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 갑] ‘김정은 독자 우상화 작업’ 갈피 못 잡는 이유

TV뉴스보다 새로운 정보가 더 빨리 모이는 인터넷 소통공간 SNS. 지금 한국의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인들이 관심 갖고 있는 남북한의 뉴스를 알아보는 <화제성 갑>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진이고요.

이승재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RFA 기자 이승재입니다.

진행자: 코로나 19로 중단됐던 평양국제마라톤대회가 6년 만에 다시 열렸습니다. 대회는 성황리에 잘 마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번 마라톤대회를 통해 드러난 김정은 총비서의 속내를 짚어봅니다.

이승재 기자: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일, 김일성 주석 생일을 기념해 제31차 평양국제마라톤경기대회가 열렸다고 7일 보도했습니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남녀 마라손(풀코스 42.195km), 반마라손(하프21.097km), 10km, 5km로 나뉘어 진행됐습니다. 이번 대회는 중국과 루마니아, 에티오피아 등 46개국에서 200여 명 정도의 외국인 선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지난 6일,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기념해 제31차 평양국제마라톤경기대회를 개최했다. (연합)

평양국제마라톤대회 우승 북한 싹쓸이

진행자: 보도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경기장 관객석도 꽉 차 있고, 응원의 함성도 크더라고요. 또 대회 참가자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는데요. 현지 분위기 조금 더 자세히 전해주시죠.

이승재 기자: 네. 지난달 북한에서 마라톤 개최를 처음 예고했을 때 서방 세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요. 오랜만에 열린 국제행사여서 그런지 비교적 분위기가 밝았던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 보도엔 “개선거리, 승리거리, 청춘거리를 비롯한 수도의 거리들을 누벼나가는 마라손 선수들에게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이 손을 흔들고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고무해주었다”고 나와있는데요. 일단 사진상으로 보면 여느 나라의 마라톤 대회와 별다르지 않은 풍경입니다. 공개된 사진을 보니 전광판에는 “제31차 평양국제마라손경기대회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쓰여 있었고요. 평양시내를 활기차게 달리는 선수들의 모습 역시 인터넷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북한 여행사 고려투어스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일찍 도착한 참가자들은 서산호텔 부근에서 마라톤 연습을 했다고 하고요. 외국인 참가자들이 올린 각종 인터넷 동영상에는 선수들이 뛰면서 손전화 카메라로 평양 풍경을 담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녀 마라톤 경기에선 북한 선수가 남녀 모두 1위를 차지했고요. 반마라톤은 북한 남녀선수들이 금·은·동메달 모두 싹쓸이 했습니다. 아마추어 경기에선 남자 마라톤의 경우 폴란드 선수들이 각각 1~3위를, 여자는 홍콩 선수가 1위를 했습니다. 북한 선수들의 성적이 좋았으니 시상식, 폐막식 분위기는 더욱 활기찼다고 전해집니다.

진행자: 사실 지난달, 코로나로 5년간 막혔던 북한의 외국인 단체 관광이 재개됐었죠. 그런데 3주 만에 북한 당국이 여행사들에 이유도 알리지 않은 채 갑자기 나선 관광을 중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마라톤대회도 갑자기 취소되는 건 아닌가 했는데 무사히 치르긴 했네요. 이번 대회에 참가한 여행객들은 관광 일정도 따로 있죠?

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귀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연합)

평양 주민들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 반응

이승재 기자: 그렇습니다. 평양마라톤경기대회의 접수처인 북한 전문 여행사 고려투어스가 판매한 ‘마라톤 투어‘는 5박 6일 동안 마라톤 대회 참가와 함께 평양 시내 곳곳을 돌아보는 관광 일정이 포함됐습니다. 일단 경기 코스로는 김일성경기장에서 출발해서 문수거리, 평양대극장, 미래과학자거리 등을 돌았고요. 이후 관광코스로는 옥류관,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평양뉴타운화성거리, 강동온실농장 등을 방문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고려투어스의 사이먼 코커렐 총지배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평양 마라톤은 현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독특한 경험이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북한 측에서도 이번 관광에 공을 들였다고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지난 달 나선 관광 때는 당시 서방 여행객들이 자국의 언론 인터뷰와 개인 SNS를 통해 여행 후기를 공개했는데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랐고, 이에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이번 마라톤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던 거죠. 그러나 앞서 소개한 장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북한을 알리기에 문제가 될 만한 곳은 관광 일정에 없을 것으로 보이고요. 현재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는 마라톤 참가자가 북한 주민들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거나 인사를 하는 영상도 많고요. 평양 주민들도 “힘내”, “힘내시라요” 소리치기도 하고, 더러 선수들에게 물을 건네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북한 당국이 외국인을 상대로 한 관광 상품을 다시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죠?

