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옥수수 두 짐 (1)

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하고 싶은 한 가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아홉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요. 아홉 가지를 감수할 정도로 하고 싶은 그 한 가지 일이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뜻이겠지요. 어떤 유명 가수는 공연을 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술도 안 먹고 살까기와 운동 등 하기 싫은 일을 한다고 하고요. 한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재료비를 장만하는 등 하기 싫은 부업을 기꺼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한 가지를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해 내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탈북민들도 비슷하지 아닐까요?

마순희: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탈북민들도 본인이 원하는 일, 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쩌면 한국에서 정착하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순간들이 해당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해주는 대로 살아가면 되는 북한과 달리 한국에서는 인생의 매 순간 본인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하니까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모두 자기 자신의 몫이라는 게 탈북민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선택과 결정, 어쩌면 이것부터가 하기 싫은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번 성공시대에서 소개해드릴 분은 글을 쓰는 작가인데요. 2006년 8월에 한국에 입국한 평안북도 출신의 이명애 씨입니다. 원하던 글을 쓰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쉽지 않은 과정도 있었지만 이명애 씨는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던 작가의 길을 걸어가게 된 대단한 분입니다. 오늘은 작가 이명애 씨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인선: 작가들도 다양한 장르가 있잖아요. 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가나 시인, 수필가도 있고요. 본업과 관련된 책을 쓴 전문 작가로 주식이나 금융, 법률에 관한 책을 낸 작가 등 다양한데요. 이명애 씨는 어떤 작가이실까요?

북한의 현실을 시로 표현하다

마순희: 네, 이명애 씨는 고향에 대한 기억과 삶의 애환, 그리고 추억과 희망을 담은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는 시인이십니다. 명애 씨는 한국에 입국한 지 12년째 되는 2017년 12월에 K-스토리 신인상으로 등단하였고, 2020년 12월 첫 시집 ‘연장전’을 출간했습니다. 2년 뒤인 2022년에는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 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고 지금은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계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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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애 씨 발간 시집
이명애 씨 발간 시집 이명애 씨가 2020년과 2022년에 발간한 시집 - '연장전'과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 (이명애 씨 제공)

김인선: 한국에서 문인으로 활동하는 탈북민들을 보면, 북한에서부터 작가로 활약했던 분도 있지만 한국에 와서 처음 글을 쓰게 됐다는 분도 계신데요. 이명애 씨는 어떤 경우인가요?

마순희: 네. 명애 씨는 후자에 해당되는데요. 한국에 와서 글을 쓰는 일을 하게 된 분이십니다. 명애 씨는 북한에서부터 꿈 많은 문학소녀이기는 했지만 작가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자신이 시인으로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고 합니다. 명애 씨가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대다수의 탈북민들처럼 돈을 버는 일이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면 탈북민들이 그토록 꿈꾸던 신분증, 주민등록증을 받게 되는데요. 명애 씨는 이 신분증을 받은 후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이 하루벌이 일을 알선해주는 용역회사였습니다. 하루 단위로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용직은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니까요.

김인선: 일용직 중에 탈북 남성분들이 많이 하는 게 건설현장에서 몸 쓰는 일이고, 탈북 여성분들은 공장이나 식당에서 하는 단순 노동인데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로임이 높은 편은 아니거든요.

한국의 일용직 인생도 북한 부모형제에겐 꿈 같은 삶

마순희: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한국생활을 시작하는 탈북민들에게는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명애 씨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하루 일한 일당으로 처음 받았던 돈이 34달러, 한국 돈으로 5만원을 받았는데, 그렇게 감개무량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북한으로 따지면 하루 일해서 20kg의 쌀을 사고도 남는 엄청난 금액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난방도 잘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오는 따뜻한 집에서 하얀 쌀밥을 먹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서 한 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북한에 비하면 천지 차이가 나는 생활이었습니다. 당장은 행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명애 씨는 따뜻한 집에서 하얀 쌀밥을 마주할 때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부모형제에게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명애 씨는 하루 빨리 돈을 벌어 고향에 보내주자는 심정으로 매일 같이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김인선: 명애 씨가 다른 일을 찾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용역회사에서 주선하는 일은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어서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긴 하지만, 매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일손을 찾는 곳이 없을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어요. 명애 씨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마순희: 맞는 말씀이십니다. 처음엔 일자리 연결이 제법 잘 되는 것 같아서 명애 씨는 그런 현실을 잘 알지 못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명애 씨가 직접 경험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용역회사의 일은 고정적으로 안정된 일이 아니었기에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명애 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보수가 많지 않아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는 직장에 취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명애 씨는 어렵지 않게 한 생산 공장에 들어갔고 야근수당까지 포함해서 한 달에 100만원, 687달러 정도를 로임으로 받으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젊은 여성과장이 명애 씨가 받는 월급의 2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는데요. 명애 씨는 자신도 그 여성과장처럼 월급으로 약 1,370달러 정도 버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성실하게 근무하고 근무 일수가 늘면서 명애 씨의 급여는 조금씩 올랐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명애 씨는 추석 등 명절 연휴까지 바쳐가면서 일했습니다. 명애 씨가 애쓴 만큼 월급으로 받은 돈은 687달러에서 962달러(140만원)로 올랐습니다.

김인선: 돈도 좋지만 명절에도 쉬지 않고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은데요.

일하는 탈북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

마순희: 네. 하지만 명애 씨는 최대한 돈을 벌어서 고향의 부모, 형제에게 보내주자는 심정으로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명절을 반납해가면서까지 열심히 일만 했는데요. 사실 명애 씨에게는 한국에 함께 온 두 딸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으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명애 씨는 정착을 시작하면서부터 돈 버는 일에만 열중했던 것입니다. 탈북민 자녀들을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 뿐 아니라 방과 후 돌봄교실, 지역아동센터 등 일하는 탈북 엄마들을 위해 육아에 도움을 주는 곳들이 있는 덕분이었습니다.

명애 씨는 회사 일을 하면서 컴퓨터 공부도 하고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을 만큼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요. 문득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 하는 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고향에 돈을 보내줘야 한다는 압박감은 여전했지만 스스로 세운 목표, 월급이 1,300달러가 넘을 만큼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잠시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명애 씨는 명절을 반납해가면서까지 일했던 회사를 2년 만에 그만 두고 대신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안정적인 중소기업의 경리로 취직을 했습니다. 처음 해 보는 경리직이 만만치 않았지만 명애 씨는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일했고 5년간 근무했습니다.

김인선: 5년간 경리 일을 했다는 거 보니까 또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는 얘기 같은데요. 못 다한 이야기들은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지금까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