가져왔다”라면서 저희한테 나눠주곤 했어요.
상업적인 기념일 vs 역사적 기념일…선택은?
기자: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기념하는 연인들의 경우에는 보통 어떻게 하루를 보내나요?
이순희: 남한의 연인들은 이날뿐만 아니라 사귄 지 100일 혹은 1주년, 결혼기념일 등 다양한 기념일을 챙기는데요. 화이트데이와 밸런타인데이도 다른 기념일처럼 선물을 주고받기도 해요.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선물 중 대표적인 것은 꽃다발, 손 편지, 액세서리, 향수, 명품 가방, 화장품 등이 있어요. 화이트데이에는 주로 남성들이 이런 선물을 주고요. 밸런타인데이에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향수, 시계, 넥타이, 손수 만든 간식 등을 주더라고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한 남학생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장미 100송이 개수를 맞춰서 주는 걸 봤어요.
기자: 화이트데이에 주고받는 선물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과한 선물은 오히려 부담되지 않나요?
이순희: 제가 보기에는요.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기쁘고 즐겁다고 생각하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날이고 또 연인끼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조금 돈이 들어도 별로 아까워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기자: 연인들 외에도 가족이나 친구끼리 즐길 수 있는 문화도 있나요?
이순희: 3월 14일이면 학생들이 새 학기가 시작했을 때거든요. 특히 대학생들은 새 학기를 맞아 화이트데이에 맞춰 단체 여행을 계획하기도 해요. 그리고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처럼 남한의 대표 놀이공원들에서는 이날 놀러 오는 여성 고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기도 하고요. 커플룩이라고 연인들이 서로 옷을 맞춰 입는 게 있는데, 커플룩을 입고 오면 여성 고객에게 자유이용권을 무료로 주기도 해요. 또 커플룩을 입고 오지 않더라도 이날에 오는 연인들에게는 자유이용권을 할인해서 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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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너무 상업적인 기념일이라는 의견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순희: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은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가 일제의 침략 원흉인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일제에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해요. 그래서 남한에서도 밸런타인데이가 아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데요. 저는 둘 다 정당한 의견이라고 생각해요. 연인끼리는 초콜릿을 주고받으면서도 한편으로 안중근 의사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남한 이색 데이트, 북한서도 즐길 수 있어
기자: 그런데 화이트데이에 연인과 함께 로맨틱한 데이트를 계획하는 게 다소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특별한 데이트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순희: 남한 젊은 연인들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기념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데이트는 식당에 가서 좋은 음식을 나눠 먹는 거지만, 이색 데이트도 많더라고요. 예를 들면, 멀지 않은 도심에 있는 고급스러운 호텔을 예약해서 하루 동안 편히 쉬기도 하고요. 함께 반지나 초콜릿, 양초를 만들기도 해요.
기자: 북한 젊은 연인들은 어떻게 기념일을 보낼 수 있을까요?
이순희: 북한에서는 여행증 없이 연인들이 여행 가기도 어렵잖아요. 집 주변에 호텔을 예약하는 건 더더욱 어렵고요. 만약 남한에서 하는 이색 데이트를 북한에서 한다면 함께 양초나 사탕을 만들어보는 건 좋을 것 같아요. 평소에 사탕을 만들지 않더라도 사탕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장마당에서 구해서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모양으로 만들어 선물하면 어떨까요? 북한에서는 공장이 아닌 개인이 사탕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북한에서 사탕을 만들던 분들이 남한에 와서도 북한 사탕을 만들어 탈북민들에게 파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북한에서 일을 다닐 적에는 밸런타인데이 직후에 다가오는 김정일 생일을 기념하려고 각종 공연과 회사별 충성의 노래를 연습하느라고 일이 끝나고도 집에 못 갔거든요. 하루 종일 일하고, 행사 준비를 마치고, 똑바로 서서 합창 연습하고, 노려 연습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곤 했어요. 이제는 북한 젊은이들도 국가 행사 준비에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닌 특별한 기념일에는 남한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기자: 네, 이순희 씨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순희: 여러분 다음 시간에 뵐게요.
기자: 청진아주메의 남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한국 대구에 있는 이순희 씨를 전화로 연결해 남한의 화이트데이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에디터 이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