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한국에선 올해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해 봄 가뭄은 없다고 하는데요. 북한은 어떨까요? 3월부터 5월까지 비가 잘 오지 않을 때 농민들은 애가 타지만, 가뭄이라 돈 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손 기자, 가물 때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북한서 가뭄을 반기는 사람들
손혜민 기자: 가뭄이 시작되면 북한에서는 소금 만드는 염전사업소도 바빠지지만, 펌프 수도 설치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도 바빠집니다. 개인 살림집에 펌프 수도를 설치하려는 주민들의 수요가 가뭄이 가장 심한 4월과 5월에 많기 때문인데요. 그 이유는 가뭄이 심할 때 땅을 파고 펌프 수도를 설치해야 계절에 관계없이 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펌프 수도의 원리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 드린다면, 땅 밑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거기에 관을 박고 피스톤 원리로 물을 빨아올리는 펌프와 연결해 지하수를 끌어올립니다.
땅을 깊이 파고 지하 물줄기를 찾으면, 그 주변에 물 주머니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그곳에 관을 박아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가뭄이 시작되는 4월이 아니라 장마가 시작되는 6월 하순이나 7월에 땅을 파면 4미터나 5미터 정도만 들어가도 땅 속 물줄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더 이상 땅을 깊이 팔 필요가 없어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데요. 이렇게 설치된 펌프 수도는 장마철에는 물이 잘 나오지만, 겨울이나 가뭄이 시작되면 물줄기가 말라 더 이상 펌프 수도로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반면 4월과 5월 같은 가뭄 때 땅을 파면 지대 별 차이가 다르지만, 제가 살던 평안도 도시의 경우 9미터 이상 땅 속을 파야 촉촉히 젖어 있는 모래층이 보이거든요. 거기서 1미터 더 깊이 파 주면 물줄기가 보이면서 우물처럼 물 웅덩이가 형성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관을 박고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데요. 이렇게 설치된 펌프 수도는 계절에 관계 없이 작두처럼 생긴 펌프 손잡이를 조금만 움직여도 지하수가 콸콸 쏟아지므로 개인 살림집에 필요한 식수와 생활용수 걱정이 없어지는 겁니다.
진행자: 물줄기를 잘 찾아야 해서 아무나 펌프 수도를 설치할 수도 없을 거 같고, 그런 만큼 비용도 꽤 들어갈 것 같은데, 펌프 설치는 관련 직업이 따로 있는 겁니까?
맨 땅에 삽질? 물길 찾는 기술자 8.3조
손혜민 기자: 공식적으로 따로 있는 건 아니고요. 3명으로 조직된 8.3조가 주로 합니다. 2002년 7.1조치 이후 국영 공장 기업소에 자율성이 부여되며 8.3노동자, 8.3작업반, 8.3조가 증가했는데요. 노동자 개인이 혼자 장사하면 8.3노동자, 3~5명 단위이면 8.3조, 10명 이상 단위이면 8.3작업반이 되는 건데요. 인원의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공장기업소에 출근하지 않고 장사하는 대가로 국영 공장에 장사 수익금의 일부를 매달 8.3돈 형식으로 바쳐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 8.3조는 서로 다른 공장기업소에 소속된 8.3노동자들이 모여 일하는데, 이들은 나름대로 기술자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말하자면 토질에 따라 땅을 얼마나 파야 물줄기가 있을지 등 기초 지식이 있는 사람들끼리 일을 해야 펌프 수도 설치에서 인력 낭비 등 실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개인 살림집에서 펌프 수도 설치를 주문 받으면, 그 집이 위치한 부지 조사작업을 선행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6시 현장에 도착해 땅을 파기 시작해 점심 12시 전 9미터 깊이를 인력으로 팝니다.
점심식사는 펌프 수도 설치하는 가격에 포함되어 주인 집에서 대접하지 않고 장마당에서 해결하는데요. 돼지고기 국밥을 든든히 먹고 나서 오후 1시부터 다시 땅 속에 관을 박아 펌프 수도를 설치하고 집 주인 앞에서 지하수를 직접 퍼 올립니다. 그러면 집 주인은 그 자리에서 설치 비용을 현금으로 주는데, 가격은 보통 50달러입니다. 이 가격은 집 주인이 펌프 수도 자재를 샀을 때고요. 8.3조가 관과 펌프 등 자재를 사가지고 왔다면 80달러, 주요 자재인 10미터짜리 관이 인발관(이음매 없는 강관)이면 가격이 또 오르거든요. 펌프 대가리가 공장에서 생산된 주물 제품이면 100달러 이상으로 오릅니다.