이승재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를 계기로 많은 국가들은 북한이 외국 관광객을 다시 받아들일지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평양마라톤대회를 예정대로 개최한 만큼 북한 측의 외국인 관광 재개 의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고요.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오늘 RFA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계속 사상, 문화 통제를 고집한다면 현재의 북한 체제도 결국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니 결국 러시아나 중국을 통해서 대외 판로를 모색하는 등 앞으로 전술적 변화가 꼭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충격이 덜한 체육행사는 조금씩 옛날처럼, 친사회주의 진영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그러나 “본질적인 개혁 개방의 노력차원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이런 방식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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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북한, 평양 국제마라톤경기대회 개최 지난 6일,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기념해 제31차 평양국제마라톤경기대회를 개최했다. (연합)

김일성 주석 생일 기념 마라톤대회에 김일성 수식어 빠져

진행자: 계속 지켜봐야 할 부분이겠네요. 이번 대회를 통해 김정은 총비서의 속내를 또 하나 엿볼 수 있었죠. 평양국제마라톤대회는 애초에 1981년부터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기념해서 열린 대회인데, 올해부터는 태양절 관련 수식어가 빠져 있다고요?

이승재 기자: 네. 그렇습니다. 경기를 마친 다음날 7일 노동신문은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 명절에 즈음하여 제31차 평양국제마라손경기대회가 진행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5년 전까지 이 대회의 공식명칭은 ‘만경대상국제마라손경기대회‘였는데요. 만경대라는 김일성 관련 수식어가 완전히 빠졌습니다. 이 같은 기류는 작년 김일성 주석 생일 때부터 감지됐는데요. 지난해 북한은 4월 13일부터 김일성 주석의 생일 당일인 15일까지 수십 건의 관련 보도를 하면서도 대부분 ‘4.15절‘, ‘4월 명절‘이란 용어로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김 주석의 우상화 표현은 자제하면서도 경축행사는 예년 수준으로 개최하는 등 ‘민족 최대 명절‘로써 의미 자체를 축소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자: 몇 년 전부터 김정은 총비서가 선대 지도자들의 업적을 지우고 자신의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했습니다만, 이번에 김일성의 업적을 부각시키며 경축 분위기를 이어가는 걸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 보이는데요.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김정은, 강건종합군관학교 시찰
김정은, 강건종합군관학교 시찰 강건명칭 종합군관학교를 현지지도하고 있는 김정은 총비서. (연합)

김정은 독자 우상화 작업 오락가락하는 이유

이승재 기자: 네. 지난 3월 말 노동신문의 보도를 보면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를 높이 모시어 당의 80년사는 800년, 8000년으로 줄기차게 이어질 것이다”라며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이 보입니다. 한때는 말씀대로 김 총비서가 선대의 치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선대의 업적과 세습의 정당성을 계속 부각하고 있어서 이같은 분석도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 때문에 ‘선대지우기’가 아니라 ‘김정은 우상화 강화’에 더 초점을 맞춘 분석이라는 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당의 목표는 인민들이 태양절이나 광명성절에도 선대 지도자가 아닌 김정은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한편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정권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이 연구위원의 말에 따르면 “2023년 12월부터 김정은 총비서가 선대의 통일 관련 정책들을 모두 지우면서 북한 헌법에도 이를 반영하는 작업이 이뤄졌는데, 그 구체적인 상황들을 현재 대중에 공개하지도 못할 정도로 북한 정권이 다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이 연구위원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업적 그리고 통일 관련된 선전선동은 북한 체제의 존재 이유나 앞으로의 목적을 이끌고 나가는 원동력이었는데 그것을 모두 지워버리니 김정은 정권에 미치는 부작용이나 단점이 더 크다”고 전했는데요. 그런 면에서 태양절이라는 용어를 없애는 동시에 김일성의 업적을 치켜세우는 등 여러 입장을 오가는 상황,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으로 분석했습니다.

진행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원하는 우상화 작업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입니다.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화제성 갑, 진행에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