아파트에서도 펌프 수도 없으면 못 살아
진행자: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그래서 아직도 펌프 수도를 설치하지 못한 사람들이 봄이 되면 신청을 하는 거겠죠. 그럼 하나의 펌프 수도를 사용하는 사람들 수가 많으면 얼마나 될까요?
손혜민 기자: 북한 농촌은 상대적으로 수도가 발달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동네마다 우물이 설치되어 있어 농촌 사람들은 대부분 우물과 냇가에서 물을 해결합니다. 하지만 공업화된 도시에는 1960년대 지역마다 수원지가 건설되고, 개인 살림집에 시간제 수돗물을 공급하는 양수장 배관이 수원지와 연결되어 수도화가 비교적 잘 되어 있었습니다. 땅 속으로 뻗어있는 모든 수도관은 쇠로 만든 것이어서 30년만 지나면 녹이 쓸어 삭습니다. 수도관을 교체해야 하는데, 1990년대 경제난으로 전기공급마저 중단되면서 녹이 쓴 관으로 공급되던 식수마저 완전 끊겼습니다.
결국 원래부터 수도가 없었던 농촌에는 우물을 먹으며 식수난 소동이 크게 없었지만, 도시에서는 갑자기 식수와 생활용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혼란이 컸습니다. 이에 당국은 각 동마다 펌프 수도를 설치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제가 살던 평안남도 순천 지역에 한 개 동 규모는 90개의 인민반이 자리할 정도로 컸는데요. 한 인민반에 35세대가 살고 있었으니 물 한번 길으려면 20분을 걸어 수십 미터 서있는 사람들 뒤에서 순번제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니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이 붙어 싸움이 빈번한 공간이 펌프 수도 일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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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며 지역마다 종합시장이 들어서고, 여기서 장사하는 가정주부 여성들이 가장 먼저 펌프 수도 설치에 나선 배경입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펌프 수도를 설치하는 비용이 비싸지 않나요. 그래서 여유가 있는 여성들부터 펌프 수도를 살림집 부엌이나 마당에 설치했는데, 2000년대는 한 개 인민반에 2-3세대 정도, 2010년대는 10세대 정도였으므로 지금도 펌프 수도 설치가 이어지는 겁니다. 특히 최근에 설치되는 펌프 수도는 아파트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파트에서는 1층 현관 입구 앞에 펌프 수도를 설치하고, 거기에 디젤유 발동기와 연결된 비닐관을 설치해 5층 이상 살림집으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겁니다.
물 펑펑 쓰는 목욕탕 펌프질은 누가?
진행자: 아파트마저 펌프 수도를 써야 한다니 심각한 상황이네요. 아니 그럼 개인이 운영하는 목욕탕에서도 물이 많이 사용될 텐데, 목욕탕에서는 물을 어떻게 공급하고 관리하고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개인 목욕탕은 24시간 수자원이 필수이므로 펌프 수도가 최소 3곳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각 펌프 수도마다 펌프공 인력을 채용하는데요. 펌프공은 수동 펌프로 지하수를 퍼 올려 목욕탕 물을 채워야 하므로 일반 일공보다 두 배의 일당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 부동산 건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당이 쌀 1kg 가격인 1만원이라면, 개인 목욕탕에 채용된 펌프공의 일당은 쌀 2-3kg 가격으로 계산됩니다. 따라서 펌프공은 힘이 센 젊은 사람들이 채용되죠.
펌프공 일당이 높은 만큼 목욕탕 업주는 목욕탕에서 옷을 세탁하는 손님을 엄격히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복 한 가지라도 목욕탕 물로 세탁하려면, 목욕탕 가격의 두 배를 지불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지 않나요. 한국에는 물, 불, 쌀 걱정이 없어 좋다고요. 24시간 수도 꼭지만 돌리면 따뜻한 수돗물이 쏟아지는 살기 좋은 세상이 북한에도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